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에콰도르 정부가 갈라파고스 제도 보호를 목적으로 16억 달러(약 2조 1,118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에콰도르 정부가 발행한 16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했습니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1000㎞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19개의 섬과 다수의 암초로 구성돼 있다. 바다이구아나 등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생태계가 조성된 덕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에콰도르 정부가 갈라파고스 해양생태계 보호에 20년 동안 연간 1,800만 달러(약 240억원)를 지출하는 조건으로, 매입한 국채 6억 5,000만 달러(약 8,600억원)를 ‘갈라파고스 채권’으로 전환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번 채권은 미주개발은행(IDB)이 이자 보증을 섰으며, 필요한 경우 처음 6번의 이자를 IDB가 지급할 예정입니다.

 

▲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갈라파고스땅거북의 모습 ©Alex Fine Flickr

에콰도르, ‘환경스와프’ 체결 덕에 11억 달러 부채 탕감·갈라파고스 보호 🦜

2020년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에콰도르는 이번 거래로 11억 달러(약 1조 4,610억원)의 부채를 탕감받았습니다. 동시에 갈라파고스 제도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자금도 마련했습니다.

에콰도르 정부는 이번 계약으로 국채 이자를 포함해 약 11억 달러(약 1조 4,7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 역시 이 점을 언급하며, 이번 거래가 갈라파고스 제도는 물론 에콰도르 정부의 재정에도 큰 도움을 주는 역사적인 계약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거래는 에콰도르 정부가 대규모 ‘환경스와프(DNS·Debt for Nature Swap)’를 성사한 것이 핵심입니다.

환경스와프란 개발도상국이 대외 채무 및 국채를 금융기관이나 선진국 정부 등이 인수하는 대신 해당 국채를 대출 등 다른 형태로 전환하여 대출 금액을 환경 보전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 갈라파고스 제도 일대를 헤엄치고 있는 망치상어귀상어 무리 ©Pelayo Salinas de León CDF

대외 채무를 환경 보호를 위한 재원으로 바꾼 거래여서 환경스와프로 불립니다. 쉽게 말해 에콰도르 정부가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연간 1,800만 달러(약 240억원)를 갈라파고스 제도 보호를 위해 제공해야 한단 것.

이중 1,300만 달러(약 174억원)은 갈라파고스 제도 환경 보호 활동, 나머지 500만 달러(약 66억원)은 갈라파고스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장기 기금 조성에 사용됩니다.

구스타보 만리케 미란다 에콰도르 외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새로운 세계 화폐는 생물다양성”이라며 “이 기금은 기후회복력을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어업을 지원하는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에콰도르 정부는 올해 9월부터 기금을 집행할 계획입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현재까지 브라질·페루·볼리비아 등 16개국에서 50여차례 이상 환경스와프 거래가 진행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거래 금액이 가장 많습니다.

앨리스 휴 홍콩대 환경생물학 교수는 “부채가 많거나 채무불이행 위험이 있는 국가는 환경보호를 우선시하기 어렵다”며 환경스와프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NYT는 이번 에콰도르 국채 거래를 계기로 환경스와프가 더욱 널리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에콰도르 “2년 내 다른 환경스와프 거래할 것”…정치 불안정 해소가 관건 🚨

이번 거래는 에콰도르 정부와 CS 모두 위기를 겪는 와중에 이뤄졌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에콰도르 정부는 2020년 국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습니다.

더욱이 라소 대통령은 마약 밀매 및 부패 혐의로 탄핵 위기에 몰린 상태였습니다. 이에 이번 거래가 라소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란 해석도 나왔습니다.

현재 라소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자 대통령직을 포기하는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는 ‘국회해산권’ 명령에 지난 17일(현지시각) 서명했습니다. 대통령 잔여 임기를 포기하면서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실시를 함께 요구할 수 있단 것이 골자입니다.

크레디트스위스 또한 지난 3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경쟁사 금융기관인 UBS에 인수됐습니다.

 

▲ 19개 섬으로 이뤄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생태계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다©Max Ruckman Flickr

한편, 에콰도르 정부는 향후 2년 이내 또다른 환경스와프 거래를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파블로 아로세메나 에콰도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부채를 줄이는 동시에 에콰도르 내 생물다양성을 수익화할 수 있는 여러 유형의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로세메나 장관은 “에콰도르 내 환경 자산으로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는 에콰도르 내 정치 불안정 등 리스크로 인해 낮은 가격에 채권이 거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크레디트스위스는 당초 갈라파고스 채권 규모를 8억 달러로 잡았으나, 라소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채권 가격이 폭락해 6억 5,000만 달러(약 8,635억원) 규모로 축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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