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싱가포르 에어쇼와 함께 ‘세계 3대 에어쇼’로 꼽히는 판버러 에어쇼(Farnborough International Airshow). 지난 18일(현지시각)부터 22일까지 닷새간 영국 판버러 공항에서 개최됐는데요.
개최 첫날인 18일, 유럽 항공우주기업인 에어버스(Airbus)는 직접공기포집(DAC)에서 나온 탄소제거 크레딧을 구매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단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외부 사업에서 확보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향후 배출량 제거에 활용할 수 있는 크레딧인데요.
이번 의향서 서명에는 에어캐나다(AC), 에어프랑스-KLM(AIRF), 루프트한자그룹(LHAG), 버진애틀랜틱(VS) 등 주요 항공사들도 참여했습니다.
해당 크레딧은 에버버스의 파트너인 미국 에너지 기업 옥시덴탈페트롤리움(OXY, 이하 옥시덴탈)의 자회사, 1포인트파이브(1PointFive)가 발행할 예정입니다. 앞서 지난 3월 에어버스는 1포인트파이브로부터 4년간 40만 톤의 탄소제거 크레딧을 사전 구매했다고 밝혔는데요.
구체적인 계약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옥시덴탈은 에어버스와의 계약 덕에 미국 남서부 일대 DAC 플랜트를 건설할 수 있게 됐습니다. 건설은 올해 말 시작돼 2024년부터 운영될 계획인데요.
해당 플랜트는 연간 최대 1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할 예정입니다. 이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19개 DAC 플랜트를 모두 합친 것보다 100배 더 큰 용량인데요.
그런데 에어버스는 왜 굳이 비싸다고 소문난 DAC 플랜트의 크레딧을 구매한 것일까요?
높은 운영비로 인해 비싼 DAC 크레딧…뜨거운 인기로 ‘없어서 못 팔아’ 💰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CO2)를 직접 포집해 농도를 감소시키는, 즉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가 가능한 DA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최신 보고서를 통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인 1.5°C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선 DAC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DAC 플랜트 가동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돼 운영비용이 비싸단 점입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DAC가 자원·에너지 집약적인 만큼 다른 방식에 비해 CO2 톤당 비용이 많이 든다고 설명하는데요.
포집 기술 및 규모, 에너지원 선택에 따라 다르지만, DAC 플랜트는 CO2 포집 톤당 대개 250~600달러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반면, 탄소상쇄가 가능한 재조림은 비용이 톤당 50달러(한화 약 6만원) 미만인데요.
지열로 운영되는 세계 최대 DAC 플랜트 오르카(Orca)의 운영비용도 비싸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로 인해 DAC 플랜트에서 나온 크레딧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오르카를 운영 중인 클라임웍스(Climeworks)는 DAC 크레딧 가격을 톤당 약 775달러(한화 약 101만원)로 책정했습니다.
허나, DAC 플랜트의 크레딧은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매진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클라임웍스의 공동 대표인 얀 부르츠바허는 높은 수요 덕에 오르카 플랜트에서 나온 크레딧이 가동 3개월 만에 전부 매진됐다고 밝혔는데요.
다니엘 에게르 클라임웍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스트라이프, 아우디, 마이크로소프트(MS), 스위스리(Swiss Re),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같은 기업 고객들이 앞다퉈 클라임웍스의 크레딧을 구매했다고 설명합니다.
가령 MS의 ‘탄소 네거티브 기술 개발 촉진 및 가속화’를 위해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1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MS는 자사의 2030 탄소 마이너스(-) 전략에 맞춰 클라임웍스의 크레딧을 구매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기업의 투자 덕에 DAC 크레딧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클라임웍스는 민간 투자 및 기술 발전 덕에 크레딧 가격이 10년 안에 현행 775달러에서 250달러(한화 약 32만원)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 세계 최대 재보험업체 스위스리는 왜 DAC에 투자했을까?
투자 통해 DAC 크레딧 확보 나선 기업들, 이유는? 🏦
에어버스의 투자 또한 항공과 같이 탄소배출량 감축이 어려운 산업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DAC 플랜트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어버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러 항공사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경로로 DAC 기술 및 산업 촉진에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는데요.
에어버스는 이어 금번 서명이 기후중립적인 항공 여행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파트너십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줄리 키처 에어버스 커뮤니케이션 및 홍보 부사장도 “(이번 서명은)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유망 기술을 사용하려는 항공업계의 구체적인 행보”임을 강조했는데요.
지난해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와 캐나다 몬트리올 은행(BMO)이 각각 1톤과 1,000톤 분량의 크레딧을 선구매했는데요. 해당 크레딧을 판매한 카본엔지니어링(Carbon Engineering)은 해당 투자 덕에 DAC 플랜트 추가 건설이 가능케 됐습니다.
이같은 기업 투자 덕에 DAC 전문 기업 및 플랜트 수가 점점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앞다퉈 DAC에 투자하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입니다. 맹그로브숲 같은 자연 기반 탄소제거 프로젝트는 산불이나 가뭄 같은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는데요.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과 가뭄의 빈도수가 더욱 잦아져 산림 탄소상쇄 프로젝트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반면, DAC는 대기 중에서 포집한 CO2를 지하에 영구적으로 저장한단 장점이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재조림의 경우 막대한 양의 토지가 필요합니다. 시드니대학교 화학부 교수인 디나 알렉산드로는 호주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호주의 2년간 탄소배출량(약 10억 톤)을 포집하기 위해 재조림을 사용하면 뉴사우스웨일스주 크기와 같은 면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는데요. 이는 한반도 면적의 약 4배에 달합니다.
알렉산드로 교수는 이어 “DAC는 99.7% 더 적은 공간으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재조림에 필요한 물소비량까지 고려하면 DAC 플랜트의 수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DAC 확대 위해선 정책적 지원도 필요해! 🇺🇸
한편, 지난 5월 미국 에너지부(DOE)는 톤당 크레딧 가격을 100달러(한화 약 13만원)로 내리기 위한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DOE는 초당적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안(IIJA)에 배정된 35억 달러(한화 약 4조 5,000억원)를 통해 연간 100만 톤 이상의 CO2 제거를 위한 DAC 플랜트 개발 프로젝트 4개를 시작했는데요. 이밖에도 탄소포집 및 격리를 장려하기 위한 세액공제법도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