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옷 수선 또한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선한 옷을 더 오래 입을수록 탄소배출량, 물소비량, 폐기물 등 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영국 비영리 환경단체 랩(WRAP)은 2017년 보고서에서 자국 내에 있는 의류 절반가량의 수명을 9개월 더 연장하면 탄소배출량 8%, 물소비량 10%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또 수선한 의류 1톤당 폐기물 4%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죠.
옷 수선의 여러 이점에도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원 제품과 똑같이 수선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색의 실이나 단추여도 수선한 티나 나기 마련이죠.
또다른 이유는 수선에 대한 편견입니다. ‘가난해서 헌 옷을 기워입는다’는 인식처럼 수선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국내외 모두 해당하는데요.
그러나 최근 옷 수선이 개성과 스타일링으로서 주목받으며 패션업계 전반에 패러다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순환패션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을 소개합니다.
새롭게, 티 나게, 자신 있게! 감추는 수선에서 ‘보이는’ 수선으로! 👓
지난해 1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흥미로운 팝업스토어가 열렸습니다. 스포츠 의류 브랜드 아디다스가 개최한 지속가능한 패션 관련 이벤트였는데요.
빈티지 의류, 지속가능한 재료 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습니다.
색색깔의 바느질과 패치로 옷을 화려하게 재탄생시킨 수선 상점인 이바 존(Eva Joan)입니다.
이바 존은 패션 디자이너인 비에른 팍과 엠마 빌뇌브가 공동으로 문을 연 의류 수선점입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이바 존. 오래됐지만 소중한 옷을 새로운 옷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설립됐는데요. 이 수선점의 특징은 그야말로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이바 존에서 수선한 가죽 재킷을 보시죠. 오래된 가죽 재킷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요. 두 디자이너는 최대한 비슷한 색의 가죽을 덧대 가리는 대신 연분홍, 연노랑, 파랑색 등 형형색색의 가죽을 활용해 구멍이 되려 드러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빈티지 작업 바지도 마찬가지로 더 큰 구멍을 만들고 색색의 실로 감침질하는 등 창의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데요. 이외에도 닳아버린 버건디 스웨터 소매를 연보라색 실로 메우거나 좀이 슨 셔츠 구멍을 쨍한 오렌지색으로 메우는 등 과감하고 거침없이 수선합니다.
이와 관련해 비에른 팍은 패션잡지 보그(Vogue)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옷의 여정을 숨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그는 또 “전통적인 수선은 나쁜 평가를 듣는다”며 “우리의 목표는 수선이 정말 재미있고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디자이너는 무엇보다 이바 존이 대중에게 친근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보이는 수선, 더 쉽다고 가치까지 저렴한 건 아냐! 💸
물론 보이는 수선을 시도하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보이는 수선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단 건데요. 보이지 않는 수선의 감쪽같음을 버리는 대신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수선에서는 성긴 홈질도, 튼튼한 박음질도 상관없습니다. 유튜브 영상에서 배운 간단한 기법만으로도 시도할 수 있죠. 똑같은 색의 실과 천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패치, 조각천을 고르는데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만큼, 보이는 수선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나만의 디자인을 가지고 직접 수선할 경우 수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보이는 수선의 가치가 저렴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바 존의 디자이너인 빌뇌브는 평균적으로 한 벌을 작업하는데 일주일가량 걸리며, 비용은 최소 80달러(한화 1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밝혔죠.
이는 보이지 않는 수선과 달리 보이는 수선은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영국의 의류 수선 및 복원 서비스 기업 메이크누(Make Nu)의 서비스 비용을 살펴볼까요. 지퍼 교체, 솔기 수리, 구멍 메우기 등의 기존 수선 작업은 12파운드(한화 1만 8,000원)가량인데요.
그에 비해 ‘보이는 수선’은 디자인에 따라 수선 금액이 18~35파운드(한화 5만 5,000원)까지 다양합니다.
앞서 소개한 이바 존이나 메이크누의 수선 비용이면 패스트패션 의류를 1~2벌까지도 구매할 수 있는데요. 최근 미국 중고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은 소비자들이 패스트패션을 꾸준히 구매하는 이유에 대해 저렴하고 편리해서란 응답이 다수였단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바 존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두 디자이너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바느질과 도드라지는 가죽 패치로 수선된 드레스가 새것 같은 드레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말했는데요. 빌뇌브는 “우리가 하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며, 보이는 수선은 소비자와 디자이너 간의 대화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수선을 받은 옷들에는 고객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 고객은 패션잡지 보그의 100주년 기념 티셔츠를 수선했는데요. 티셔츠를 수선한 메이크누는 고객이 오랫동안 보그 에디터로 일해왔기에 이 셔츠는 “남다르고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평했죠.
이처럼 수선은 나만의 이야기와 특별함을 전하는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는데요. 환경과 개성 모두를 잡을 수 있도록, 더 당당하게 수선할 수 있는 패션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잡히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