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 결과, 극우성향의 국민연합(RN)이 압승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당 등 범여권은 3위로 밀려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RN에 참패한 마크롱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극우세력 견제를 위한 선택이었으나 오히려 극우성향 정당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입니다.
프랑스 내무부에 의하면, 1일 새벽 2시 30분 기준 전체 지역구 577곳 중 566곳에서 개표가 끝났습니다.
프랑스 총선은 우리나라와 달리 2차례에 걸쳐 투표가 이뤄집니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되기 위해선 지역구 등록 유권자의 25% 이상, 당일 총투표자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이날 1차 투표에서는 총 81명이 당선을 확정했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의하면, 1차 투표에서 당선된 81명 중 RN이 4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좌파성향의 신민중전선 32명, 중도성향 르네상스당이 주도한 연대세력 앙상블에서 4명이 당선됐습니다.
이밖에도 중도 진영(3명)과 공화당(1명) 그리고 기타 좌파 정당(1명)에서 당선인이 나왔습니다.
2022년 총선 1차 당선인 5명 → 2024년 총선 1차 당선인 81명 🗳️
1차 투표 결과, 당선자가 나오지 않은 지역은 오는 7일 2차 결선 투표를 합니다.
2차 투표는 1차 투표에서 12.5%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만 올라갑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위 득표자 2명이 결선을 치릅니다. 이때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면 최종 당선됩니다.
주목할 점은 1차 투표 결과 81명이 당선됐단 것입니다. 2022년 총선 당시 1차에서 당선된 이는 5명에 불과했습니다.
2022년보다 16배가량 많은 후보가 1차에서 당선될 수 있던 까닭은 60% 후반대의 높은 투표율과 당선 요건인 등록 유권자 25% 이상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난 총선의 1차 투표율은 47.5%였습니다.
반이민·반EU·포퓰리즘 확장 앞세운 극우성향 RN이 득세한 까닭? 🤔
RN을 이끄는 실질적 리더인 마리 르펜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5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르펜 의원은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르펜 의원의 부친인 장 마리 르펜은 1972년 10월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을 창당했습니다. 국민전선은 당시 반공주의와 반(反)이민 그리고 반유럽정책(EU)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 성향 역시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FN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힌 것은 2000년대 후반입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프랑스에 반세계화와 반EU 기조가 퍼졌습니다. 이 가운데 2011년 르펜 의원이 부친의 뒤를 이어 당 대표에 오르며 당 이미지 쇄신도 본격화됩니다.
반유대주의·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인물들을 통제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당시 대표직을 맡았던 르펜 의원은 부친을 당에서 축출합니다. FN은 2018년에 지금의 RN으로 당명을 바꿉니다.
이후 FN은 반이민 기조를 유지하되 인종차별적 접근이 아닌 국가안보나 국가 정체성 보호 차원으로 접근했습니다. 이 노선은 2015년 파리 테러 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지며 더 지지받게 됩니다.
최근에는 EU의 기후정책에 반발한 농민들의 지지도 흡수했습니다.
여기에 세금 감면이나 복지 확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워 중도층과 노동계층의 지지도 이끌었습니다.
프랑스 극우 RN, 창당 52년만에 집권 예고 🏛️
르펜 의원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기자회견을 통해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를 총리로 임명할 수 있도록 RN을 절대 다수당으로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바르델라 대표는 RN이 단독 과반수를 확보했을 때만 총리직을 맡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프랑스는 의회 다수당이 정부 운영권을 쥔 총리를 배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합은 창당 52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이에 다른 정당들은 오는 7일 진행될 2차 투표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RN이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할 시 극우에 반대하는 다른 정당들이 연대해 총리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르네상스당 등 좌파 연합이 소수 정부 구성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단, 구체적인 전망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이들 모두 단독 집권이 어려워 연립정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의회가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사실상 식물 의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프랑스 헌법에 따라 향후 1년간 의회는 해산할 수 없습니다.
RN “EU 그린딜, 징벌적 생태학”…프랑스 총선 결과, EU 전반 영향 ⚖️
극우성향의 총리가 탄생할 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외교 정책에 대한 권한은 대통령이 가지나, 총리는 지원 예산을 거부하는 등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총선 결과는 EU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EU 정책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당장 RN은 EU에 연간 납부하는 기여금을 현행 216억 유로(약 32조원)에서 180억 유로(약 26조원)까지 줄여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입니다
EU의 기후대응 정책 역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EU 그린딜’입니다. 이는 2050년 기후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입니다.
RN은 최근까지도 그린딜을 가리켜 “EU의 환경주의자들이 추진하는 징벌적 생태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린딜이 프랑스 시민들의 삶에 부담을 준단 것이 정당 측의 주장입니다. 이에 그린딜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초 RN은 EU의 기후정책에 반발하는 프랑스 농민들과 함께 ‘트랙터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RN은 총선 승리 시 에너지와 자동차연료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세율을 현행 20%에서 5.5%로 낮출 것이라고 약속한 상태입니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일환으로 높아진 연료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저소득층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앞서 2018년 프랑스가 유류세를 인상하자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노란 조끼 운동’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유가 상승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는 낮은 임금과 경제적 불평등 등으로 연관됐고, 곧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