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파타고니아에 월마트까지 탐낸다? 탄소포집+효소로 지속가능한 섬유 선보인 ‘루비 랩스’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와 손잡고 탄소포집 직물 생산에 나선 기업이 있습니다.

산업공정에서 나온 탄소를 포집해 새로운 직물로 재탄생시킨 패션 스타트업 ‘루비 래버러토리즈(Rubi Laboratories·이하 루비 랩스)’입니다.

루비 랩스는 월마트와 협력해 공급망 내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CO²)를 포집해 지속가능한 의류로 변환하는 파일럿(시제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안드레아 올브라이트 월마트 글로벌 소싱 부사장은 루비 랩스 시설 견학 당시 “마치 허공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올브라이트 부사장은 루비 랩스와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겠다”고 밝혔습니다.

 

‘탄소포집+효소’로 지속가능한 섬유 선보인 루비 랩스 🧵

루비 랩스는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패션 스타트업입니다.

각각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은 쌍둥이 자매 니카와 레일라 마쇼프가 공동설립한 곳입니다.

마쇼프 자매가 처음부터 패션업계를 지망한 것은 아닙니다.

 

▲ 2020년 설립된 루비 랩스는 쌍둥이 자매인 니카 마쇼프 CEO와 레일라 마쇼프 CTO가 공동설립했다. ©Rubi Laboratories

니카 CEO는 UC버클리(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에서 재료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반면, 레일라 CTO는 하버드의대를 졸업한 후 생명공학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마쇼프 자매는 패션 산업의 환경영향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패션소매업체를 지켜보며 막대한 의류폐기물 문제를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마쇼프 자매는 각자의 경력을 살리면서 패션 산업 내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힘을 합칩니다.

레일라 CTO는 생명공학 연구 경험을 살려 탄소를 포집하는 효소를 연구했습니다. 여기에 니카 CEO의 재료공학 지식을 더해 섬유 소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

그렇다면 루비 랩스는 어떻게 공기 중 CO²로 섬유를 만들 수 있을까요?

 

▲ 루비 랩스는 효소를 사용해 기체 속 CO²를 포집하고 셀룰로오스 펄프로 변환한다. ©Rubi Laboratories 홈페이지 갈무리, greenium 번역

이산화탄소와 나무로 만든 섬유, ‘나무 없이도’ 만들 수 있다고? 🌲

마쇼프 자매는 루비 랩스의 기술이 효소를 바이오 촉매로 활용해 대기 중 CO²를 포집하고, 이를 순수한 셀룰로오스 펄프로 변환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CO²가 포함된 기체를 효소가 담긴 반응기(Bioreactor)에 주입합니다. 첫 번째 효소가 기체에서 CO²만 포집하면 이후 탄소가 용해된 액체가 나옵니다.

이를 두 번째 효소에 반응하면 액체에 용해된 탄소(C)가 산소(O)와 수소(H)가 결합된 ‘셀룰로오스([C6H10O5]n) 펄프’로 생성됩니다.

루비 랩스는 이 펄프를 걸러내 섬유 방적의 원료로 사용합니다.

마쇼프 자매는 나무가 자라는 방식을 보고 탄소포집 제품 개발에 영감을 얻었다고 회상합니다. 셀룰로오스는 나무가 대기 중 CO²를 흡수해 합성하는 식물 세포벽의 기본 구조 성분입니다.

동시에 일종의 ‘섬유질’입니다. 목화·모시·삼베 등도 셀룰로오스로 구성돼 있습니다.

 

▲ 루비 랩스가 실험실에서 포집한 CO²를 사용해 셀룰로오스 섬유로 만든 시제품의 모습. ©Rubi Laboratories

실제로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는 종이뿐만 아니라 레이온*·비스코스** 같은 섬유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즉, 루비 랩스는 나무가 아니라 반응기를 사용해 탄소포집과 섬유 생산의 순환을 연결했단 것.

탄소포집과 제품 생산을 연결하는 시도는 비단 루비 랩스만은 아닙니다. 다만, 에너지와 비용 문제 등으로 탄소포집 제품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은 드문 상황입니다.

