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북극 빙하를 지킨다면 어떨까요?
그린란드 빙상(氷床)에서 발견한 거대 바이러스가 빙하의 녹는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등 국제 연구팀이 발표했습니다.
일반 바이러스보다 125배다 큰 바이러스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연구 결과는 지난달 17일(이하 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움’에 발표됐습니다.
24일 논문을 확인한 결과, 연구 배경에 대해 로라 페리니 오르후스대 환경과학과 박사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진은 “조류에 대한 생물학적 통제, 특히 바이러스의 역할은 잘 알려지지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유럽연합(EU)의 연구 지원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Horizon 2020)’으로부터 지원받아 수행됐습니다.
극지방에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인 조류(藻類)가 빙하를 더 빠르게 녹인단 것이 연구진의 말입니다.
빙하(氷河)는 극지방 육지를 덮은 두꺼운 얼음층, 즉 빙상이 바다로 떨어져 나온 것을 말합니다.

극지방 검게 물들인 조류, 햇빛 반사율 떨어뜨려…빙하 소실 속도 ↑ 🧊
연구팀이 찾은 거대 바이러스는 ‘뉴클레오사이토비리코타(Nucleocytoviricota)’ 문(門)에 속합니다. 문은 생물분류 체계에서 동물과 식물 그리고 세균을 나누는 계 아래의 단계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핵세포질 대형 데옥시리보핵산 바이러스(NCLDV)’입니다.
이 바이러스의 크기는 2.5㎛(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입니다. 통상 일반 바이러스가 2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인 점을 고려하면 125배나 큰 셈입니다.
NCLDV가 극지방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가 빙하를 어떻게 보호한단 걸까요?
흰색인 빙하는 햇빛을 80% 반사해 덜 녹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식물성 플랑크톤인 조류가 번성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조류가 급격히 번성하면 빙하 역시 물듭니다.
흰색 빙하가 검은색과 녹색 또는 붉은색 같은 색깔을 띠면 햇빛 반사율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로 인해 빙하 소실 속도 역시 급격히 빨라집니다. 이같은 조류는 최근 그린란드를 넘어 남극과 알프스산맥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조류가 많이 발견되는 만큼 빙하 손실 역시 클 수 있단 우려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이 올라가 조류가 더 활발하게 번성하는 상황입니다.
연구진들은 그린란드에서 발견한 NCLDV, 즉 거대 바이러스가 빙하에 치명적인 조류를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그린란드 빙상 표본 67개를 이용해 NCLDV와 조류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 바이러스는 빙상을 붉게 만드는 홍조류에 효과적으로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란드서 발견한 거대 바이러스, 온난화로 급증한 조류 제거 가능 🦠
그린란드 빙하 소실을 늦추기 위한 가장 빠르고 시급한 수단은 단연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입니다.
그럼에도 이같은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린란드 빙하가 과학계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추진한 공동 연구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인해 그린란드 빙하는 시간당 3,000만 톤씩 소실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보다 알려진 것보다 20% 더 많은 빙하가 사라졌단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그린란드 빙하가 다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이 7m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직은 그린란드 빙하 소실이 해수면 상승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시 지구의 해류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단 경고도 나옵니다.
페리니 박사후연구원은 “(그린란드에서 발견한) 거대 바이러스가 기후변화로 인한 조류 번성으로 빙하를 녹는 것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해당 바이러스가 조류를 없애고 번성을 막아 빙하의 햇빛 반사율을 높일 수 있단 것.
이를 위해 “거대 바이러스의 상호작용과 생태계에서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계속 관련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감염경로 규명 필요” 연구 주저자, 추가 연구 진행 중 ⚗️
우려도 있습니다.
페리니 박사후연구원의 말처럼 거대 바이러스가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단 것입니다. 이는 ‘조류’를 연구하는 학문 자체가 아직 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단 것에서 기인합니다.
달리 말하면 빙하를 구하기 위한 조치가 되레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단 뜻입니다. 연구진의 발상 역시 기후변화를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점에서 지구공학 기술로 분류됩니다.
페리니 박사후연구원은 빙하 소실 속도 감소에 있어 “해당 바이러스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그는 “거대 바이러스가 조류 등을 감염시키는 경로가 아직 정확하지 않아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거대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염기만 250만 개로, 일반 바이러스보다 12배 이상 많습니다.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한 만큼 연구에 시간이 걸린단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