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작물로 불립니다. 아시아 국가의 주식인 쌀은 세계 인구의 30%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중국·인도·베트남 등 주요 쌀 생산국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대규모 풍작을 기록한 상황입니다. FAO는 지난해 세계 쌀 생산량이 5억 2,000만 톤에 달하며, 올해 역시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세계 밀가루·옥수수 식량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쌀의 풍작이 지구촌 식량난을 해소에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쌀이 세계 식량난 해소에 도움이 된단 소식은 반가운데요. 허나,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이 소식을 마냥 반가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쌀은 모든 곡물 중 온실가스 배출량(GHG)이 가장 높기 때문인데요. 한국인의 주식인 쌀이 기후친화적이지 않단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전 세계 농업 온실가스 배출량 10% 차지하는 쌀 🍚
쌀은 벼의 씨앗을 벗겨낸 곡물입니다.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선 적절한 물 관리가 중요한데요. 벼는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작물이므로 거의 전 생육기간 논에 물이 있는 상태로 재배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는 대개 7월 초·중순 2주 이내 물떼기(논바닥 말리기)를 하고, 이후 벼가 익는 시기까지 5~7cm 깊이로 물을 공급합니다. 이 재배법은 벼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 즉 메탄생성균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듭니다.
벼가 호흡하기 위해 산소를 흡수하기 시작하면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용존산소량)이 소모되는데요. 토양 내 산소 또한 서서히 줄어들며, 메탄생성균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진 재배법인데요.
문제는 이 재배법이 메탄 배출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메탄(CH4)이 이산화탄소(CO2)보다 지구온난화에 21배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는데요. 세계은행(WB)은 전 세계 인위적 메탄배출량 중 벼농사가 10%를 차지할뿐더러, 이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벼농사는 전체 농업 온실가스 배출량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쌀은 세계 농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물소비량 또한 많아 세계 관개용수의 약 40%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세계 쌀 생산량의 80%가 몰린 아시아는 말이죠 🌏
벼농사로 인한 메탄배출량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요. WB는 동남아시아의 경우 벼농사가 지역 메탄배출량 중 25~35%를 차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벼농사가 총 메탄배출량이 절반 가량을 차지합니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도 비슷한 수치인데요.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인 중국은 벼 재배 관련 전 세계 메탄배출량에서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개용수 줄이는 것만으로도 벼 재배 중 메탄배출량 ↓ 🌾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쌀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상황에 맞게 메탄배출량을 줄이는 농법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국제벼연구소(IRRI)가 중심이 돼 동남아시아에 보급하고 있는 기술 AWD(Alternative Wetting and Drying)가 대표적입니다. 보통 벼농사는 논바닥에 물을 항시 채워 넣는 반면, AWD는 필요할 경우에만 물을 채우는 방법입니다.
논바닥의 지하수위를 측정한 후 기준수위 밑으로 내려갈 때만 다시 물을 채워 넣는 것인데요. 논바닥 곳곳에는 지하수위 파악에 도움을 줄 30cm 길이의 파이프가 박혀있습니다. 농부들은 파이프에 담긴 물을 보며 관개작업을 반복할 수 있는데요.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SRI(System of Rice Intensification)란 농법을 사용합니다.
AWD, SRI는 명칭과 구체적인 기술 방식은 다르나 관개용수를 적게 쓰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메탄생성균의 활성화를 막은 덕에 메탄배출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아칸소대 연구팀은 AWD를 사용할 경우 메탄배출량을 64%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물소비량 또한 20~4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WD와 SRI가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지수(GWP)를 29%에서 90%까지 줄일 수 있단 발표도 있는데요. 기관별로 수치의 차이는 있으나 두 농법이 메탄배출량 저감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점에 연구자 간의 이견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장점 덕에 두 농법은 현재 기후스마트농업(CSA)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다만, 두 농법을 실제 농사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힘들단 의견도 있습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2014년 연구를 통해 AWD의 도입을 막는 장애물들을 분석했는데요. WRI는 관개용수가 언제나 통제되는 환경이 아니란 점을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농부들을 끌어들일 유인책이 없단 점이 문제였는데요. 당시 WRI는 “농부들은 배출량을 줄이는 데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할뿐더러, 배출량을 늘려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켈로그 등 식품 대기업, AWD 장려 위해 보조금 정책 시행 중 💰
이에 최근에는 기업과 정부 모두 AWD를 장려하고자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식품 대기업 켈로그는 자연보호협회(TNC)와 협력해 2020년부터 아칸소주 농부들에게 AWD를 장려 중인데요.
TNC가 30개 농장에 AWD를 교육하고 필요한 장비를 대신 구매하고, 켈로그가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였죠. 프로그램 덕에 아칸소주 논바닥 일대에 180개 관개 펌프 타이머가 설치됐는데요. 타이머가 끝나면 펌프를 자동으로 꺼서 물을 절약하는 형태입니다. TNC 과학자들은 타이머가 연간 90억 갤런의 물을 보존할 것으로 추정했는데요.
켈로그는 또한 미국 온실가스 측정 스타트업 리그로우(ReGrow)와 신젠타(Syngenta)와 협력해 루이지애나주 북동부 일대 농부들에게 AWD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AWD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해당 농법을 채택한 농장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인데요. 5개년 계획을 진행 중인 이 프로그램에는 약 200만 달러(한화 약 26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습니다. 세계 최대 제과업체 마스 리글리 등 다른 식품 대기업들은 AWD가 적용된 논을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도 벼 재배 시 발생하는 메탄 감축을 위한 농법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APEC 기후센터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메탄배출량의 약 23%가 벼농사에서 방출되는데요. 이에 정부는 농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논물관리’ 시범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 농법은 논에 물을 빼서 논바닥을 말리는 기간을 2주 이상 지속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관개용수를 다시 흘러보내면 환원(본래 상태로 돌아감) 작용으로 생기는 메탄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것인데요.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부터 저탄소 논물관리 등 저메탄 논농사 기술 보급에 나서는 중입니다. 크게 ▲메탄감축계수 개발, ▲간단관개·논물 얕게 대기 등 논물관리 기술 보급, ▲컨설팅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전남 해남, 경북 포함, 경남 의령, 충북 청주, 전북 고창, 충남 부여 등 6개 지자체가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됐습니다.
+ 이런 점들도 고려돼야만 해요! 💧
AWD, SRI 등 앞서 살펴본 농법들이 만능인 것은 아닌데요. 중간의 관개용수를 뺐다가 넣는 경우 메탄배출량은 줄어든 반면, 아산화질소(N₂O) 배출이 되려 늘어난 연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산화질소는 메탄과 더불어 주요 온실가스 중 하나인데요.
여기에 논에 있는 물을 빼는 과정에서 논바닥에 있는 생물들이 말라죽고, 강에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이 흘러가 부영양화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단 지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