이에 루비 랩스는 자사의 기술이 효소를 사용한 덕에 비용이 저렴할뿐더러,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일론 등 폴리에스터와 같은 화학섬유와 달리 식물성섬유인 셀룰로오스는 생분해가 가능하고 재활용이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레이온: 면 조각, 나뭇조각 등을 화확용품으로 녹여 실로 뽑은 재생섬유.
**비스코스: 셀룰로오스 내 불순물을 제거해 만든 섬유.

 

▲ 포집된 CO²로 만든 셀룰로오스 펄프에서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고 있는 레일라 CTO의 모습. ©Rubi Laboratories

공급망 탄소감축에 진심인 월마트, 루비 랩스와 만난 까닭? 🛒

루비 랩스는 자사의 기술이 일반 대기 중의 CO²를 포집할 수도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 배출되는 고농도의 CO² 포집에 더 적합하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루비 랩스는 주로 섬유공장과 협력해 CO²를 포집해 다시 섬유를 만드는 순환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화학공장, 발전소, 식음료 제조기업 등 여러 생산시설에 해당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덧붙였습니다. 월마트가 루비 랩스와 협업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월마트는 지난 2017년 2030년까지 자사의 공급망에서 1기가톤(Gt, 1Gt=10억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협력사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기가톤(Project Gigaton)’ 이니셔티브를 운영 중입니다.

즉, 월마트가 루비 랩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공급망 내 배출량 감소를 위한 지원이란 것.

실제로 월마트는 루비 랩스와 크게 두 가지 파일럿(실증) 프로젝트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첫째, 루비의 반응기 시스템을 월마트의 공급망 내 생산시설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CO²를 재자원화할 것입니다.

둘째, 루비 랩스의 섬유를 사용한 프로토타입(시제품) 의류를 개발하고 성능을 실험합니다. 이는 프로젝트의 시장 접근성을 확장하기 위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실험이 성공하면 실제 미국 월마트 매장에서 루비 랩스 의류 컬렉션을 출시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제3자의 탄소상쇄크레딧을 구입하는 대신, 밸류체인(가치사슬) 내 탄소배출을 직접 감축하는 전략을 ‘카본 인세팅(Carbon insetting)’ 전략이라 부릅니다.

 

▲ 루비 랩스는 2022년 H&M 재단이 주최한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의 수상자 5곳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H&M

H&M·파타고니아도 탐내는 패션 스타트업, 루비 랩스!👀

루비 랩스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본 곳은 월마트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2월, 430만 달러(약 56억원)를 조달한 루비 랩스의 첫 번째 시드투자에는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 상당수가 참여했습니다.

덴마크 패션 브랜드 가니(Ganni)의 설립자인 니콜라이 레프스트럽, 중고패션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의 설립자도 엔젤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가니는 ‘미래의 섬유(Fabrics of the Future)’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루비 랩스와 함께 탄소포집 셀룰로오스를 실제 원사로 만드는 실험도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루비 랩스의 두 번째 시드투자에는 H&M과 파타고니아(Patagonia)의 틴셰트벤처스 등이 참여했습니다. 루비 랩스는 이때 870만 달러(약 113억원)를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날, 루비 랩스는 H&M·파타고니아·리포메이션(Reformation) 등 다수의 패션 브랜드들과 오프테이크(Offtake)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오프테이크 계약이란 미래에 일정 물량을 시장 가격으로 구매할 것을 미리 약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엔젤투자자: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해 해당 산업 육성에 밑거름 역할을 하는 개인이나 벤처캐피털(VC) 등을 뜻한다.

 

▲ 루비 랩스는 글로벌 패션 어젠다 서밋에서 탄소포집 셀룰로오스를 20% 함유한 원사를 선보였다. ©Global Fashion Agenda, 인스타그램

한편, 루비 랩스는 2022년 H&M 재단이 주최한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Global Change Awards)’에서 수상자 5곳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또 올해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글로벌 패션 어젠다 서밋(Global Fashion Agenda’s Summit)’에서 가니와의 협업 결과물을 공개했습니다.

루비 랩스는 탄소포집 셀룰로오스 20%에 일반 셀룰로오스를 혼합해 만든 원사를 선보였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해당 원사의 대량생산을 진행 중이라고 마쇼프 자매는 밝혔습니다.

가니 설립자인 레프스트럽은 “우리는 아직 완벽한 단계에 있지는 않지만 확실히 그곳(대규모 생산)에 도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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