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CCS(탄소포집·저장)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기후대응에 나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계획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미 중서부의 CCS 파이프라인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네비게이터CO₂벤처(Navigator CO₂ Ventures·이하 네비게이터)’가 지난 20일(현지시각) 프로젝트를 취소했습니다. 네비게이터는 CSS 전문 개발기업입니다.
금번에 취소된 프로젝트는 ‘하트랜드 그린웨이(Heartland Greenway)’입니다.
사우스다코타·네브래스카·미네소타·아이오와·일리노이 등 미 중서부 5개주에서 탄소를 포집해 일리노이주 지하저장소에 저장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를 위해 약 1,300마일(약 2,092㎞) 규모 파이프라인이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전성 및 일방적 토지 수용에 대한 우려로 중서부 지역사회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이에 지난 9월 사우스다코타 주정부가 프로젝트 건설 허가 신청을 불허한 바 있습니다.
이 결정이 프로젝트 취소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단 분석이 나옵니다.
“블랙록이 지원한 CCS 파이프라인”…연간 CO₂ 1500만 톤 격리 꿈꿔 💭
2021년부터 네비게이터가 추진해온 하트웨이 그린웨이 프로젝트.
미 중서부 20여개 에탄올·비료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액화시킨 후 파이프라인으로 옮겨 일리노이주 저장소에 영구 격리하는 사업입니다.
프로젝트명도 미국 중서부의 별칭인 ‘하트랜드’에서 따왔습니다.
연간 1,500만 톤의 CO₂를 포집하고, 투자 비용만 31억 달러(약 4조원)로 추정되는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미 바이오에탄올 업계의 기대가 컸습니다.
미국은 2005년부터 내연기관차 연료에 바이오에탄올 등 바이오연료를 최소 10% 이상 혼용하는 내용의 ‘바이오연료 혼합의무제도(RFS)’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주요 옥수수 생산지인 중서부에는 바이오에탄올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옥수수 기반 바이오에탄올은 탄소집약도가 높단 지적이 계속 나옵니다.
지난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옥수수 기반 바이오에탄올이 휘발유보다 최소 24%가량 탄소집약도가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수수 재배에 화석연료 기반 비료가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에탄올 발효 및 추출 과정에서 다량의 CO₂가 배출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에 바이오에탄올 업계는 CCS 기술로 탄소집약도를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지금까지 CCS의 막대한 비용 문제로 실행이 어려웠습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파격적인 CCS 세액공제 정책입니다.
파격 세액공제로 CCS 전폭 지원, “바이오에탄올+CCS=SAF 확장”💰
바이든 행정부는 CCS를 기후의제의 핵심 축으로 꼽았습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세액공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21년 11월 통과된 1조 달러(약 1,358조원) 상당의 인프라법(IIJA)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IIJA 세부 내용을 보면, 100억 달러(약 13조 5,800억원) 이상이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개발에 할당됐습니다. 덕분에 2026년부터 2037년까지 저장되는 CO₂ 1톤당 85달러(약 11만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네비게이터는 하트랜드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최대 용량인 1,500만 톤을 저장하면, 최대 12억 7,500만 달러(약 1억 7,300억원)의 세액공제을 받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CO₂ 제거 실적으로 탄소제거크레딧을 발행해 추가적인 수입도 얻을 수 있단 것이 네비게이터의 설명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기업이 하트랜드 그린웨이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비롯해 미국 정유기업 발레로에너지, 바이오연료 기업 포엣 등이 투자했습니다.
CCS와 바이오에탄올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장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바로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CCS로 바이오에탄올의 탄소집약도를 낮추고, 저탄소바이오에탄올로 SAF를 생산한단 계획입니다.
지난 9월 메인주에서 열린 대중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20년간 농부들이 모든 SAF의 95%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서부 지역에서는 하트웨이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포함해 대규모 CCS 사업 3개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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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주민 반발 속 네비게이터 “하트웨이 그린웨이 프로젝트 취소” 🚫
허나, CCS 사업에 대한 중서부 지역사회의 반발은 거셉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입니다. 액화CO₂가 지하 파이프라인에서 유출될 경우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2020년 미 남부 미시시피주 사타티아 지역에서는 파이프라인 파열로 액화CO₂ 3만 배럴(약 477만 리터)이 누출됐된 바 있습니다. 당시 300명이 대피하고, 45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CCS가 아닌 걸프만 유전으로 CO₂를 운송하는 용도로 설치된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네비게이터는 하트랜드 그린웨이 프로젝트 약 1,000마일(1,600㎞)당 연간 누출·파열 위험을 1%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토지 수용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네비게이터는 이에 대해 “수용권 행사는 최후의 보루”라 강조했으나 지역사회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외에도 ▲CCS의 높은 에너지 소비량 ▲파이프라인 관련 규제 미비 ▲CO₂의 농작물 영향 등이 파이프라인 설치 반대 근거로 제시됩니다.
프로젝트 허가 절차도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네비게이터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파이프라인이 지나가는 5개주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주별 세부 과정은 다르지만, 선출 또는 지명된 위원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어 프로젝트의 필요성·경제성·환경영향 등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지난 9월 7일(현지시각), 사우스다코타 공공사업위원회는 청문회 결과 네비게이터의 건설 신청을 불허했습니다. 위원회는 앞서 언급한 안전 문제와 토지소유자 보상 부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이후 네비게이터는 아이오와주에 절차 연기를 요청하고, 일리노이주의 허가 신청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결국 하트웨이 그린웨이 프로젝트 취소를 결정한다고 사측은 발표합니다.
네비게이터는 “(우리의)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개발은 쉽지 않았다”며 “ 예측할 수 없는 사우스다코타 및 아이오와 주정부의 규제와 프로젝트의 특성을 고려해” 프로젝트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네비게이터의 결정, 북미 CCS 프로젝트에 끼칠 영향은? 🤔
한편, 하트웨이 그린웨이 프로젝트 취소 소식에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고 평했습니다. 이전부터 지역사회 거센 반대로 인해 허가 실패가 예견됐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청문회 실패가 프로젝트에 치명적이지는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허가 신청은 추후 필요한 사항을 보완해 재신청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중서부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CCS 프로젝트는 같은날 사우스다코타 위원회로부터 불허 결정을 받았지만 재신청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서밋카본솔루션의 ‘미드웨스트 카본 익스프레스’ 프로젝트입니다.
미 중서부에는 네비게이터를 포함해 총 3개의 CCS 파이프라인 프로젝트가 계획된 바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들이 실패하더라도 CCS 자체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단 주장도 나옵니다. 덜 경제적이긴 하지만 현재에도 트럭, 철도 등을 통해 액화CO₂가 운송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S&P의 분석처럼 “탄소중립을 향한 길이 조금 더 험난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