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 불과했던 해양 기반 탄소제거(CDR) 기술이 실증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해수 속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저장·활용하는 ‘직접해양포집(DOC)’ 기술을 개발하던 스타트업들이 연이어 실증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각) 미국 기후테크 스타트업 에브카본(Ebb Carbon)은 미 북서부 워싱턴주 세퀌 해안에 설치한 자사의 해양 탄소제거 시스템이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시스템은 미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PNNL) 내부에 설치돼 있습니다.
에브카본은 구글 내부에서 혁신 서비스를 연구하는 구글X와 테슬라 전(前) 경영진이 2021년 공동설립한 곳으로, 지난 5월 2,000만 달러(약 268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에브카본의 해양 탄소제거 설비는 컨테이너 크기와 맞먹습니다. 에브카본은 향후 2년간 PNNL 연구소에서 시스템을 운영한단 계획입니다.
에브카본 “해양산성도 ↓ 해양 탄소흡수능력·CO₂ 제거 ↑” 🌊
에브카본은 해수를 크게 산성수와 알칼리수로 분리하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해수가 필터 역할을 하는 일련의 막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전기 자극을 가함으로써 산성도를 낮춘단 것.
산성도가 낮아진 바닷물을 대기 중에서 더 많은 CO₂를 흡수해 해양에 저장합니다. 즉, 해양산성도를 낮추는 동시에 해양 탄소흡수능력을 높여 CO₂ 제거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단 것이 에브카본의 구상입니다.
에브카본 공동설립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매튜 아이사만은 이 기술을 10년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사의 DOC 설비가 모듈식으로 설계된 덕에 여러 해양 산업 설비에 장착하기 용이하단 것이 아이사만 CTO의 설명입니다.
회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벤 타벨은 자사의 기술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연의 과정을 가속화하는 것”이라며 “(바다의 탄소저장을)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날 일을 몇 달이나 몇 주 이내로 줄이는 작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허나, 이론과 달리 DOC 기술 구현에는 여러 어려움이 산재해 있습니다.
산성도를 인위적으로 낮출 경우 해양생태계에 발생할 영향이 미지수일뿐더러,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지에 있는 직접공기포집(DAC) 시설의 경우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돼 운영비가 비싼 것이 현실입니다.
에브카본 “PNNL·NOAA 등과 함께 기술 타당성·해양생태계 영향 연구” 🧪
이같은 어려움들을 하나씩 해결한단 것이 에브카본의 목표입니다. 에브카본이 PNNL 시설에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내 국립연구소는 총 8곳. 이중 해안가에 실험실이 위치한 곳은 PNNL이 유일합니다.
PNNL 연구원은 에브카본의 기술 타당성을 실험하고, 알칼리수가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예정입니다.
이미 PNNL 실험실 내 해수 저장소에서 알칼리수가 굴이나 달팽이 등 작은 바다생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워싱턴주립대도 관련 연구에 참여 중입니다.
닉 워드 PNNL 수석연구원은 “(PNNL은) 단순히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DOC 같은 해양 기반 탄소제거 기술이 해양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실제 기후대응에 효과적인 수준까지 확장할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PNNL은 에브카본의 DOC 시설이 파력이나 조력 등 재생에너지로 운영될 수 가능성이 있는지도 연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PNNL에 설치된 에브카본의 DOC 시설의 연간 탄소제거 능력은 최대 100톤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에브카본은 “과학 연구를 위해 당분간 운영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캡츄라, LA 항구서 DOC 설비 가동 예정…에쿼틱 “싱가포르서 운영 중” 🌊
또 다른 기후테크 스타트업 캡츄라(Captura) 또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항구 인근에서 DOC 시설을 가동할 계획입니다. 해당 시설 가동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본사가 위치한 패서디나에서 관련 설비가 구축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21년 미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분사해 설립된 캡츄라는 지난해 4월 ‘X프라이즈 카본 리무버(XPRIZE Carbon Removal)’의 중간 우승팀 15곳 중 1곳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25년까지 이어지는 이 대회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탄소제거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진행 중이며, 1억 달러(약 1,263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습니다. 캡츄라는 중간 우승에서 100만 달러(약 12억원)의 상금을 수여받았습니다.
캡츄라는 자사의 기술이 ‘투석’과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투석이 인체 내 노폐물만 걸러주는 것처럼, 해수 속 농축된 CO₂만 포집해 알칼리수를 방류하는 과정을 반복한단 것.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분석하기 위해 캡츄라는 해양학자들도 고용한 상태입니다.
더불어 캡츄라는 지난 7월 벤처캐피털(VC) 딥스카이(Deep Sky)와 협력해 캐나다 동부 퀘벡주 해안에도 DOC 설비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이들 시설에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오는 2028년까지 연간 수천에서 수백만 톤을 포집할 수 있는 차세대 DOC 시설을 건설한단 것이 캡츄라의 구상입니다.
전기화학 공정을 연구 중인 스타트업 에쿼틱(Equatic)과 항구 내 해양벤처 혁신 캠퍼스 ‘알타씨(Alta Sea)’가 건설에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알타 씨는 지난 4월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와 협력해 바지선에 DOC 설비를 설치한 바 있습니다.
UCLA에서 분사해 설립된 기후테크 스타트업 에쿼틱은 미국과 싱가포르 2곳에서 각각 매일 CO₂ 100㎏을 포집해 제거할 수 있는 설비를 운영 중입니다.
포츠담헬름홀츠센터 “해양 탄소제거 효과 위해선 예측 중심 접근 필요” 🤔
이밖에도 DOC 관련 연구와 자금 흐름도 활발한 상황입니다.
일례로 메타(구 페이스북) 전직 CTO인 마이크 슈뢰퍼가 공동설립한 어나더벤처스(Another Ventures)는 해양 기반 탄소제거 기술 가속화를 위해 5,000만 달러(약 660억원) 규모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한편, 이들 기술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관련 규제나 소통 방식이 개선돼야 한단 제언도 나옵니다.
독일 포츠담헬름홀츠센터 연구진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해양과학(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를 게재했습니다.
연구진은 각국 체계 및 기관의 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단편적이어서 해양 탄소제거 기술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국가·기관별로 여러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 등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단 것.
연구진은 해양 탄소제거 기술이 해류 등의 영향으로 의도치 않게 다른 곳에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단 점도 꼬집었습니다.
이같은 혁신 기술을 포괄적이고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선 예측 중심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단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공동저자이자 해양학자인 바바라 노이만 박사는 “정치, 과학, 사회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탄소제거 기술을 예측하고 규제를 위한 접근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탄소제거 기술 상당수가 개발 중이고 잠재적인 영향도 정확하게 정량화할 수 없더라도, 이와 관련해 초기부터 이해관계자들끼리 계속해서 소통해야 한단 것이 노이만 박사의 설명입니다.
해당 연구는 유럽연합(EU) 최대 연구 기금 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2020(Horizon 2020)’에 따라 수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