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명절 음식부터 밀키트, 배달음식까지 긴 연휴 동안 뭘 먹을지 고민하는 분들 많으신데요. 이번 연휴 기간 전후로 음식물 쓰레기가 평소보다 더 많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돼 정부와 지자체 모두 음식물 쓰레기 감량을 위한 음식문화 개선 홍보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한국환경공단 조사에 의하면, 명절 연휴 기간 일주일 전후로 가정에서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량이 20% 이상 늘었는데요. 사실 음식문화 개선 홍보는 매년 반복적으로 진행됐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초에 식재료의 신선도가 좀 더 오래 유지될 순 없는 걸까요? 이에 의문을 제기하며 식품 보관 기간을 늘리고자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 Apeel, 페이스북 갈무리

식용 코팅제 이용해 농산물 부패 막은 ‘어필’ 🥑

2012년 설립된 어필 사이언스(Apeel Science)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푸드테크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필 사이언스는 10여년전 설립 당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화제를 모았는데요. 회사가 개발한 ‘어필(Apeel)’이란 식용 코팅제는 냉동이나 방부제 없이도 채소와 과일의 유통기한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죠.

회사명이자 식용 코팅제 이름인 ‘어필’은 농약이나 방부제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회사 측은 화학물질 범벅인 농약이나 방부제와 달리 어필은 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천연보호막이라고 설명하죠.

구체적으로 이 어필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어필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배 줄기나 포도 껍질 등 농식품 부산물에 풍부한 지방질을 추출하는데요. 이를 분말로 만든 후 특수용액과 섞어 액화시키면 식용 코팅제 ‘어필’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필을 과일이나 채소에 바르면 얇은 막이 형성되는데요. 이 막이 수분 증발이나 산소 침투를 막아 신선도를 보다 오래 유지하는 것이죠.

 

© (왼) 어필을 바른 후 건조 과정 중인 과일 (오) 특수용액을 섞어 어필을 만들고 있는 모습_Apeel, 페이스북 갈무리

이론은 굉장히 단순해 보이나 실제 개발에 들인 시간은 무려 6년. 연구 비용도 4,000만 달러(한화 약 470억원)가 소요됐는데요. 어필 사이언스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로저스는 미국 캘리포니아대(UC 산타바바라)에서 재료공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식량 문제에 관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식용 코팅제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은 이미 충분히 생산되기에, 식재료 부패 속도를 늦춰 버려지는 양을 줄인다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막대한 연구비가 들어가긴 했으나 어필을 바른 아보카도는 진열 기간이 최대 8일까지 늘었고, 딸기와 바나나 같은 과일도 진열 및 보관 기간이 2배 이상 늘었습니다. 라임의 경우 유통기한이 3배로 늘어난 덕에 생산자와 유통업자 모두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죠.

 

© 왼쪽부터 오이, 비닐에 포장된 오이, 어필을 바른 오이의 시간별 부패 과정 비교_Apeel

또 외부 세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단 특성 덕에 오이 같은 일부 농산물은 비닐 포장 없이 유통되기 시작했는데요. 어필 사이언스는 2020년부터 미국 월마트를 대상으로 비닐 포장이 안 된 오이를 판매 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오이 50만 상자가 출하될 때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 82만 개가 사라지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나무 790그루 심은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아보카도 1개를 어필로 덮어 판매할 경우 절약되는 물의 양은 23리터, 스마트폰을 9번 완전 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데요. 어필 사이언스는 아보카도를 시작으로 딸기, 바나나, 오이, 아스파라거스, 망고 등 농산물 종류를 점차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오늘날 어필 사이언스는 미국과 유럽 등 8개국에서 30개가 넘는 공급망을 운영하고 40여개 기업과 협력해 어필로 코팅된 농산물을 판매 중인데요. 회사 측은 2019년 이후 약 4,200만 개의 농산물이 버려지는 것을 예방했고, 47억 리터의 물을 절약했다고 합니다.

 

+ 어필은 그냥 먹어도 괜찮냐고 묻는다면 🤔
넵, 괜찮아요! 어필은 과일이나 채소의 껍질, 씨앗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인데요. 미국 식품의약국(FAD)도 어필의 성분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간주되는(GRAS)’ 물질로 지정했단 사실! 또 주요 알레르기 유발원인 단백질이 아닌 지방질인 덕에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해요. 물론 과일이나 채소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피하는 것이 맞겠죠?

