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체리 씨앗 아직도 쓰레기통에 버리니? 이젠 아이스크림에게 양보해!

지난 7월 오스트리아 크렘스(Krems)에서 열린 ‘알레스 마릴(Alles Marille)’* 살구 축제에 특별한 아이스크림이 소개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스크림에 사용된 주재료가 살구의 과육이 아닌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살구 씨앗 아이스크림을 내놓은 브랜드는 분더컨(Wunderkern). 이 아이스크림은 우유는 물론, 일반적인 대체유제품 원료인 아몬드 우유도 쓰지 않았습니다. 아몬드 우유는 기존 유제품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GHG) 등 환경 영향은 낮지만, 물소비량이 유독 높아 비판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분더컨은 아몬드 우유 대신 살구 씨앗을 사용해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맛과 질감을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맛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잡은 아이스크림에 대중들은 단연 열광했습니다.

이처럼 과일 씨앗이나 커피박(커피찌꺼기) 등 식품폐기물에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을 푸드 업사이클링(Food Upcycling)이라 부르는데요.

오스트리아 살구 축제를 뒤흔든 푸드테크 스타트업 컨텍(Kern Tec)을 소개합니다.

*Alles Marille: 우리말로 ‘살구의 모든 것’을 뜻한다.

 

© 살구 씨앗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왼)과 체리‧살구‧자두씨로 만든 오일과 초콜릿 스프레드(오)_Wunderkern, Instagram

컨텍, 버려지는 과일 씨앗을 ‘기적의 씨앗’으로 만들다 🍑

오스트리아 스타트업 컨텍. 2018년 설립된 푸드테크 기업인데요. 쓰레기장에 버려질 뻔한 과일 씨앗을 업사이클링해, 과일산업 내 순환경제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컨텍은 씨앗에 풍부한 지방을 추출해 식품과 화장품 업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천연 오일을 생산합니다. 천연 오일을 짜고 나온 압착 찌꺼기도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데요. 찌꺼기 속 단백질을 추출하면 식물성 우유나 단백질 파우더(가루) 등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비건 원료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컨텍은 그간 생산된 원료를 대형마트 및 화장품 업계에 공급해왔는데요.

지난 4월, 컨텍은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이 브랜드가 바로 살구 씨앗 아이스크림을 내놓은 ‘분더컨(Wunderkern)’인데요. 분더컨은 독일어로 ‘기적의 핵심’으로, 버려진 과일 씨앗들이 알고 보면 기적처럼 풍부한 영양을 지니고 있단 뜻을 담고 있습니다.

컨텍은 기업에게 판매하던 비건 원료를 가공해 식용 오일과 초콜릿 스프레드 등 여러 제품을 만들었는데요. 이를 분더컨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 중입니다.

이번 살구 축제에서 선보인 아이스크림 또한 출시 전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축제 참여 이틀 만에 모든 재고가 소진됐다고 합니다.

 

© 살구 씨앗의 단단한 겉껍데기를 부수면 아몬드와 유사한 생김새의 알맹이를 볼 수 있다_Wunderkern, Instagram

살구 축제에서 찾은 농부의 지혜, 푸드 업사이클링으로 연결돼 🧑‍🌾

컨텍이 과일 씨앗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시작은 오스트리아 바하우(Wachau)에서 열린 살구 축제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하우. 오스트리아 내 주요 살구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컨텍의 공동설립자인 루카 피치팅어는 2018년경 친구들과 함께 바하우 살구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비엔나경제경영대 출신이던 이들은 지역 과수농가와의 대화에서 과일 가공 산업의 문제를 알게 됐는데요.

그 문제란, 잼과 주스 등 살구를 가공할 때 씨앗이 부산물로 생기지만 그대로 버려지고 있단 것. 과수농가에선 살구 씨앗이 아몬드처럼 맛이 좋을뿐더러, 단백질과 지방산이 가득하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요.

 

© 유럽 내 과일 가공 산업에서만 연간 50만 톤 이상의 씨앗이 페기된다_Kern Tec

그도 그럴 것이 살구 씨앗은 애초에 아몬드와 같은 ‘핵과류’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핵과류는 부드러운 열매 속 단단한 껍데기로 싸인 씨앗이 있는 식물을 일컫는데요. 우리가 먹는 아몬드는 껍데기 속 부드러운 씨앗 부분입니다. 즉, 살구 씨앗도 아몬드처럼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비타민 등 영양분이 풍부하게 담겨있단 얘기인데요.

