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유(Palm Oil)는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식용 기름입니다. 팜오일, 야자유로도 불리는 팜유. 팜나무 열매를 쪄서 압착해 만드는데요. 세계자연기금(WWF)에 의하면,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절반 이상은 어떤 형태로든 팜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팜유가 삼림벌채의 주요 원인이란 점입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지난 15년간(2001~2015년) 1,050만 헥타르(ha)의 삼림이 팜나무 재배를 위해 사라졌습니다. 이는 세계 팜유 공급의 약 85%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두드러집니다.
지속가능성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체인지릭션리서치(CRR)에 따르면, 팜유 주요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푸아뉴기니에서만 최근 2년간(2019~2021년) 1만 9,000헥타르의 삼림이 신규 팜유 농장 건설을 위해 사라졌습니다. CRR는 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177㎢)보다 큰 면적”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열대우림이 팜유 농장으로 바뀌며 생물다양성도 크게 손실됐습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팜유 생산이 최소 193종의 멸종위기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C16 합성팜유 ‘팜리스’ 출시, 2023년 상업화 발표…“뷰티 제품 우선 사용” 💄
다만, IUCN은 해바라기 씨 등 다른 식물성 기름은 팜유보다 수확량이 적단 점을 꼬집었습니다. IUCN은 식물성 기름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는 이상 팜유를 대체할 식용유가 없단 점을 인정했는데요. 팜유 수요는 2050년까지 매년 1.7%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팜유를 대체할 물질은 없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 최근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C16바이오사이언스(C16 Biosciences·이하 C16)는 합성팜유 제품 ‘팜리스(Palmless)’의 출시를 발표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팜리스는 기존 팜유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회사 측은 팜리스가 내년부터 뷰티제품 내 팜유를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2023년까지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을 것을 예상한다고 C16은 덧붙였습니다. 고객사가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C16은 ‘팜유 산업으로 인한 삼림 파괴를 종식시킨다’는 비전 아래 2017년부터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효모를 이용해 합성팜유를 만듭니다. 지방산의 한 종류인 ‘팔미트산(C16)’이 활용되는데요. 회사 측은 바이오기술을 활용해 효모가 발효되면 세포 안에서 팜유와 유사한 기름이 생성되도록 만들었습니다.
C16의 효모는 부산물에서 탄소와 당을 흡수한 후 이를 지질로 바꿉니다. 효모에서 지질을 추출함으로써 합성팜유를 생산할 수 있다고 C16은 설명했는데요.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합성팜유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불포화지방산이 주성분인 다른 식물성 기름과 달리, 팜유는 포화지방산 함량이 45%로 높습니다. 이에 C16은 효모 발효 과정에 고탄소 산업 부산물을 공급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기후펀드 BEV 투자, “합성팜유 상업화 단계 첫 발 내딛게 만들어줘” 💰
합성팜유 생산의 가장 큰 난관은 높은 생산단가입니다. C16은 합성팜유 시제품을 일찍이 개발했으나 높은 생산단가로 인해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실제로 C16의 합성팜유 가격은 기존 팜유보다 2~3배 이상 높았습니다. 여기에 효모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대형설비를 만들어야 한단 것도 문제였는데요.
C16은 2020년 빌 게이츠의 기후펀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로부터 2,0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241억원)를 투자받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16은 당시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 및 생산설비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당시 투자 덕에 C16은 5만 리터 규모의 합성팜유 생산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올해 C16은 합성팜유 제품 팜리스를 출시하게 된 것인데요.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합성팜유 상업화 단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카마이클 로버츠 BEV 투자위원장은 합성팜유 출시에 대해 “C16에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C16이 과학을 상업적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로버츠 위원장은 이어 “(팜리스가) 소비자에게 덜 해로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티쿠 CEO, “싱가포르서 팜유 처음 알게 돼”…열대우림 개간 ‘외교 분쟁’ 촉발 🌴
C16이 합성팜유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라 티쿠 C16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 출장 당시의 경험 때문이라고 회고합니다.
티쿠 CEO는 미 경제전문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출장 당시) 공기질 지수(AQI)가 400이었는데 일반적으로 300을 넘으면 ‘매우 건강에 해로움’으로 간주한다”며 “당시 학교가 폐쇄되고 임산부는 밖에 나갈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티쿠 CEO는 “(싱가포르의) 이웃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을 태우며 나온 연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열대우림에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선 주로 화전(火田) 방식이 사용됩니다. 즉, 숲에 불을 질러 나무를 다 태워버리는데요. 이 과정에서 매년 산불이 발생하고, 건기에 이웃나라로 연무(연기)가 확산하는 일이 잦습니다. 가령 2015년 인도네시아의 불법화전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연무로 인해 아세안 10개국 중 6개국이 영향을 받았는데요.
싱가포르는 대기오염을 야기한 인도네시아 기업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취했고, 태국 또한 인도네시아 산불 확산을 추적하고 공기질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한 외교 분쟁도 발생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팜유 농장이 일으키는 여러 문제를 체감한 티쿠 CEO는 귀국 후 미 하버드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는데요. 이후 같은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공부 중이던 해리 맥나마라 박사,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보건과학기술 박사를 준비 중이던 데이비드 헬러 박사와 뜻을 모아 C16을 공동 설립합니다.
+ 열대우림 개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도 높아! 📈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열대우림을 팜유 농장으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전 세계 총 온실가스 배출량(GHG)의 0.8%를 차지하는데요. 이는 세계 항공 배출량의 거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팜유 농장으로 개간하는 과정 중 천연 탄소 저장고인 이탄지(泥炭地·peatland)도 불에 타기 때문인데요. 나무가 불에 타면서, 토양 속에 저장된 탄소가 밖으로 배출되는 상황.
추적성·유연성 고루 갖춘 C16, ‘2022 바이오 농업 솔루션’ 선정돼 🏆
C16은 팜유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식물성 기름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C16 공동설립자인 헬러 박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종류의 미생물 기름을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 중”이라며 “미래에는 여러 식물성 기름 대체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는데요.
한편, 지난 8일(현지시각) C16은 ‘바이오테크 브레이크스루 어워드(BioTech Breakthrough Awards)’에서 ‘2022년 바이오 농업 솔루션’으로 선정됐습니다.
심사위원단은 “C16의 기술은 전 세계로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을뿐더러, 저렴한 생산이 가능하게 한다”고 평가했는데요. 효모를 통한 합성팜유 생산 덕에 추적성 및 신뢰성을 두루 갖춘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기업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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