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식물성 대체섬유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재가 식물성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패션업계가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과 생물다양성 회복, 생분해 여부 등 순환성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바나나텍스(Bananatex)가 주목받습니다.
바나나텍스는 스텔라 매카트니, MCM, H&M 등 다양한 패션브랜드가 선택하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살충제와 비료, 물 사용도 필요없을뿐더러 재삼림화까지 지원할 수 있는 섬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름과 달리 바나나껍질로 만든 섬유는 아니라는데요. 바나나텍스의 정체를 살펴봤습니다.
2020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바나나텍스. 스위스 가방 브랜드 퀘스천(Qwstion)으로부터 분사해 설립된 기업입니다.
바나나텍스는 퀘스천이 지속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퀘스천은 2008년 설립 당시부터 절제된 디자인과 낮은 환경 영향을 목표로 다양한 가방 및 액세서리를 설계해 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장은 폴리에스터·나일론 등 석유계 합성섬유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거의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사측은 충격받았다는데요.
퀘스천 창립자들은 환경 영향을 낮추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소재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마·대나무·린넨 등 다양한 식물성 소재를 실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이들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보이는 ‘아바카(Abaca)’란 식물을 접하게 됩니다. 아바카는 바나나과에 속하는 식물로 바나나의 사촌격입니다. 아바카로 만든 끈은 필리핀에서 전통적으로 보트용 끈으로 사용해왔을 정도로 튼튼합니다.
실제로 동남아 일대에서 아바카는 밧줄이나 종이 등을 제작하는 작업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창립자들은 수차례 실험 끝에 아바카 섬유가 가방 소재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총 4년의 개발 기간을 거친 바나나텍스는 2019년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최초로 공개됩니다.
퀘스천 창립자들은 아바카 섬유로 고품질 직물을 생산하기 위해 대만 업체와 협업했습니다.
회사 설명에 의하면, 섬유질을 질긴 종이로 만들고 이를 다시 얇은 조각으로 잘라 꼬아서 가는 실을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을 직조해 캔버스 천을 만든 것. 그 결과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높은 원단이 탄생합니다.
방수 기능을 더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대신 천연 밀랍 코팅을 사용합니다.
덕분에 바나나텍스는 산업용 퇴비화 시설에서는 10주, 바닷물에서는 16주 이내에 퇴비화 및 생분해가 가능하다고 사측은 밝혔습니다.
다양한 식물성 소재가 연구됐음에도 굳이 아바카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퀘스천은 아바카의 고유한 성장 과정에 그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많은 살충제와 물이 필요한 목화와 달리 아바카는 추가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닙니다.
또 아바카의 줄기에서 섬유를 추출하기 때문에 나무를 완전히 캐지 않고도 여러 차례 수확이 가능합니다. 수확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잎은 땅에 퇴비로 돌아갑니다.
아울러 아바카 나무는 생물다양성 회복에도 도움을 줍니다.
필리핀은 야자나무 농장으로 단작되거나 삼림벌채로 훼손된 산림이 많습니다. 이같은 지역에 뿌리가 긴 아바카 나무를 재배하면 토양 침식을 방지할 수 있다고 퀘스천은 강조합니다. 즉, 재삼림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단 것.
퀘스천과 바나나텍스의 공동창립자이자 양사의 최고경영자(CEO)인 하네스 쇼네거는 바나나텍스가 다른 패션기업으로 확장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바나나텍스 직물을 처음 만졌을 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타가방 생산기업뿐만 아니라 의류, 자동차, 가구 기업 등이 소재 구매를 위해 접촉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바나나텍스는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이어왔습니다.
2021년에는 패션브랜드 H&M의 요청으로 신발 컬렉션에 참여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신발 브랜드 ‘굿뉴스’가 주도해 바나나텍스가 사용됐습니다. 해당 신발에는 포도 기반 비건가죽·재활용 면·재활용 고무 밑창 등 지속가능한 소재들이 총집합했습니다.
올해에는 MCM과 스텔라 매카트니 등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을 선보였습니다. MCM은 지난 7월 바나나텍스와 소량의 면을 사용한 모자를 출시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가을 컬렉션에서 비건 토트백으로 변신했는데요.
이밖에도 기능성 의류·아동복·가구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 중이라고 사측은 전했습니다.
한편, 바나나텍스는 최근 소재의 순환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바나나텍스를 다시 펄프화시킨 다음 종이, 실, 원단으로 재순환하는 것.
수명이 다하거나 자투리로 배출된 바나나텍스를 클로즈드루프(Closed loop)로 순환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지난다에는 더 얇고 가벼운 바나나텍스 원단을 선보였습니다. 사측은 이전 원단보다 더 촉감이 부드럽고 활용도가 높아 활용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높은 비용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이에 대해 쇼네거 CEO는 “비록 플라스틱 직물이 저렴하더라도 결국에는 저렴하지 않다”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바다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을 꺼내는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