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요리책은 잊어라! 인류 종말 대비한 ‘인류세 요리책’ 나왔다

지구비상사태에 새로운 먹거리 탐색한 ‘인류세 요리책’

10여년전만 해도 대체육·배양육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이디어로 치부됐습니다. 실내에서 채소를 키우는 버티컬팜(실내농업)도 우리의 일상보다는 우주정거장에 더 어울렸는데요.

그러나 기후변화로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며 미래식량으로 여겨졌던 먹거리들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가령 싱가포르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배양육을 식품으로 승인했습니다. 버티컬팜은 국내 지하철역과 가구 매장 등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들도 있습니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나무는 2050년 무렵에는 10%만 남게 됩니다. 커피나무와 어패류의 수확률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고, 감자는 종의 25%가 멸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후변화가 우리의 식탁을 바꿀 것이 자명한 상황.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먹으며 살아가게 될까요? 오늘은 파격적인 상상으로 미래의 요리법을 살펴본 책을 소개합니다.

 

▲ <인류세 요리책>의 저자인 제인 세르피나와 스톨 스텐슬리. ©Anthropocene Cookbook

지구비상사태에 새로운 먹거리 탐색한 ‘인류세 요리책’ 🍳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에서 흥미로운 요리 디자인 책이 발간됐습니다. ‘인류세 요리책: 미래의 재앙을 위한 요리법과 기회(Anthropocene Cookbook: Recipes and Opportunities for Future Catastrophes)’입니다.

이 책은 노르웨이의 디지털 예술가인 제인 세르피나와 스톨 스텐슬리가 공동 저술했는데요. 저자는 이 책을 인류의 영향으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그리고 멸종위기가 현실화되는 ‘인류세’ 시대를 위한 요리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인류세(Anthropocene)란 인류를 뜻하는 ‘아트로포스(anthropos)’와 시대를 뜻하는 ‘세(cene)’의 합성어입니다.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일컫는 비공식 용어입니다.

이 책은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여타 요리책처럼 ‘맛있고 영양가 있는 요리’를 소개합니다. 차이점은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식습관을 뒤집는 재료와 조리법이 소개된단 것. 핵겨울*로 인한 햇빛 차단 같은 재난이 닥치거나 플라스틱이나 사람의 신체마저 식재료가 되는 상황 등 극단적 미래에 대비하는 요리책이기 때문인데요.

이 책에는 인류세 시대를 대비하는 다채롭고 창의적인 요리 아이디어 60여 가지가 담겼습니다. 책의 주제는 ▲식량안보에 대한 대안적 접근 ▲식용 가능한 새로운 재료 ▲인체 요리 가능성 등인데요.

주제별로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 아이디어를 살펴봤습니다.

*핵겨울(Nuclear Winter): 핵전쟁으로 지구에 대규모 환경변화가 발생하여 인위적으로 빙하기가 발생하는 현상.

 

▲ 설치미술가 긴츠 가브란스는 장내 젖산균인 비피더스균을 유전자 변형해 인류가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Gints Gabrāns

1️⃣ 빵이 사라진 미래, 나무·종이 소화할 수 있게 신체를 개조하자고? 🙊

20세기 초 20억 명이었던 인류는 약 1세기 동안 70억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오는 2050년에는 인구가 100억 명에 달할 것이며, 식량은 70% 이상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유엔은 예측했는데요. 이 때문에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식량안보’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체식품 개발도 활발한 상황.

이에 저자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안합니다.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확장하는 대신, 인류의 몸을 개조해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해보자는 것. 책에서는 일례로 라트비아의 설치예술가 긴츠 가브란스의 ‘푸우드(FOOOD) 프로젝트’가 소개됐습니다.

가브란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비피더스균에 주목했습니다. 비피더스균은 신체의 대장에서 역할을 하는 젖산균으로, 장의 면역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가브란스는 미생물학자들과 함께 비피더스균의 유전자 변형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그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셀룰로오스 분해 효소 및 합성 능력을 부여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요.

 

▲ 소스와 함께 종이 개구리가 올라간 요리와 유전자 변형으로 셀룰로오스 분해 효소 합성 능력이 부여된 비피더스균의 모습 ©Gints Gabrāns

‘식이섬유’로도 불리는 셀룰로오스는 식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포도당 중합체로 영양분이 풍부한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이를 소화하지 못합니다. 만약 인간이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수 있게 되면 감자, 양배추 등의 식품에서 지금보다 30%가량 더 많은 영양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브란스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아울러 나무와 종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자원도 먹을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심지어 빵보다 종이에서 11% 더 많은 칼로리(cal)를 얻을 수 있는데요.

셀룰로오스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게 될 경우 종이 100g당 400킬로칼로리(kcal), 빵은 355킬로칼로리를 얻을 수 있다고 가브란스는 설명했습니다.

 

▲ 플라스틱 폐기물로 식용 균사체를 재배하는 주방기기인 ‘펀지 뮤타리움’의 모습. 한천으로 만든 껍데기 속에 검정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자라는 하얀 균사체를 확인할 수 있다. ©Livin Studio

2️⃣ 톱밥 대신 폐플라스틱으로 식용 버섯 키우는 미래 🧫

오스트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리빈스튜디오는 2014년, 폐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식용 버섯 재배기 ‘펀지 뮤타리움(Fungi Mutarium)’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과 공동으로 제작된 기기인데요.

