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정유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미국 내 전기자동차 충전 사업 진출을 위해 테슬라의 급속충전기를 주문했습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BP는 자체적인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1억 달러(약 1,300억원)가량의 테슬라의 급속 충전기를 구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BP는 이를 통해 영국 최대 규모의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인 ‘BP펄스(BP pulse)’를 미국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거래는 테슬라가 충전기를 판매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나아가 화석연료 기업이 미국 전기차 충전 인프라(기반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단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BP, 미국 내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에 1억 달러 투자 💰
BP에 의하면, 이번 구매 대상은 250kW(킬로와트) 출력의 테슬라 자체 급속 충전기입니다. 일명 ‘슈퍼차저’라 불립니다. 단, 구매한 충전기에 테슬라가 아닌 BP 자체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다고 사측은 밝혔습니다.
또 해당 충전기는 테슬라 전기차 충전 방식인 ‘NACS(북미충전표준)’와 북미의 기존 전기차 충전 표준 규격인 ‘CCS(합동충전시스템)’가 모두 호환됩니다.
즉, 충전 규격이 다른 모든 전기차가 충전이 가능하단 것. 이는 NACS와 CCS 방식 충전기를 모두 제공한 테슬라의 ‘매직 독(Magic Dock)’ 충전기 덕분입니다.
BP가 구매한 충전기는 이르면 2024년 초부터 미국 내 주유쇼를 중심으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아모코 주유소, 트럭 충전소 및 휴게소 TA 등이 언급됐습니다. 상당수가 BP가 미국에서 운영 중인 주유소 및 관련 소매업 브랜드들입니다.
BP는 미국에서 인구가 많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휴스턴을 시작으로 점차 충전 네트워크를 확대한단 계획입니다.
BP펄스 최고경영자(CEO)의 리차드 바틀렛은 업계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테슬라와의 협력은 “미국의 개방형 고속충전 인프라에 대한 우리의 야망을 향한 큰 진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 위해 전기차 투자 ↑ “2030까지 10억 달러 투자할 것” 🚗
한편, BP는 이번 계약이 올해 2월 발표한 미국 충전 인프라 투자 계획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BP는 미국 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 향후 2~3년 이내 5억 달러(약 6,500억원), 2030년까지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2030년까지 세계 10만 개 이상의 충전소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정유기업인 BP가 전기차 충전에 매진하는 이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020년 BP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단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10년 내 석유·가스 생산량을 40% 감축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다만, 10년 내 생산량 감축 목표는 기존 40%에서 25% 감축으로 지난 2월 조정됐습니다.
BP는 ‘5대 전환 성장동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당 사업을 키워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사업모델도 다각화하겠단 것이 BP의 구상입니다.
5개 부문은 ▲전기차 충전 ▲수소 ▲바이오에너지 ▲재생에너지 ▲편의성 등 입니다.
2030년까지 총 550~650억 달러(약 72~85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며, 그중 절반가량이 전기차 충전과 바이오에너지, 편의성 분야에 투입된단 것이 BP의 설명입니다.
BP·셰브론·쉘 등 에너지 기업이 전기차 충전소 구축 나선 이유는? 🤔
시장조사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30년경 미국 내 신차 중 전기차 점유율은 4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기차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화석연료 중심의 주유소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전 세계 주유소의 최소 4분의 1이 사업모델을 조정하지 않으면 2035년경 폐업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전망합니다. 즉, 주유소들 또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단 것.
BP뿐만 아니라, 많은 에너지 기업이 기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소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꾀하고 있습니다.
미 에너지 기업 셰브론은 지난해 9월 전기차 충전기업 프리와이어테크놀로지와 파트너십을 발표했습니다. 셰브론 소유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로열더치쉘(이하 쉘) 또한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20만 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미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운영 기업 볼타를 1억 6,900만 달러(약 2,200억원)에 인수한 바 있습니다.
당시 볼타는 3,000여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하면서 1년간 2억 5,000만 달러(약 3,28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주유소→종합 편의시설 변신, 바이든 인프라법에 가속화 🏪
전기차 충전소 사업이 에너지 기업들 사이에서 더욱 각광받는 이유, 바로 충전소 사업이 가진 확장성 때문입니다.
전기차는 내연차와 달리 충전에 20~30분가량이 소요됩니다.
이는 충전소에서 충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편의시설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세차장과 편의점 외에도 배터리 교환·수거, 물류 허브 등 각종 서비스의 거점 역할이 가능하단 것.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주유소의 비연료부문 수익이 2019년 20%에서 2030년 28%, 2050년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 정책에 따라 전기차 충전소로 자금이 몰리고 있단 점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 통과된 일자리법(IIJA)에 따르면, 전기차 인프라 확대에 75억 달러(약 9조 8,6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습니다.
이중 50억 달러(6조 5,700억원)가 미 연방 고속도로에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를 구축하는 ‘국가 전기차 인프라(NEVI) 포뮬러 프로그램’에 사용됩니다.
BP 역시 테슬라의 고속충전소 구매 건으로 NEVI 및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원회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 테슬라의 슈퍼차저 공유, 여기까지 내다본 결정이었다?
발 빠른 대응 나선 글로벌 정유기업, 한국은? 🇰🇷
한국에서도 전기차 확산으로 주유소 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7년 1만 2,000여 곳에서 2022년 기준 1만 1,144곳으로, 매년 100여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차 및 수소차 전환으로 사라지는 국내 주유소가 2030년 2,053개, 2040년이면 8,629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이에 국내 정유업계도 전기차 충전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2020년 주유소와 전기차 충전소, 공유오피스를 결합한 ‘에너지플러스 서울로’를 시작으로 미래형 주유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에쓰오일(S-OIL)과 HD현대오일뱅크도 거점 주유소를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소 결합을 추진 중입니다.
한편, SK에너지는 전기차 충전에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분산전원을 더한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당초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주유소 내 연료전지 설치가 불가능했으나,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샌드박스 제도과 관련 규제 개정으로 정식 사업이 가능해졌습니다.
SK에너지는 작년 2월 서울시 금천구 1개소 설치를 시작으로 3년 내에 1,000개소로 확대한단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