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가죽보다 더 지속가능한 ‘소’가죽이 있다?

축산업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이 널리 알려지면서, 패션계에서도 동물 유래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이 주요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동물 가죽을 대신할 소재로 버섯, 선인장, 파인애플 등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대체 가죽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악어가죽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버섯 곰팡이로 만든 가죽을 사용한 핸드백을 선보이기도 했죠. 이제 동물 가죽의 시대는 가고 대체 가죽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데 여기, 동물 가죽 제품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가죽 수선 플랫폼 코블러_The Cobblers, 홈페이지 캡쳐

‘강아지가 씹은 운동화,’ 버리지 말고 복원하세요! 🧶

동물 가죽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가 어딜까요? 가방? 옷? 놀랍게도 신발입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가죽 제품 시장의 47%를 신발 부문이 차지했습니다.

가죽은 통기성이 좋아 땀을 많이 흘려도 금방 마릅니다. 또 다양한 모양으로 성형할 수 있어 편안함을 잃지 않죠. 직물보다 견고해 보호 기능도 우수합니다.

축산업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싶지만, 가죽 신발은 신고 싶어’하는 모순된 마음은 이 때문일 텐데요.

미국 남부 마이애미에 위치한 코블러(The Cobblers)는 이 고민을 ‘수선’을 통해 해결하는 플랫폼입니다. 코블러는 우리말로 구두수선공이란 뜻인데요. 코블러는 이름대로 신발을 포함한 가죽 제품의 수선 및 복원 서비스를 제공 중입니다. 물론 핸드백과 가죽 의류도 포함되죠.

 

© 강아지가 물어 뜯은 운동화를 코블러의 구두수선공이 수선하는 장면 _The Cobblers 제공

물론 가죽 구두를 수선하는 곳은 많습니다. 코블러의 차별점은 구두수선공의 장인 정신을 지키면서도 더 간편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요.

먼저 수선을 원하는 고객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상담을 예약하면 됩니다. 이후 약 15분간 온라인 화상 플랫폼을 이용해 전문가로부터 수선 및 복원 견적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요. 코블러에게 의뢰를 맡길 물품을 우편으로 배송하면 바르면 수일 후 새로워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죠.

코블러는 기존의 제조·사용·폐기로 이어지는 선형 접근방식을 벗어나, 가능한 오랫동안 최대한의 가치를 끌어내 사용할 수 있는 순환적 접근방식을 강조합니다.

코블러는 이를 통해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신발을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하죠. 강아지가 씹은 운동화를 새 신발처럼 복원해낸 것처럼요! (얼마나 많은 가죽 신발이 강아지에게 씹혀 버려졌는지 생각해보세요.)

 

© 영국 중고 핸드백 복원 및 재판매 기업 핸드백 클리닉의 공동설립자 샬럿 슈태르크_David Anthony Bell

핸드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공무원을 포기하고 수선공이 된 샬럿 👜

핸드백을 너무 사랑해 고공 승진을 마다하고 돌연 가죽 수선 사업에 뛰어든 사람도 있습니다. 영국 핸드백 복원 및 재판매 기업 핸드백 클리닉(Handbag Clinic)의 공동설립자 샬럿 슈태르크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샬럿은 영국의 공공의료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제약 및 의료장비 수석구매자로 경력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됐는데요. 샬럿의 남편 벤은 가죽 가구 수리 기업인 퍼니처 클리닉(Furniture Clinic)을 운영하고 있었죠.

샬럿은 벤의 가구 클리닉에 핸드백 수선 요청이 증가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2013년 샬럿은 퍼니처 클리닉의 분사로 핸드백 클리닉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 핸드백 클리닉의 핸드백 수선 전후 비교 모습_Handbag Clinic 제공

샬럿은 시장 격차에 주목했습니다. 중고 명품 핸드백 시장에는 판매자와 수선 및 복원 기업 그리고 이를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가 존재했죠. ‘이들을 한데 모으면 어떨까?’란 생각을 한 샬럿은 구매·판매·복원을 통합하는 서비스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현재 핸드백 클리닉은 영국 런던, 뉴캐슬, 리즈를 넘어 유럽과 중동 각지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매달 약 700개의 가방을 복원하고 있는데요. 핸드백 클리닉의 2020년 매출은 100만 파운드(한화 약 15억원)였죠.

샬럿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지속가능성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중고 핸드백의 중요성도 같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는데요. 핸드백 클리닉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초기이던 2020년 중고 명품백 판매가 전년대비 500% 늘었다고 합니다.

 

© 핸드백 클리닉의 명품 핸드백 복원 및 수선 모습_Handbag Clinic, 트위터 갈무리

동물 가죽 수선 시장,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될까? 🤔

이미 만들어진 동물 가죽은 때론 비건 가죽보다 더 순환적이고 환경 영향이 적을 수 있습니다. 새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탄소발자국을 줄일뿐더러, 기존 가죽이 매립돼 발생할 탄소발자국 또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기준 세계 가죽 제품 시장은 연간 약 4,000억 달러(한화 약 500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입니다. 이중 동물 가죽 제품은 55%를 차지하는 만큼, 동물 가죽 수선시장의 성장잠재력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데요.

물론 아직까진 가죽 수선 서비스 상당수가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 위주로 이뤄진단 점은 아쉬울 뿐입니다. 수선비가 비싸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인데요. 앞으로는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질 좋은 중고 가죽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수선해 더 오래 잘 사용하도록 돕는 서비스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쓰기

관련 기사

순환경제, 산업

플라스틱 국제협약 부산서 성안 끝내 타결 무산…산업계 반응 엇갈려

순환경제, 산업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순환경제 이니셔티브’ 발족…국제협약 이행 나서

그린비즈, 스타트업

부채만 8.2조원…유럽 최대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 끝내 파산보호 신청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