우선 한천(Agar·해초가공품)으로 만든 달걀 모양의 껍데기 속에 배양액과 플라스틱을 채웁니다. 버섯이 배양액과 함께 플라스틱을 소화하면서 껍데기 위로 실 모양의 균사체가 발생하는데요. 2주가량이면 버섯이 먹을 수 있는 만큼 자란다고 스튜디오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 기기의 목적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폐플라스틱을 식품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단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 요리책 속 ‘펀지 뮤타리움’이 소개된 페이지와 균사체를 이용한 식품 ‘푸’의 조리 모습. ©Anthropocene Cookbook, Livin Studio

펀지 뮤타리움에는 2가지 유형의 균사체가 사용됐습니다. 서양에선 굴버섯으로 불리는 느타리버섯(Pleurotus Ostreatus)과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먹는 치마버섯(Schizophyllum Commune)인데요.

생김새만 보면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는 재배된 균사체가 식용 가능한 껍데기와 함께 통째로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균사체와 껍데기를 아울러 새로운 식품 ‘푸(Fu)’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독특한 생김새의 푸에 맞춰, 4가지의 전용 식기인 펀지 식기(FUNGI CUTLERY) 디자인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 영국의 디자이너 제임스 길핀은 당뇨 환자의 소변을 사용해 ‘길핀 가족 위스키’를 만들었다. ©James Gilpin

3️⃣ 당뇨 환자의 소변으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까? 🥃

미래 식량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인체’까지 뻗어나갔습니다. 한 챕터의 제목은 무려 ‘휴먼 델리(Deli·육가공품)’로, 이 장에서는 식재료와 조리도구로서 인체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저자는 인간의 배설물이 영양보충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수분과 함께 단백질 등이 함유돼 있기 때문인데요.

영국 디자이너인 제임스 길핀은 ‘소변 섭취’라는 금기에 도전한 인물입니다. 그는 2010년, 당뇨병 진단을 계기로 당뇨 환자의 소변을 위스키의 재료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첫 기증자는 당뇨를 앓는 그의 할머니였습니다. 이에 길핀은 프로젝트명을 ‘가족 위스키(Family whiskey)’로 지었는데요.

 

▲ 길핀은 자신의 할머니를 포함한 노인 자원봉사자에게서 소변을 채취해 위스키 원료로 사용했다. ©James Gilpin

그런데 당뇨 환자의 소변이 어떻게 위스키의 재료가 될 수 있단 걸까요?

당뇨병은 인슐린 대사에 문제가 생겨 혈당이 높아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당뇨(糖尿)라는 병명처럼, 환자의 소변에는 평균보다 더 높은 농도의 당이 검출되는데요.

길핀은 자신의 할머니를 포함한 노인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소변을 채취했습니다. 그리고 소변을 여과한 뒤, 당분을 걸러냈습니다.

그는 이 당분을 원료 혼합물에 혼합해 위스키 발효 과정을 거쳤는데요. 일반적으로 위스키 발효에는 곡물의 당분을 활용하나, 길핀은 이를 당뇨 환자의 소변 추출물로 대체한 것입니다.

다만, 이 위스키는 비매품으로 일부 전시회에서만 샘플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가 “그동안 고려되지 않았던 자원을 활용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냈다”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 인류세 요리책에는 모유를 사용해 치즈를 만드는 프로젝트인 ‘여성치즈가게’ 사례도 실렸다. ©Miriam Simun

새롭다 못해 불쾌한 상상력, 극단적 아이디어만 골라 담은 이유는? 🤔

책에는 실제로 구현된 것도 있지만 도저히 실현할 수 있지 않은 아이디어도 많이 담겨있습니다. 바퀴벌레 우유처럼 인간의 불쾌함을 자극하기도 하고, 모유로 만든 치즈처럼 법과 윤리의 경계 너머에 있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아이디어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는) 상상할 수 없고, 있을 법하지 않으며, 원치 않는 것까지 상상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책의 목표는 “몇 세대 안에 인류를 강타할 수많은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극단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외계인 E.T 모양을 닮은 바비큐 요리 먹기 워크숍인 ‘E.T. 먹기—가짜 외계인 BBQ와 유전공학을 활용해 만든 인체와 해조류의 공생 시스템인 조류 양식 프로젝트. ©Terje Östling and Unsworn Industries, Michael Burton and Michiko Nitta

동시에, 극단적 아이디어는 지금의 일상을 비판적 돌아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현재의 기후위기가 부분적으로는 요리책 자체에 의해 야기된다”고 꼬집었는데요. 여기서 ‘요리책’은 기성 식품 시스템을 은유합니다. 이어 저자는 오늘날의 식품 시스템 문제를 직시하고 바꿔야 한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SF영화 캐릭터인 E.T. 모양의 바비큐 요리를 보면서 느끼는 불쾌함은 축산업의 불합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해조류와 공생하거나 썩은 고기를 소화할 수 있도록 신체를 개조하는 극단적인 아이디어는 급박한 식량위기 상황을 실감하게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의 실패”라며,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예술 및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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