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뉴스케일파워의 루마니아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사업에 40억 달러(약 5조 3,500억원) 상당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삼성물산 또한 뉴스케일파워와 협력해 루마니아에 SMR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22일 루마니아 원자력공사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도이세슈티 SMR 사업 현장을 방문한 캐슬린 카발렉 주루마니아 미국 대사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자국 정부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카발렉 대사는 “(루마니아 SMR 사업은) 미국 정부 최고위층의 정치적·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며 “SMR이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 유럽과 그 너머까지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유럽연합(EU) 또한 루마니아의 SMR 개발 성공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핀란드·이탈리아·폴란드 등 원자력에 친화적인 주변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복잡한 지정학적 셈법이 숨어 있습니다.
“2029년 상업운영 목표” 노후석탄발전소에 차세대 원전 SMR 6기 배치 ⚡
뉴스케일파워는 루마니아 중부 도이세슈티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SMR 6기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1기당 77㎿(메가와트)로 총 462㎿입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사업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앞서 삼성물산은 작년 6월 뉴스케일파워를 비롯해 루마니아 원자력공사 등과 SMR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습니다. SMR 계획부터 인·허가, 설계·구매·조달(EPC) 수행 등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이날 루마니아 에너지부는 SMR 건설 여부에 대한 최종 투자 결정을 오는 2025년에 내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르면 오는 2029년부터 SMR 1기 이상을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뉴스케일파워 측은 밝혔습니다.

美 정부가 루마니아 SMR 배치 나선 까닭은? “러시아·중국 견제” 🤔
그런데 미국이 민간 기업의 해외 건설 사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응한단 전략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에 의하면, 미 수출입은행(EXIM)과 국제개발금융공사(IDFC)가 루마니아 SMR 사업 성공을 위해 각각 최대 30억 달러(약 4조원)와 10억 달러(약 1조 3,500억원)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는 지난해 미국이 발표한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의 후속 조치입니다. 당시 국무부는 미국·한국·일본·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국이 협력해 루마니아 SMR 건설 사업에 최대 2억 7,500만 달러(약 3,650억원)를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춘단 계획입니다. 나아가 동유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중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즉 일대일로를 위해 루마니아 등 동유럽 16개국과 경제협력체를 출범한 바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루마니아와 원전 건설 사업을 공동 추진한 바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체르나보다 원전’에 추가로 3, 4호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양국간 협력은 6년이 넘는 협상 끝에 2020년 종결됐습니다. 당시 현지매체들은 루마니아 정부가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고려한 끝에 협상을 종결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발표 또한 루마니아에 SMR 건설을 지원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끊어내겠단 미국 정부의 전략이 깔려 있단 분석이 나옵니다.
루마니아 ‘2050 기후중립’ 달성·전력수요 감당 위해선 원자력 필요 📈
루마니아 정부와 뉴스케일파워 측은 SMR 6기 건설이 모두 완료될 시 400만 톤 분량의 탄소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U 회원국인 루마니아는 ‘2050 기후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발전원을 다각화해야 한단 입장입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이 30.7%에 이르러야 하며, 같은 기간내 원자력에너지 용량도 2배 이상 늘린단 목표도 세웠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이되, 늘어난 전력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선 전력 공급이 안정적인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단 것이 루마니아 정부의 설명입니다.
여기에 석탄 등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춘단 목표도 추가됐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루마니아를 비롯한 EU 회원국들은 대러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EU 집행위 “기후목표 달성에 SMR 등 원자력 핵심적 역할” ⚖️
EU 27개 회원국 내에서 원자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엇갈립니다. 프랑스·핀란드 등 친원전 국가들은 원전 확대에 찬성합니다. 반면,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촉구합니다.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촉발된 에너지위기의 영향으로 EU는 원자력이 일부 필요하단 입장입니다.
이에 지난해 11월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SMR 산업연합(SMR Alliance)’ 추진 방침을 표명했습니다. SMR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중국과 미국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단 계획입니다.
연합은 EU 역내 기업과 금융사들이 힘을 함쳐 2030년까지 SMR 실용화를 현실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연합은 오는 4월 12일까지 회원사를 모집한 뒤 공개 출범할 예정입니다.
EU 집행위는 SMR과 원자력 에너지가 ‘2040 기후목표’ 달성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목표는 1990년 대비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까지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루마니아 SMR 개발 성패 여부 지켜보는 EU 회원국, 현실은? 🌐
지난 2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유럽 전역에서 루마니아의 SMR 개발 사업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EU 내에서 SMR을 적극 개발하고 있는 나라가 루마니아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현 사업의 성패 여부가 EU 내 SMR 개발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된단 뜻입니다.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공과대 핵과학자인 이고르 피오로 박사는 현재까지 나온 SMR 관련 설계가 108개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중 2개만 실제로 구현돼 현재 러시아와 중국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피오로 박사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SMR을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원자로는 수시로 켜고 끄는 것이 어렵고, 이경우 설비의 내구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이어 SMR은 모든 지역이 아닌 연료 공급이 어려운 시베리아 같은 오지에 적합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실뱅 코그네-도팽 스탠더드앤푸어스(S&P) 글로벌 유럽 전력 책임자는 “(SMR이)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도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SMR 대량 생산 시 수요가 충분할지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적절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코그네-도팽 책임자는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뉴스케일파워는 전력구매 계약자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탓에 작년 11월 미국 내 첫 SMR 사업을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전기자동차·배터리 등 청정기술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패권 경쟁에서 밀러 날 수 없단 것이 EU의 입장입니다.
미국과 중국 양국이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하며 신(新)성장동력으로 기후테크 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서 해당 산업을 주도해 왔던 유럽은 전전긍긍하는 모양새입니다. 여기서 SMR 같은 원자력 산업이 EU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단 것이 폴리티코의 설명입니다.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 또한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SMR 개발을 빠르게 진행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피력했습니다.
[SMR 동향 모아보기]
① 루마니아 SMR 개발…美·中·EU 복잡한 셈법 드러내
② 웰스파고, 뉴스케일파워 주가 시세 하향 조정한 까닭은?
③ EU ‘친원전’ 회원국, 에너지안보·기후대응에 원전 확대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