“식량 손실과 폐기물에서 나온 온실가스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최대 10%를 차지하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이를 반영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식량손실 및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 없이는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서 식품 손실을 연구 중인 리즈 굿인 박사가 남긴 말입니다. 실제로 유엔환경계획(UNEP)의 ‘음식물쓰레기 지수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10억 톤 이상의 식품이 버려지는데요.

기후변화에 맞서 식품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혁신적인 기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식품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첨단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음식점·식료품점·식품 유통 기업 등이 식품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화학 및 물리학 연구에 활발히 뛰어드는 상황입니다.

 

美 식품폐기물 스타트업 6조원 이상 투자받아…“갑자기 큰 관심사 돼” 🍞

전문가들은 식품폐기물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이를 줄이기 위한 투자와 노력 모두 증가했다고 설명합니다. 미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이하 UCD)의 엘리자베스 밋첨 교수는 “식품폐기물이 갑자기 큰 관심사 됐다”며 “(식품폐기물에 관심이 없던) 기업들도 이제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식품폐기물 감축 활동을 추진 중인 미국 비영리단체 리페드(ReFed)에 따르면, 2021년 한해 동안 미국 식품폐기물 스타트업은 48억 달러(약 6조 2,875억원)를 투자받았습니다. 이는 전년대비 30%나 증가한 것입니다.

리페드는 식품 포장에 첨단기술이 적용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225 톤가량의 음식을 매립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들이 있단 것일까요?

 

▲ 미국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세이블팩은 식품 포장 용기 및 농산물 유통 과정의 식품 손실을 막기 위한 수분 흡수용 팩을 개발했다 ©SAVRpak

‘수분’ 흡수해 신선도 높인 세이블팩…타임(TIME) 선정 ‘최고의 발명품’ 🏆

세이블팩(SAVRpak)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회사명이자 제품명인 세이블팩. 미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빌 버건이 공동으로 설립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입니다. 그는 우주 식품에 사용되는 기술을 활용해 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세이블팩을 발명했습니다.

이 팩은 식품 용기 내부의 수분을 흡수하도록 설계됐습니다. 가령 감자튀김을 배달시켰을 경우 용기 안에 세이블팩이 들어있다면 튀김류의 바삭한 겉면이 계속 유지됩니다. 버건은 “세이블팩이 용기 내에 수분을 잡아주어 음식의 질감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고 강조했는데요.

회사 측이 실험한 결과, 세이블팩은 식품 용기의 습도를 최대 45%나 낮출 수 있었고 포장 식품의 유통기한이 최대 2주까지 연장됐는데요.

실제로 미 테네시주의 한 치킨 체인점은 “더 나은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세이블팩을 사용한다”고 밝혔습니다.

 

▲ 세이블팩이 적용된 실험군왼과 아무것도 없는 대조군오을 비교한 모습 세이블팩이 포함된 감자튀김의 경우 큰 차이가 없지만 대조군의 경우 용기 곳곳에 김이 서린 것이 보인다 ©SAVRpak

세이블팩의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그레고리 마셀리는 “(세이블팩은) 기저귀나 여성 위생용품 등에서 볼 수 있는 재료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팩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식물 기반의 섬유로 만들어졌습니다. 제품 개당 가격이 1달러 미만인데요. 세이블팩이 농작물 함께 포장돼 유통되는 것만으로도 식품폐기물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강조합니다.

실제로 UCD가 연구한 결과, 세이블팩과 함께 포장된 농작물의 수명이 최대 10일까지 늘어났습니다. 농작물 유통 과정에서 세이블팩이 수분을 흡수한 덕인데요. 구체적으로 블랙베리는 7일, 딸기류는 4일까지 수명이 늘어났습니다.

세이블팩은 지난해 미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갬블(P&G)이 후원한 ‘이노베이션 챌린지(Innovation Challenge)’상을 수상했는데요. 같은해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21년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세이블팩을 선정했습니다.

최근 세이블팩은 멕시코 온라인 슈퍼마켓인 후스토(Jüsto)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2023년 1월부터 후스토에서 판매되는 농식품 용기에 세이블팩이 들어가는 것인데요. 회사 측은 북미 내 유통기업 및 30개 이상의 농장에서 여러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헤이즐이 개발한 농작물 신선도 보존재 헤이즐 100의 모습 ©Hazel Technologies

헤이즐, 과일 신선도 오래 유지할 기술 개발해…“농작물 23만여톤 폐기 막아!” 🍎

헤이즐테크놀로지스(Hazel Technologies·이하 헤이즐) 또한 농작물 신선도 보존재를 개발했습니다.

