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장난감 기업 레고(LEGO) 그룹이 화석연료와 결별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들였지만 고배를 마셨다는 소식입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레고 그룹은 재활용 페트(r-PET) 플라스틱 소재 개발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21년 r-PET로 만든 최초의 프로토타입(시제품) 레고를 선보인지 2년 만입니다.
레고 그룹 최고경영자(CEO)인 닐스 크리스티얀센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석유 기반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레고 그룹은 수백 가지의 대체소재 개발 중 하나를 중단한 것뿐이라 선을 그었습니다.
플라스틱 기반 사업 내 지속가능성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란 평가입니다.
2030년 100% 지속가능 소재 목표 세운 레고…2021년 시제품도 공개 🎯
세계 최대 장난감 기업 중 하나인 레고 그룹은 나무 소재로 시작된 기업입니다.
1932년 덴마크 소재의 목재 블록 목공소로 시작됐지만, 1947년 플라스틱 소재를 도입하며 지금의 플라스틱 기반 블록 기업이 됐습니다.
레고 그룹이 생산하는 플라스틱 블록은 연간 1,100억~1,200억 개로 추정됩니다. 그중 80%가량이 석유 기반의 ABS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합니다.
2010년대 들어 플라스틱의 해양 유출과 미세플라스틱 등 문제가 불거지자 레고 그룹 또한 변화를 약속합니다.
일례로 2015년 레고 그룹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지속가능한 소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표했습니다.
2020년에는 지속가능성 노력을 가속화하기 위해 향후 3년에 걸쳐 최대 4억 달러(약 5,400억원)를 투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소재 개발하는 프로그램에만 150명 이상의 전문가가 투입돼 있다고 레고 그룹은 설명합니다.
이듬해인 2021년 레고 그룹은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한 소재, 즉 r-PET 플라스틱을 사용한 프로토타입 블록을 공개했습니다. 3년간 수백 가지의 플라스틱 소재 배합을 연구한 결과입니다. 1리터 플라스틱병 하나로 약 10개의 블록을 만들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당시 레고 그룹은 1년간 추가 실험을 거쳐 실증 생산 단계로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마법의 소재’ 주목받던 r-PET 중단 결정, “탄소배출 되려 더 높단 결과” 💥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알았던 프로젝트에 깜박이를 킨 건 크리스티얀센 CEO였습니다. 크리스티얀센 CEO가 FT와의 인터뷰에서 r-PET 프로그램을 중단했단 사실을 밝힌 것.
크리스티얀센 CEO 2년간 r-PET 플라스틱을 실험한 결과, 신소재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제품수명주기의 탄소배출량이 더 높아질 것으로 밝혀졌던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주원인은 r-PET 소재의 강도를 강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첨가제와 건조 과정이 필요하고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팀 브룩스 레고 그룹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r-PET로 대체하기 위해선 생산 공정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 때문에 생산 공정 내 탄소발자국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실망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r-PET가 이번에야말로 ABS를 대체할 ‘마법의 소재’로 주목받았단 점에서 프로젝트 중단은 더욱 아쉽습니다.
사실 레고 그룹은 r-PEP에 앞서 바이오 플라스틱을 먼저 개발한 바 있습니다. 2018년 회사 측은 사탕수수 기반의 바이오폴리에틸렌(바이오-PE)으로 만든 블록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바이오-PE 또한 ABS보다 유연하고 무른 성질을 지녀, 일반적인 레고 블록으로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현재 바이오-PE 소재가 나무와 풀 등 20여개 액세서리에만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바이오-PE 소재는 전체 레고 블록의 2%에만 사용됩니다.
지속가능성→탄소감축·순환성으로 목표 구체화 ♻️
크리스티얀센 CEO는 프로젝트 중단을 발표하면서 “초기에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소재를 찾는게 쉽다고 믿었다”며 “(이제는) 그런 소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단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에 레고 그룹은 0%에서 100%로 급진적 변화를 꾀하는 대신 ABS 소재에 바이오·재활용 소재를 30%, 50%, 70% 등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현재 1㎏ 생산당 2㎏의 석유가 사용되는 ABS의 탄소발자국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브룩스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순환성을 높이기 위해 순환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중고판매 플랫폼입니다.
레고 블록은 언제 생산된 제품이든 동일하게 조립이 가능하단 점에서 순환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브룩스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중고판매 플랫폼을 출시하기에 앞서, 향후 2~3년 동안 블록 수거 및 분류 솔루션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레고 그룹은 사용하지 않는 레고 블록을 기부 받아 세척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리플레이(Replay)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2019년 미국·캐나다에 도입된 리플레이 프로그램이 오는 2024년 유럽에 출시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순환비즈니스 모델로 어떻게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브룩스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말했습니다.
▲ 레고 그룹은 세 번째 신소재 개발을 위해 e-메탄올을 원료로 플라스틱 생산 프로젝트에 착수할 계획이다. 사진은 덴마크에 위치한 e-메탄올 공장의 완공 예상 모습. ©European Energy
세 번째 신소재 개발 프로젝트 ‘e-메탄올’에 도전! 👩🔬
한편, 레고 그룹은 r-PET 소재 프로젝트는 중단하지만 다른 신소재 개발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최근 시도하고 있는 대안은 e-메탄올입니다.
e-메탄올이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그린수소(H₂)와 포집한 이산화탄소(CO₂)를 합성해 생산된 메탄올을 말합니다. 화석연료 대신 e-메탄올을 원료로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레고 그룹은 저탄소 플라스틱 생산을 위해 재생에너지 기업 유럽에너지(European Energy)로부터 e-메탄올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e-메탄올은 덴마크의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의 전력과 바이오매스 유래 CO₂를 사용해 생산됩니다. 첫 e-메탄올 공급시점은 오는 2024년으로 예상됩니다.
넬레케 반 데르 푸일 레고 소재 부문 부사장은 “바이오-PE, r-PET에 이어 지속가능한 소재를 탐구하는 세 번째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