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8곳 이상이 정부가 2035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단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그 결과, 168개 응답 기업 중 82.7%가 이같이 답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앞두고 실시됐습니다.
파리협약에 따라 모든 당사국은 이달까지 2035 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해야 합니다. 협약 내 ‘진전의 원칙’에 의하면, 감축목표는 이전 대비 상향돼야 합니다.
한국은 오는 11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맞춰 제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30 NDC 달성가능성 38.6%뿐 “산업구조 전환 비용부담 커” 💸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 중 2030 NDC 산업부문 목표 달성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4.2%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낮거나 매우 낮다고 평가한 기업은 50%에 달했습니다. 나머지 45.8%는 보통으로 답변했습니다.
한경협은 이같은 답변을 토대로 기업들이 전망하는 달성가능성을 도출했습니다. 달성가능성을 5개 구간으로 나눠, 각 구간의 중간값에 응답자 비율을 곱한 방식입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2030 NDC 달성가능성은 38.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감축목표가 산업 현장의 실정과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업들은 주요 장애요인으로▲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 어려움(31.0%) ▲에너지효율 개선 지연(26.2%) ▲경제 및 생산 위축(20.2%) 등을 꼽았습니다.
한계 이른 생산과정 개선…기술혁신도 상당 시일 필요 ⚠️
특히, 주목할 점은 산업계의 구조적 특성과 전환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입니다. 우리나라는 산업구조 특성상 주요국 대비 제조업 비중이 높습니다.
그 가운데 배출원단위 개선으로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한경협의 설명입니다. 배출원단위 개선율은 부가가치 단위당 배출량 감소 정도를 나타낸 것으로, 쉽게 말해 생산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뜻합니다.
실제로 2000년 대비 2020년 기준 한국의 배출원단위 개선율은 48.7%로 평가됐습니다. 독일(46.3%)과 일본(33.3%)을 앞서고 있어 추가적인 개선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단체는 기술혁신으로 인한 배출량 개선까지 상당 시일이 걸린다는 점도 피력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 단계별 이행안’에 따르면, 철강, 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다배출업종의 저탄소기술 상용화는 2030~40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기술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감축목표 설정은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후정책 강화와 전환리스크로 인한 기업경영 부담이 크게 가중되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하면서도 글로벌 기후정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감축목표 설정과 지원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환리스크’ 타격까지 “부문 간 감축 목표 절실” 📉
전환리스크 측면에서도 산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전환리스크는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격 상승 등이 기업들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 상승에 따른 리스크를 가장 높게(54.6%) 평가했습니다. 특히 에너지집약업종은 저탄소에너지원 사용에 따른 비용부담 리스크를 58.1%로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들 업종은 대외의존도와 산업 연관효과가 높아 개별 기업의 리스크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글로벌 정책환경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전기차 친화 정책을 폐기하는 등 기후정책 기조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세계경제포럼에서 기후정책에 대한 일관된 방침을 유지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계는 2035 NDC 수립 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사항으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및 의견수렴을 통한 합리적 목표치 설정(22.2%)’과 ‘기후대응예산의 구체화(22.2%)’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습니다.
또한 ‘탄소중립 목표시점 조정(16.9%)’과 ‘부문 간 감축목표 조정(15.9%)’의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산업계, 현실 반영한 합리적 감축목표·지원책 촉구 📢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2035 NDC 수립을 앞둔 시점에서 산업계가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과 정책적 과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2030 NDC의 낮은 달성가능성과 함께 산업구조 전환의 기술적 제약, 전환리스크 증가 등 복합적 요인들이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이는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서 산업계 현실과 정책 간 간극을 좁히기 위해 섬세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향후 2035 NDC 수립 과정에서는 산업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한 합리적 감축목표 설정과 함께, 기업들의 저탄소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 마련이 요구됩니다.
나아가 급변하는 글로벌 기후정책 환경 속에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