2015년에 설립된 이 스타트업의 핵심 제품은 ‘사쉐(sachet·작은 봉투)형 보존재’입니다. 크기가 일회용 설탕 봉지 정도에 불과한데요. 이 보존재를 농작물과 함께 보관하면 신선도가 유지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보존재 안에 들어 있는 1-MCP(1-메틸시클로프로펜) 등 보존제가 공기와 농작물에서 나온 성분과 반응해 농작물의 부패를 늦춥니다. 즉, 농작물을 익게 만드는 에틸렌의 생성을 억제한단 것인데요.

에디나 마우트 헤이즐 CEO는 자사의 보존재가 농작물의 유통기한을 최대 3배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헤이즐의 기술은 미 농무부(USDA)와 코넬대에서 승인을 받았는데요. 헤이즐은 창업 후 현재까지 23만 톤 이상의 농작물이 버려지는 것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 미시간주에 있는 사과 포장 시설인 벨하베스트(BelleHarvest)는 2022년 한해에만 약 3,000개 이상의 헤이즐 보존재를 주문했습니다. 시설 관리자인 마이크 마지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보존재 하나로 사과의 유통기한이 일주일 더 늘어난다면 구매를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는데요.

이밖에도 세계 최대 아보카도 재배·유통업체인 미션프로듀스(Misson Produce)와 키위 최대 유통업체인 제스프리(Zespri) 등 12개국 160여개 기업이 헤이즐 보존재를 사용 중에 있습니다.

한편, 지난해 4월 헤이즐은 시리즈 C 펀딩에서 7,000만 달러(약 917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 투자기관인 테마섹(Temasek)과 농업기술 전문 투자 벤처캐피털(VC)인 ‘폰티펙스 애그테크(Pontifax AgTech)’ 등이 투자를 주도했습니다.

 

▲ 미국 최대 식료품 업체 중 하나인 크로거는 2019년 어필사이언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1100여개 슈퍼마켓에 어필의 식용코팅제를 바른 과일을 판매해 왔다 ©Kroger

첨단 식품 보존 기술 “문제는 고비용”…“식품 표시제도 바뀌는 것이 우선” 🗓️

제아무리 첨단기술이라 할지라도 비용이 많이 든다면 확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비용을 소비자와 기업이 떠맡아야 할 경우 되려 문제가 되는데요. 이런 이유 때문에 월마트 다음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인 크로거(Kroger)는 최근 어필사이언스(Apeel Science·이하 어필)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했습니다.

어필은 배 줄기나 포도 껍질 등 농식품 부산물에 풍부한 지방질을 추출해 식용코팅제를 개발해 화제를 모은 스타트업입니다.

이 코팅제를 과일이나 채소에 바르면 얇은 막이 형성돼 수분 증발과 산소 침투를 막는데요.

 

▲ 왼쪽부터 일반 오이 비닐에 포장된 오이 어필의 식용코팅제를 바른 오이의 시간별 부패 과정 ©Apeel

식용코팅제를 바른 아보카도는 진열 기간이 최대 8일까지 늘었고, 딸기와 바나나 같은 과일도 진열 및 보관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고 어필은 설명합니다.

크로거는 2019년부터 어필이 코팅한 아보카도를 미 전역 슈퍼마켓에서 판매했습니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들은 굳이 더 비싼 어필의 아보카도를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타사의 아보카도가 더 저렴했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크로거는 끝내 어필과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어필의 모든 제품을 철수시켰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어필은 식품 보존 기술과 관련해 크로커와 별도의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온실가스, 플라스틱 모두 제로를 꿈꾼 어필의 ‘식용코팅제’

 

©TMB Studio

한편, 식품 표시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비영리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식품폐기물 부문 책임자인 이벳 카브레라는 식품 표시제도의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카브레라는 식품 표시를 기존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식품폐기물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대 기간, 반면 소비기한은 보관 방법을 잘 지켰을 경우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인데요. 미국 내에서만 연간 400만 톤가량의 식품이 유통기한에 대한 소비자들의 오해 때문에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