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일. 이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올해 국토에서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생태자원을 소비했습니다. 4월 2일이 지난 시점부터 한국은 인도네시아, 남수단, 자메이카 등 다른 나라의 생태자원과 미래세대를 위한 비축분을 빌리는 것인데요.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우리나라. 국토 내 생태자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국내 산업 구조는 석유화학·철강·시멘트 등 탄소집약적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세계 10위권 이내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인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생태자원과 미래세대를 위한 지구의 비축분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
지구 생태자원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현재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만약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한다면, 지구란 행성이 4개는 더 필요합니다.
4월 2일 이후 미래세대 자원을 끌어다 쓰는 중 🏞️
물, 공기, 토양 등 생태자원에 대한 인류의 수요가 지구의 생산 및 정화 능력을 초과하는 시점을 일컬어 오버슈트데이(Overshoot Day)라 부릅니다. 우리말로는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로 부르는데요.
생태용량은 말 그대로 해당연도에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뜻합니다. 국가별로 국토의 생태용량 측정을 통해 오버슈트데이가 제각기 설정됩니다. 쉽게 말하면 오버슈트데이는 지구의 건강검진 결과로 이해하면 되는데요.
1970년 최초로 생태용량 측정이 이뤄진 후 매년 그 날짜가 앞당겨져 왔습니다. 지구의 오버슈트데이 이후부터 우리는 미래세대가 쓸 생태자원을 끌어쓰고 있는 것.
국가별 살펴보는 2022년 오버슈트데이 🌏
2022년 오버슈트데이가 가장 빠른 국가는 중동에 있는 카타르입니다. 산유국인 카타르의 올해 오버슈트데이는 2월 10일인데요. 이어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중 하나인 유럽의 룩셈부르크가 2월 14일, 남태평양의 쿡제도가 3월 11일이었습니다. 2020년 기준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다배출국가인 미국과 11위인 캐나다가 3월 13일인데요. 카타르와 함께 대표적인 산유국인 쿠웨이트의 오버슈트데이는 3월 15일, 호주의 경우 3월 23일이었습니다.
오버슈트데이가 1분기에 몰린 나라들은 인류 평균보다 자원을 많이 소비하고 낭비하는 나라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카타르의 경우 과거 자국민에게 자동차 휘발유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여러 보조금 정책을 시행해 세계적인 비난을 받은 바 있죠.
2분기에 오버슈트데이가 있는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4월 2일로 가장 빠른데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4월 19일, 이웃나라 일본이 5월 6일 순입니다. 세계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은 6월 2일인데요. 이외에도 독일, 이스라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선진국 상당수가 2분기에 오버슈트데이를 맞이합니다.
3분기에 오버슈트데이가 있는 국가 중에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유한 브라질이 있습니다. 브라질의 오버슈트데이는 8월 12일인데요. 우크라이나의 경우 8월 27일, 태국은 9월 3일, 베트남은 9월 12일입니다.
4분기의 경우 대개 적도 근방에 있는 국가들로 구성돼 있는데요. 남미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말리와 남수단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
전쟁으로 오버슈트데이가 앞당겨질까? 🤔
매년 조사를 진행할수록 지구의 오버슈트데이는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1970년 첫 조사 당시 오버슈트데이는 12월 30일이었는데요. 10년 후인 1980년에는 11월 4일로 약 두 달 앞당겨졌고, 2000년에는 9월 22일, 2019년에는 7월 26일로 급격히 앞당겨졌죠.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2020년 오버슈트데이는 8월 22일로 후퇴했는데요. 지난해 다시 7월 29일로 원상 복귀됐죠.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2020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세계 화석연료 생산·공급·소비 모두 감소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5.8% 감소했는데요.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연간 감소율로 유럽연합(EU)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었죠.
그렇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구의 오버슈트데이가 더 앞당겨질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러시아(4월 19일), 우크라이나(8월 27일)는 전쟁행위로 인한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이외에도 숲·농경지 등 생태자원 고갈이 현실로 나타났는데요.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오버슈트데이가 최대 한 달 이상 앞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대표적인 천연가스 및 곡물 수출 국가인데요. 대러 제재로 인한 천연가스 부족을 대체하기 위해 주요 산유국의 시추 증가, 미국 및 캐나다의 셰일가스 개발, 채굴 등으로 인한 생태자원 고갈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경우 부족한 식량을 충족하기 위해 국립공원 같은 보존지역을 농경지로 전환하는 방향도 논의 중인데요. 이럴경우 생태자원 고갈이 더 촉발될 우려가 있습니다. 좀 더 정리해서 말한다면.
- 온실가스 직접배출 증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역의 석유저장고 등 사회기반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로 인한 화재 및 석유 유출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와 유해가스가 대기 중으로 배출됐는데요. 여기에 전투기, 탱크, 함대, 미사일 등 군용 무기 운용으로 인한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도 예상됩니다. 또한, 대표적인 탄소저장고인 산림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산불이 발생했는데요. 산불로 인해 땅 속에 저장된 탄소가 공기 중으로 대량 배출된 상황.
- 보존구역 경작지 전환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곡물 수출이 어려워져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촉발됐습니다. 이로 인해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촉발됐는데요. EU 등 일부 국가에서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휴경지나 보존구역을 농경지로 전환하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실제로 해당 구역이 농경지로 전환될 경우 더 많은 생태자원이 고갈되는 것.
- 자원채굴 가속화 ⛏️: EU는 러시아가 공급하는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대러 제재로 인해 EU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에너지난이 촉발된 상황. 이에 노르웨이 등 산유국은 화석연료 채굴 탐사 및 개발에 나섰는데요. 이로 인해 보존 중이던 생태자원이 급감되고 있는 것.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는 지구 전체에 퍼져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물론 지구 전체의 오버슈트데이가 앞당겨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더불어 이번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식량위기와 에너지 부족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닥쳐올 미래의 모습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최근 승인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3실무그룹 보고서에 기술한 것처럼, 2100년 지구 평균 기온이 3.2 ℃ 상승시 기후변화로 인해 더 척박해진 기후와 천연자원, 화석연료 고갈 등으로 불가피하기에 더 늦게 전에 우리는 새로운 전환을 위해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