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행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2024년 가장 주목해야 할 미래 기술 중 하나로 ‘초효율 태양광 전지’를 선정했습니다.
MIT 테크 리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잠재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기술 발전 10가지를 선정해 매년 발표합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았습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공개한 2024년 10대 혁신 기술에는 3개의 기후테크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초효율 태양전지, 향상된 지열시스템, 히트펌프 등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3가지 기술 모두 세상에 등장한 지 오래됐단 것입니다. 이에 대해 MIT 테크 리뷰 해당 기술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초효율 태양전지는 2022년 MIT 테크 리뷰가 ‘과대광고’라고 비판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10대 혁신 기술로 꼽혔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차세대 태양전지 소재, ‘페로브스카이트’의 정체는? ☀️
현재 사용되는 태양전지 대부부은 95%가 실리콘으로 구성됩니다.
이론상 실리콘 태양전지의 광전환 효율은 최대 30% 초반입니다. 광전환 효율은 태양광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는 정도를 말합니다.
허나, 실제로는 20% 중반대에서 진전을 멈춘 상황입니다. 빛의 파장 중 근적외선과 적색광에서는 발전 효율이 좋지만 근자외선·청색광으로는 발전이 불가능한 한계도 있습니다.
실리콘 소재가 고비용·에너지 집약 소재란 점도 단점으로 꼽힙니다. 실리콘은 돌, 모래에서 이산화규소를 환원·정제한 후 단결화해 만듭니다. 이를 위해선 1,000℃ 이상의 고온이 필요합니다. 공정이 복잡하고 값비싼 장비가 투입되는 등 제조 비용이 높습니다.
이런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태양전지에 대한 시도가 수십년간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Perovskite Solar Cell)’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산화광물의 일종입니다. 100℃ 이내에서 생산되며 가격은 실리콘보다 2~4배 저렴합니다. 빛 흡수율도 더 높습니다. 더욱이 공정상에서도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저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합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열, 습기, 공기에 장기간 노출될 시 성능 저하로 내구성이 짧아집니다. 2010년대초에는 광전환 효율도 10%대에 그쳤습니다. 대량 생산이 쉽지 않단 점도 한계로 거론됐습니다.
*19세기 광물학자 레브 페로브스키가 발견한 광물질에 붙은 이름이다. 이후 특정한 유기물(A)과 무기물(B), 그리고 할로겐화물(X)이 결합한 구조의 화합물(ABX3)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과대광고’ 의심받던 기술의 급부상, 어떻게 가능했나 🤔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실험하려면 괜찮은 운동화 한 켤레가 필요했다.”
2021년 MIT 테크 리뷰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낮은 안정성을 비꼬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안정성이 너무 낮아서, 태양전지를 만든 곳에서 실험 장소로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다 부서지고 없을 것이란 뜻입니다.
당시는 여러 태양전지 기업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상용화를 공언한 때였습니다.
같은해 5월 폴란드의 ‘사울레 테크놀로지스는’ 세계 최초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공장을 개장했습니다. 중국 ‘다정 마이크로나노테크놀로지’는 이듬해인 2022년 대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대량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단, 에너지 효율은 10%에 그쳤습니다.
2022년 5월 MIT 테크 리뷰는 재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현황을 조망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들이 안정성 확보를 홍보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과대광고’에 가깝다고 MIT 테크 리뷰는 평가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 상용화, ‘하이브리드’로 앞당겨 🔬
그러던 2023년 11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를 한층 앞당긴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태양광 기업 론지(Longi)가 태양전지 효율 33.9%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교(KAUST)가 같은해 5월 세운 종전 신기록(33.7%)을 7달 만에 갈아치운 것입니다.
MIT 테크 리뷰는 “머지않아 이 기록도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혁신의 비결은 바로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함께 사용한 것입니다. 일명 ‘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 태양전지(이하 탠덤 전지)’입니다.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가 서로 다른 태양광 파장을 흡수한다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실리콘은 적외선·적색광(장파장)을, 페로브스카이트는 청색광(단파장)을 잘 흡수합니다.
그 결과, 탠덤 전지의 이론상 최대 효율은 약 44%에 달합니다.
실험상에서 단일 소재 태양전지의 최대 효율이 각각 30% 미만(실리콘), 26%가량(페로브스카이트)에 불과한 것과 비교됩니다.
탠덤 전지 3~5년 내 새로운 차원 기대…“업계 리더, 韓 기업도 포함” 🇰🇷
MIT 테크 리뷰는 탠덤 전지가 3~5년 내 태양전지 패널의 효율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주목해야 할 선두기업으로 영국 옥스퍼드 PV(Oxford PV)를 소개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분사한 태양전지 기업입니다. 작년 5월 상업용 크기의 탠덤 전지에서 28.6%의 효율성을 달성해 주목받았습니다. 옥스퍼드 PV는 올하반기에 탠덤 전지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미국 최대 태양광 제조기업인 퍼스트솔라(First Solar) 또한 2023년 5월 스웨덴 페로브스카이트 스타트업 에볼라(Evolar)를 인수하며 본격 기술경쟁에 나섰습니다.
인수 금액은 3,800만 달러(약 508억원)입니다, 추후 기술 이정표 달성에 따라 총 인수 금액은 8,000만 달러(약 1,070억원)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퍼스트솔라는 이번 인수로 고효율 탠덤 전지를 포함한 차세대 태양광 패널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MIT 테크 리뷰가 꼽은 차세대 리더 기업에는 한국 기업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태양광 패널 제조기업 한화큐셀입니다. 한화큐셀은 최대 44% 효율을 목표로 탠덤 전지를 연구개발(R&D) 중입니다.
한화큐셀은 작년 5월 충북 진천공장에 1,365억 원을 투자해 탠덤 전지 양산을 위한 파일럿(시범)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24년 하반기 시험 가동을 시작해 2026년 양산이 목표입니다.
안정성 확보·조속한 시장 출시는 과제로 남아 🔍
남은 관건은 안정성 확보입니다. 기업들은 기술개발로 충분히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말합니다.
영국 스타트업 스위프트솔라(Swift Solar)는 최대 70℃의 온도에 노출돼도 성능이 저하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스위프트솔라 공동설립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토마스 레이턴스에 따르면 “5년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단, 외부에 노출되는 특성상 여러 악천후를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시장의 인내심도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미 노스웨스턴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자이자 화학과 연구 조교수인 빈 첸은 “향후 2~3년 내에 제품이 출시되지 않는다면 기술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낮아질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청정에너지 보조금이 시장 출시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MIT 리뷰 선정 7개 선두기업, 절반 이상이 美 기업인 까닭
한편, MIT 테크 리뷰가 탠덤 전지 차세대 리더로 꼽은 기업은 총 7곳입니다. ▲비욘드 실리콘(🇺🇸) ▲카룩스(🇺🇸) ▲퍼스트솔라(🇺🇸) ▲탠덤 PV(🇺🇸) ▲옥스퍼드 PV(🇬🇧) ▲스위프트솔라(🇬🇧) ▲한화큐셀(🇰🇷) 등입니다. 이중 4곳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 미 에너지부의 지원이 있단 분석이 나옵니다. 에너지부의 ‘페로브스카이트 스타트업 상’ 대회가 대표적입니다. 2021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시작했으며 결승전 진출자에는 비욘드 실리콘이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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