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개최된 아랍에미리트(UAE). 전제군주제 아래 대통령제를 갖춘 국가로, 매우 엄격한 법률 아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기후총회가 이집트 남부 휴양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에 연이어 사회 통제가 강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열린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후활동가들은 COP28 개최 전부터 기후행동에 대한 제약을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UAE는 COP28 개최 조건으로 모든 시위의 사전 승인을 요구하고 시위 장소를 COP28 ‘블루존’으로 제한했습니다. 블루존은 각국 대표단의 공식 협상과 토론이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유엔의 지침에 따라 블루존은 현지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로 인정됩니다.
이번 COP28에서는 이러한 현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청소년 기후활동가의 세대교체와 맞물려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시위 엄격 통제되는 UAE “이례적 집회·시위 물결 펼쳐져” 🌊
국제 비영리기구 휴먼라이츠워치의 카나리나 랄 연구원은 COP28에서의 시위가 이전 당사국총회(COP)들보다 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랄 연구원은 UAE에서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했을 뿐더러,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또한 규제를 가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수백 명의 기후활동가들이 블루존 인근에서 다채로운 행진을 펼쳤습니다. 이는 어떤 형태의 시위도 엄격히 제한돼 온 UAE에선 이례적인 광경이란 반응이 나옵니다.
시위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옷 색상으로 항의 주제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기후총회에서 인권은 흰색, 금융 전환은 노란색, 화석연료는 주황색과 불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포르투갈의 기후활동가 이슬린 파카냐의 퍼포먼스입니다. 파카냐 활동가가 입은 산불 사진이 인쇄된 의상은 기후변화가 불러온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상기합니다. 동시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각) ‘자연과 토지사용, 해양’의 날에는 최대 인파가 모여 기후정의를 위한 국제 행진에 나섰습니다. 여러 대륙에서 참여한 원주민들의 다채로운 색상의 전통 복장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숲과 생물다양성 회복 등 기후대응에서 선주민들의 역할은 지난 파리협정 이후로 강조돼 왔으며 COP28에서도 재차 강조됐습니다.

반전평화-기후행동 연대 목소리 높아 “수박 피켓 등장한 까닭은?” 🍉
올해 COP28의 기후행동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반전평화와 가자휴전 요구였습니다.
그간 집회 시위가 거의 불가능했던 UAE에서 COP28이 항의 행동이 가능한 기회와 장소를 제공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UAE 내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겼다는 것.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면 공격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휴전 압박을 받는 가운데 화제를 돌리기 위해 COP28을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알자지라 등 중동 언론을 중심으로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인권과 평화를 기치로 기후행동과 반전평화 행동이 연결돼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COP28에서 대대적인 연대 활동으로 퍼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와 기후활동가들은 이스라엘의 즉각 휴전과 각국의 군비 감축 및 군비의 기후재원 전용 등을 요구했습니다.
허나, 유엔의 지침에 따라 집회 시위에서 개별 국가의 깃발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기후활동가들이 선택한 것이 수박 이미지와 색상입니다.
수박은 빨간색 삼각형과 검정색·흰색·초록색 삼색줄로 이뤄진 팔레스타인 국기와 색상이 같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상징으로 사용됐습니다.
20대 청년된 ‘툰베리 세대’…“마이크 대신 진짜 힘 가질 차례” 💪
기후활동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그레타 툰베리가 떠오를 겁니다. 2018년 15살 나이로 기후학교 파업에 나섰고, 이는 매주 금요일 학교를 가지 않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Firday For Future)’ 학교 파업으로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이후 같은해(2018년) 12월 툰베리는 24차 당사국총회(COP24)에서 공식 연설에 참석해 정치인들을 질책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바 있습니다.
그런 툰베리가 올해 2월, 251주간 진행했던 학교 파업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올해로 20살을 맞이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입니다.
툰베리만이 아니라 툰베리를 기점으로 기후활동을 시작하거나 주목받은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이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에 청소년 정체성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기후활동가들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간 기후운동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왔습니다. 비단 기후운동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청소년은 아동과 성인 사이에서 금기를 깰 수 있는 주체로 기대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청소년이란 정체성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집니다.
청소년에게는 금기를 깨는 발언을 허용하는 것과 동시에 실질적인 조직과 권력으로부터는 배제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기후활동가 알렉산드리아 빌라세뇨르는 “청소년은 종종 인류의 도덕적 나침반으로 쓰이기 위해 호명된다”며 이러한 태도가 어른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동시에 빌라세뇨르는 “(기후행동에) 청소년을 세우고, 그가 성장하면 또 다른 청소년을 세우는 (악)순환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청소년 중심의 기후활동 담론이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소비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청년 기후활동가들은 청소년의 테두리를 벗어나 회사 및 단체에 진입하면서 그간 쌓아온 경험을 적용하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례로 우간다 출신 기후활동가 바네사 나카테는 청소년 및 청년 기후활동가의 경력 개발을 돕기 위해 2019년 비영리단체 ‘라이즈업무브먼트(Rise Up Movement)’를 설립한 바 있습니다.

기후행동단체, ‘오늘의 화석상’에 한국 선정 “천연가스 확대 멈춰야” 🏆
한편, 기후환경단체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지난 6일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 준우승 수상자로 한국을 선정했습니다.
CAN은 당사국총회 기간 동안 하루 한번, 기후변화 대응에 부진한 국가를 선정해 오늘의 화석상을 수여했습니다.
이날 우승자로 캐나다 앨버타주, 준우승자로 노르웨이와 한국이 선정됐습니다. 한국이 오늘의 화석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SK E&S의 바로사 가스전 투자와 한국 정부의 블루수소 양해각서(MOU) 체결 등이 선정 이유로 꼽혔습니다. 바로사 가스전은 호주 에너지 기업 산토스가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SK E&S는 해당 사업으로 확보한 천연가스에 CCS(탄소포집·저장) 기술을 활용해 블루수소 생산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CAN은 한국의 블루수소 투자가 화석연료의 수명을 연장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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