 

© (왼) 셀룰로오스 코팅제를 바른 바나나 일자별 비교, 약 5일 뒤 코팅을 바른 아래쪽 바나나가 더 신선한 것을 알 수 있다 (오) 과일 및 채소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물질_Manifesto Films, Lidl Schweiz

세계 각지 식용 코팅제 적용 연구 활발해 🥕

어필 사이언스의 성공을 계기로 식용 코팅제 연구가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입니다. 얼마전 식품업체 리들(Lidl)스위스 연방 재료시험연구소(EMPA)와 공동 연구 끝에 식용 셀룰로오스 코팅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는데요. EMPA는 어필 사이언스와 마찬가지로 과일·채소에 있는 천연 부산물에 주목했는데요. 먼저 포도나 올리브 등을 압축한 후 나온 찌꺼기인 ‘포마스(Pomace)’에서 셀룰로오스를 추출하고 이를 액화시켜 코팅제로 만들었다고 하죠.

포마스는 질산염·나트륨 등이 많이 함유돼 있어 함부로 버리면 토양 및 식수 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데요. EMPA의 탄자 치머만 이사는 부산물에 새로운 가치를 추가한 덕에 순환경제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죠. 해당 예비 연구는 2019년에 시작해 지난해 하반기에 무사히 종료됐는데요. EMPA 측은 예비 연구에서 셀룰로오스 코팅을 한 오이가 그렇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해 6일 동안 수분 및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현재는 본시험을 앞둔 상황인데요. 본시험은 2년간 진행될 계획이며, 해당 시험의 성공 여부에 따라 리들이 소유한 스위스 150개 마트에 식용 코팅제 기술 사용 여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 이스라엘 식용 코팅제 개발 스타트업 서프레스카 연구진 모습_Sufresca 제공

이스라엘의 농업테크 기업인 서프레스카(Sufresca)도 농산물 유통기한 연장을 위해 식용 코팅제를 개발했는데요. 앞선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식용가능한 얇은 막이 농산물 수확 후 숙성 및 부패 속도를 모두 늦춘다고 합니다. 해당 기술은 예루살렘 히브리대 농업, 식품 및 환경학과 연구실이 주도한 15년간의 연구개발(R&D)의 결과인데요. 부패 속도가 빠른 고추에서 식용 코팅제 효과를 입증했고,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농산물 적용 범위를 넓히려 연구 중이죠.

서프레스카 측은 “우리가 개발한 식용 코팅은 토마토와 체리, 오이, 망고 같은 다양한 품종에 매우 잘 작용하는 것이 입증됐다”고 밝혔는데요. 해당 기술을 통해 농산물 유통기한은 늘리고,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은 감소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Mori, 페이스북 갈무리

한편, 앞선 사례와 달리 단백질로 식용 코팅제를 만든 곳도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모리(Mori)란 스타트업체 이야기인데요. 이곳은 미국 터프츠 대학의 실크연구소에서 분리된 스타트업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죠. 모리는 누에가 만든 비단(실크)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식품의 변질을 막았는데요. 온실가스 배출량과 플라스틱 사용량은 줄이고, 식품 유통기한은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단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모리는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Technology Pioneer) 2021’에 선정됐는데요. 어필 사이언스와 마찬가지로 FDA로부터 GRAS 인증을 받아 식용가능하다고. 허나, 실크가 고가 소재인 만큼 비용효율 측면에서 해결할 여지는 남아있는데요. 지난해 1,600만 달러(한화 약 191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해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중이라고 합니다.

 

© Apeel 제공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친환경 나노코팅 기법을 이용해 과일의 부패 기간을 늦출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요.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폴리페놀 복합체가 기반이며, 폴리페놀은 항산화 성질과 보존성을 가져 효과를 인정받았다고 하죠. 다만, 앞선 사례와 비교하면 유통기한이 짧은 편이었는데요. 해당 기술은 현재 농산물이 아닌 계란 유통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사용되고 있죠.

세계 곳곳에서 식용 코팅제 개발이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 근미래 마트나 시장에서 식용 코팅제로 포장된 식재료들을 쉽게 보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