허나, 아몬드와 달리 식품 산업에서 버려진 과일 씨앗은 부산물로 여겨져 폐기됩니다. 기껏해야 열병합발전소의 연료로 태워지거나 매립되는 처지인데요. 컨텍은 유럽에서만 연간 50만 톤 이상의 과일 씨앗이 발생해 버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 살구, 자두, 체리 등 핵과류 씨앗 속에는 독성물질인 ‘아미그달린’이 함유돼있다_iStock

씨앗 업사이클링을 위한 도전! 살구씨 속 아미그달린을 제거하라 ⚠️

살구 축제를 계기로 씨앗 폐기물 문제가 전 유럽의 문제란 것을 깨달은 피치팅어. 그는 친구들과 함께 씨앗의 잠재력을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살구 씨앗에 함유된 아미그달린(amygdalin) 때문이었습니다.

아미그달린은 살구‧복숭아 등 핵과류 씨앗에 함유된 성분입니다. 이 성분이 체내에서 소화되면 독성물질인 시안화수소(HCN)로 분해되는데요. 치명적인 독인 청산가리와 매우 가까운 물질로 과다섭취 시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피치팅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친구들과 핵과류 씨앗에서 아미그달린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연구 끝에 이들은 과일의 핵에서 아미그달린만 안전하게 제거하는 기계를 개발합니다.

이 연구의 성공 덕분에 피치팅어는 친구들과 컨텍을 설립하게 되는데요. 컨텍은 유럽연합(EU) 내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실험실에서 가공이 진행될뿐더러, 식품 당국과 긴밀한 협력을 진행한 덕에 제품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우유와 쌀, 콩, 귀리, 아몬드 등 식물성 우유의 환경 영향을 나타낸 그래프_Daniela Haake

버려진 씨앗으로 아몬드 우유 대체하면 물발자국 16배 줄일 수 있어! 👣

피치팅어가 독성물질을 분리하면서까지 과일 씨앗 업사이클링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버려지는 자원이 아까워서는 아니었는데요. 피치팅어는 과일 씨앗이 아몬드 우유 같은 식물성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몬드 우유는 가장 인기 있는 식물성 유제품입니다. 동시에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단 지적을 받고 있는데요.

201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는 우유와 쌀‧콩‧귀리‧아몬드 등 식물성 대체우유의 환경적 영향을 비교한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든 식물성 대체우유가 기존 우유에 비해 환경적 영향이 3배가량 적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아몬드 우유는 탄소발자국은 가장 낮고, 토지 사용 또한 두 번째로 낮았습니다. 탄소발자국이 낮은 이유에는 아몬드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점이 작용했는데요.

문제는 아몬드 우유의 물소비량이 유독 높았단 점입니다. 가장 적은 물을 소비하는 두유와 비교하면 13배가 넘는 물이 필요한데요. 아몬드 우유 1컵을 만들기 위해선 74리터의 물이 필요하단 뜻입니다. 여기에 아몬드 농장 내 살충제 사용에 따른 꿀벌 군집 붕괴 등 생물다양성 손실 문제도 불거졌는데요.

피치팅어는 살구 등 과일 씨앗을 업사이클링하는 것이 아몬드보다 환경적 영향이 매우 적단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는 씨앗 업사이클링이 “과일 산업의 종점에서 시작하는 360도의 순환경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씨앗 업사이클링의 경우 기존 과일 산업의 폐기물을 사용해 토지나 물 등 추가 자원 투입이 거의 없다고 피치팅어는 설명합니다. 즉, 씨앗 업사이클링을 통해 아몬드 우유를 대체할 경우 물발자국은 16배 절약하고 탄소발자국도 절반이나 줄일 수 있단 것.

 

© 푸드테크 스타트업 컨텍의 공동설립자인 루카 피치팅어(오른쪽에서 3번째)와 컨텍 팀_Kern Tec

컨텍은 살구를 넘어 체리, 자두 등 핵과류 과일 전반으로 자원 순환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 중 체리 씨앗으로 만든 식용 오일은 농산물 가치평가기관 AVPA가 주관하는 세계 오일 챔피언십에서 금상을 받은 바 있는데요.

2018년 창업 후 컨텍이 오스트리아 현지 생산 시설에서 업사이클링한 과일 씨앗만 1,000톤이 넘습니다.

한편, 컨텍은 16일(현지시각) 에너지 및 농업 투자 기업 바이와(BayWa AG)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바이와는 성명을 통해 “세계 식량안보와 관련해 진전을 이루려면 독창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바이와는 그러면서 푸드 업사이클링 같은 혁신적인 솔루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영양분 없는 껍데기까지, 100% 업사이클링 노력해 🍑
과일 씨앗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겉껍데기. 영양분이 없어 식품 원료로는 사용되지 못하는데요. 컨텍은 100% 순환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과일 씨앗의 단단한 겉껍데기 또한 업사이클링하고 있습니다.

겉껍데기는 미세하게 분쇄돼 테이크아웃 커피컵 원료나 화장품 속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데요. 컨텍은 이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수질 오염을 방지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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