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청정에너지 산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5월 30일(현지 시각), 총 37억 달러(약 5조 원) 규모의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보조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상은 24개 프로젝트로, 대부분이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저장하는 CCUS 기술과 관련된 사업입니다.
보조금 취소와 함께 탄소 저장 허가 신청도 급감했습니다. 에너지 데이터 업체 엔베루스 인텔리전스 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탄소 저장 허가 신청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0% 줄어 202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승인은 한 건도 없었으며, 이는 2024년 4분기의 3건 승인과 대조적인 결과입니다.
라이트 장관은 “이전 행정부가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지급하면서도 철저한 재정 검토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보조금 취소는 “미국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취소된 주요 프로젝트는 하이델베르크 머티리얼즈 5억 달러(약 6,870억 원), 이스트만 케미컬 3억 7,500만 달러(약 5,082억 원), 서터 CCUS 2억 7,000만 달러(약 3,708억 원) 규모입니다.
“美 기술 리더십 흔들” 업계 반발 확산
보조금 취소 조치에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미국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카본 캡처 코얼리션의 제시 스톨라크 사무총장은 “이번 소식은 탄소 관리 기술에 있어 주요한 후퇴”라며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에너지와 기술 리더십을 다른 국가들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클린 에어 태스크 포스의 콘래드 슈나이더 선임국장도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라며, “더 깨끗한 산업 기술 수요가 커지는 시점에 정반대의 대응”이라고 지적했습니다.
8,700만 달러 보조금을 잃은 서블라임 시스템즈는 “놀랍고 실망스럽다”며 “이번 조치는 미국 경쟁력을 저해하고, 정부의 목표와 모순된다”고 비판했습니다.
허가 지연·세제 불확실성…막힌 CCUS 성장 로드맵
또한 환경보호청(EPA)의 느린 허가 절차가 CCUS 산업의 성장에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분석업체 엔베루스의 브래드 존스턴 애널리스트는 당초 2025년까지 40건의 허가가 승인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를 14건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2023년 중반 접수된 프로젝트들의 평균 대기 기간은 30개월로, EPA 목표보다 6개월 이상 늦습니다.
재정적 유인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세제 개편안에는 톤당 85달러(약 12만 3,400원)의 탄소 포집 세액공제가 포함돼 있지만, 우드 맥킨지의 로한 디그헤 애널리스트는 “이 수준으로는 포집 기술의 광범위한 적용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2027년 이후 세액공제의 양도 제한이 예고돼 있어, 중소 개발업체의 시장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블룸버그NEF의 브레나 케이시 애소시에이트는 “세액공제 양도는 시장 유지에 핵심”이라며, 단계적 폐지가 “소수 석유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IRA 이후의 역설…쏟아지는 신청, 막힌 시스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표 이후 탄소 포집(CCS) 프로젝트 신청이 급증하면서, 관련 인허가 시스템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셰브론이 지원하는 스반테의 매튜 스티븐슨 최고수익책임자는 “IRA 이후 신청이 몰렸지만, 실제 파이프라인과 자본 프로젝트로 이를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주는 환경보호청(EPA)을 우회해 자체 허가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현재 웨스트버지니아, 루이지애나, 애리조나, 와이오밍, 노스다코타가 허가를 받았고, 텍사스도 최종 승인 단계에 있습니다.
한편 블룸버그NEF는 2035년까지 온라인 예정인 총 1억 5,200만 톤 규모의 CCS 프로젝트 중 35%는 실제로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기후에서 안보로…우선순위 재편 속 청정에너지 위기
칼라일그룹은 3월 발간한 보고서 뉴줄오더(The New Joule Order)에서 세계 에너지 정책이 기후 중심에서 안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보고서 저자인 제프 커리 수석전략책임자는 각국이 우선순위를 안보, 경제성, 기후 순으로 조정하고 있으며,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현지 자원과 연료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AI와 전기화 확산으로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와 맞물려 새로운 시장 기회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삭감은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전환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고강도 철강 등 중공업 분야는 전기화가 매우 어렵고 대규모 기술 투자에 정책 지원이 필수적인 만큼, 이번 보조금 철회가 산업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