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중심의 기후테크 산업에 주요 투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이른바 ‘딥워싱(Deepwashing)’을 주의해야 한단 경고가 나옵니다.
딥워싱이란 실질적인 연구나 기술개발 없이 자사의 기술이나 제품을 혁신적으로 소개하는 사례를 뜻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서 파생됐으면, 아직까지 사용된 적은 없는 단어입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에너지 정책 고문인 크레이그 더글라스는 이같은 딥워싱으로 인해 유럽 내 기후테크 산업이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난 14일(현지시각)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Tech Crunch)에 기고했습니다.
그는 유럽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인 월드펀드(World Fund)의 창립파트너이기도 합니다.
2021년 설립된 월드펀드는 시드(창업 극초기) 및 시리즈 B 단계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투자하는 곳입니다. 올해 9월 추가 투자를 위해 5,000만 유로(약 709억원)를 모은 바 있습니다.
기후테크 산업으로 자금이 흐르는 상황 속에서 딥워싱으로 위장한 기후테크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기후테크 산업 투자 관련 기준이나 평가를 더 고도화해야 한단 제언이 나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후테크 산업으로 투자금 몰리는 가운데 ‘딥워싱’ 사례도 ↑” ☹️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에 의하면, 올해 3분기(7~9월) 전 세계 기후테크 기업에 몰린 투자금은 약 166억 달러(약 21조원)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보다 60% 이상 늘어난 것입니다.
경기침체로 거의 모든 산업군의 투자가 얼어붙었으나, 기후테크 산업으로는 여전히 자금이 흐르고 있단 것이 BNEF의 최신 분석입니다.
크레이그 파트너는 벤처캐피털(VC) 업계가 기후테크 산업에 주목하고 있단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합성생물학부터 양자컴퓨팅 그리고 배터리 재활용 기술에 이르기까지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갖춘 딥테크 기업들이 전체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지난 10년간(2010~1019년) 저탄소에너지 발명에 대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곳은 유럽(28%)입니다. 이어 일본(25%), 미국(20%), 한국(10%), 중국(8%) 순이었습니다.
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기술 중 절반 이상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단 점을 강조합니다. 이들 기술 상당수가 프로토타입(시제품)이나 시연 단계에 머물러 있단 뜻입니다.
혁신적인 기후대응 기술이 시장에 적기에 출시되기 위해선 상당한 기술개발과 혁신 그리고 더 많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단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문제는 이 틈을 노리고 기후테크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기업들이 있단 것.
크레이그 파트너는 “유럽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로서 태양광·히트펌프·마이크로모빌리티 스타트업과 몇몇 푸드테크 기업들로부터 ‘딥워싱’을 제안받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크레이그 파트너 “기술 없이 기후대응만 내세운 기후테크 기업 늘어” 📈
투자 심사 과정에서 R&D나 기술 혁신 증거가 없음에도 자사 제품이 기후대응에 있어 효과적이라고 과장하는 기업들이 늘었다고 크레이그 파트너는 밝혔습니다.
그는 “(딥워싱을 한 기업들의) 제품을 살펴보면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 없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미 시장에 나온 기술을 약간 보장하거나 미세하게 변경된 사항 등의 성과를 과도하게 부풀린 경우가 많단 것이 그의 지적입니다.
예컨대 월드펀드 투자 과정에서 만난 태양광 기업 100여개 중 약 80%는 딥테크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태양광 패널 설치 효율화나 에너지 효율화 같은 기술 개선이 없던 기업들이 투자금을 받기 위해 앞다퉈 딥테크를 내세웠던 것.
크레이그 파트너는 “태양광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자신의 회사를 딥테크 태양광 사업으로 홍보했다”며 “(실제로 살펴보면 결과) 기술 혁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크레이그 파트너는 “창업자들은 자사 기술의 독창성과 실행 능력에 정직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올바른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딥워싱 사례,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격차에 악영향…예방 필수” 🔔
투자자들 또한 딥워싱을 예방할 책임이 있단 것이 크레이그 파트너의 설명입니다.
딥워싱 사례에 대한 투자가 다른 투자사 및 기후테크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레이그 파트너는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격차 현황을 예시로 언급했습니다. 이는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금이 탄소배출량 감축 잠재성이 높은 기술 대신 다른 부문에 투자되는 것을 뜻합니다.
운송은 세계 전체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나, 전체 기후테크 분야 투자금의 45%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딥워싱 사례가 늘어날수록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격차가 늘어나고, 이는 적재적소에 여러 기후대응 기술들이 배치될 수 없단 것.
크레이그 파트너는 “혁신적인 기술을 창출하는 기업에 더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며 “딥워싱 같은 불신은 기후테크 산업에서 자본을 몰아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후테크 산업 내 딥워싱 예방 위한 방법은? 😮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딥워싱 같은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1️⃣ 과학 기반 평가 기준 개발|월드펀드 ‘CPP’ 개발 배경은? 📊
이에 그는 기후테크 산업 내 딥워싱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선 과학 기반의 평가 기준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월드펀의 경우 자체적으로 만든 ‘기후성능잠재력(CPP·Climate Performance Potential)’이란 기준을 가지고 투자 심사를 진행합니다.
CPP란 온실가스 감축 기술 평가 시 해당 기술이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절감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해당 기술의 사회적·경제적 영향 및 지역사회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돼 있습니다.
월드펀드는 이를 기준으로 상당한 양의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에만 지원한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CPP 정의 및 기준에 대한 세부 내용은 월드펀드 홈페이지에도 공개돼 있습니다.
CPP 등장 배경에 대해 다니엘 비세비치 월드펀드 파트너는 “VC의 모든 이들이 갑자기 CO₂ 배출량 감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투자자들과 스타트업 간 영향력을 논의하고 달성하기 위한 공통 어휘가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럽 투자사 상당수가 딥테크와 기후테크 투자를 위해 자체적인 과학 기반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크레이그 파트너는 설명합니다.
또 업계 대다수가 기후테크 정의 및 영향 측정 방법론을 위해 기후 전문 싱크탱크들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고 덧붙였습니다.
2️⃣ 좋은 기후투자 활성화 위한 VC 간 협력|80개 VC 연합한 VCA는? 🤝
과기후테크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VC 간 협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올해 4월 과학 기반 기후테크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한 ‘벤처기후연합(VCA·Venture Climate Alliance)’ 같은 이니셔티브가 등장했습니다. 미국 및 유럽 내 23개 VC가 창립사로 참여한 이니셔티브로 월드펀드 또한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회원 수는 80개로 늘었습니다.
VCA는 2030년까지 회사의 탄소배출량을 순제로(0)로 만들고, 2050년까지 전체 포트폴리오 회사의 탄소배출량도 순제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VCA는 설립 당시 성명을 통해 “좋은 기후투자가 무엇인지 또 세계를 위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투자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방법론과 측정 기준을 확실히 정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3️⃣ 전문가 자문 필수|해당 기술이 실제 경쟁 우위 제공할지 물어야 🤔
자체적인 평가 기준이나 업계 간 협력이 아니더라도 관련 기술 분야 전문가에게 정보를 재차 확인해야 한단 것이 크레이그 파트너의 말입니다.
크레이그 파트너는 “배터리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긴 하나 (투자 심사 과정에서) 여전히 박사나 교수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딥테크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관련성 여부를 확인하려면 최일선의 최신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이 기술이 실제 경쟁 우위를 제공하는 기술 혁신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