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속가능한 병의 미래, ‘종이’에서 찾다!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 문제로 떠오른 제로웨이스트 캠페인. 불필요한 포장재를 없애 쓰레기 배출을 제로(0)에 가깝도록 최소화하는 캠페인을 뜻하는데요.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줄이고자 다회용기 및 100% 재활용 가능한 유리병이 주로 사용되면서, 찬장을 가득 채운 유리병이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죠.

그러나 유리병에도 단점이 없진 않습니다. 우선 유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불가피한데요. 유리는 모래나 석영의 주성분인 이산화규소(실리카, SiO2)가 주원료입니다. 대개 고운 모래를 채굴해 원료를 수급하는데요. 모래 채굴 과정에서 해양과 강의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죠.

여기에 탄소 배출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래를 녹이려 1700°C 고온을 내기 위해 화석연료가 쓰이는데요. 또한, 유리병은 무겁고 잘 깨지기 때문에 운송 횟수가 늘고 완충 포장도 추가된단 사실! 즉, 탄소 배출량과 일회용 포장재 사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단 것입니다.

물론 별도 화학 첨가제가 필요 없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단 이점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플라스틱처럼 가볍고 운송에 적합하면서도, 유리처럼 화학 첨가제 없이도 재활용이 쉬운 소재가 있다면 어떨까요?

 

▲ 2020년 코카콜라와 파보카와 협업해 내놓은 과일음료 ADEZ는 종이병에 담겨 출시됐다. ©PABOCO

플라스틱 악당에서 벗어나기 위한 코카콜라의 선택, 파보코! 🥤

지난 2020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코카콜라 연구소는 지속가능한 패키지의 일환으로 종이병 시제품을 공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코카콜라와 협력해 종이병을 개발한 곳이 바로 덴마크 스타트업 파보코(PABOCO)입니다.

파보코는 ‘종이 병 기업(The Paper Bottle Company)’의 줄임말로, 2019년 종이 포장재 개발업체와 병 제조업체가 합작 투자해 시작한 회사인데요. 바이오 소재를 기반으로 액체 제품에 적합한 지속가능한 병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죠.

코카콜라는 지난해 6월엔 파보코 종이병의 소비자 테스트를 마쳤는데요. 헝가리의 온라인 식료품 소매업체 키플리(Kifli)를 통해 자사의 과일음료 2,000병을 출시했습니다. 테스트 응답자의 거의 90%가 새로운 종이 포장에 긍정적이었고, 85%는 같은 제품을 기존 병과 종이병 중 선택할 경우 종이병을 선택하겠다고 답변했죠. 그럼에도 코카콜라는 이 종이병을 기존 포장재의 대체품이 아닌 과도기적 단계로 보고 있는데요. 아쉽게도 현재 개발된 1세대 파보코 병은 100% 종이병이 아닌, 플라스틱을 최대 65%까지 줄인 버전이기 때문입니다.

 

▲ 파보코의 다양한 프로토타입. 왼쪽부터 2013년 최초의 병, 재활용신문지로 만든 병, 14 바(Bar, 압력단위)를 견딜수 있는 압력 용기, 재활용 PET 코팅이 있는 1세대 병. ©PABOCO

1세대 파보코 병은 단단한 외피를 이루는 57%의 종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된 뚜껑과 내부의 얇은 막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얇은 막은 종이병이 액체 내용물을 견딜 수 있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100% 재활용 가능하고, 바이오 소재 기반의 페프(PEF)로 제작돼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했죠. 종이는 아예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반영한 삼림인증제도(FSC) 인증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파보코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바이오소재 기반이며, 기존 종이 재활용 시스템에 호환될 수 있는 100% 종이병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파보코는 차세대 시제품을 공개했는데요.

플라스틱을 사용한 기존 막은 바이오소재로 대체됐고, 기존 종이 재활용 시스템과 호환할 수 있는 단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죠. 현재 밀폐 실험 및 협력사 제품과의 품질실험이 남은 상황이며, 빠르면 2023년에 시장에 선보인다고 합니다.

 

▲ Frugalpac에서 생산한 프루걸 보틀 및 분리 배출 과정. ©Frugalpac 제공, 그리니엄 번역

유리병 대비 탄소발자국을 4분의 1로 줄인 프루걸팩! 🍷

종이는 순환성이 뛰어난 자원이지만 물에 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파보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파보코와 달리, 디자인을 통해 종이의 순환성과 플라스틱의 편의성을 결합하면서 탄소 배출량은 줄인 종이병을 개발한 곳이 있습니다. 영국 서퍽주 입스위치에 위치한 지속가능한 포장재 개발 기업 프루걸팩(Frugalpac).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용화된 종이병 프루걸 보틀(Frugal bottle)을 생산한 곳인데요.

프루걸 보틀은 94%의 재생 종이로 만든 병 외피와 식품 등급의 플라스틱 파우치(포장재)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종이와 플라스틱의 조합. 두유나 우유 등에 사용되는 기존의 종이팩과 같지 않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루걸 보틀은 기존 종이팩과 설계가 조금 다릅니다. 외부 포장재인 종이병과 파우치가 부착돼 있지 않아 쉽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빈 병을 손으로 누르고 종이와 파우치를 분리해 배출하면 끝인데요. 이를 통해 종이와 플라스틱은 각각 재활용할 수 있죠.

이러한 설계 덕에 프루걸 보틀은 ‘검소한 병’이란 이름대로 더 가벼운 무게와 낮은 탄소발자국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수치를 볼 때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회사 측은 2020년 세계 최대 시험·검사기관인 인터텍(Intertek)의 수명 주기 평가(Life Cycle Analysis)를 의뢰했습니다.

 

©그리니엄

인터텍은 광물 추출부터 제조·운송·유통·충전·재활용·소각을 포함해 병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전부 검토했습니다. 프루걸 보틀과 함께 수입산 유리병, 영국산 경량 유리병, 100%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 등 총 4가지 병을 비교 검토했는데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프루걸 보틀의 탄소발자국은 91.9g으로, 수입산 유리병과 영국산 병에 비해 각각 84%와 34% 낮았습니다. 또한 100% 재활용 플라스틱병과 비교하면 탄소발자국은 4분의 1수준이었죠.

뿐만 아니라, 물 발자국*은 유리병의 최대 4분의 1 수준이며, 무게도 평균 83g에 불과해 운송 과정에서의 비용과 환경 영향을 모두 줄일 수 있었죠.

  • 물 발자국 : 상품을 생산, 사용, 폐기하는 전 과정에 사용되는 물의 소비량.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를 위한 지표로 사용된다.

 

+ 플라스틱 사용한 ‘종이병’, 그린워싱 걱정된다면? 🤔
‘종이병’이라고 하지만 플라스틱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프루걸팩에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프루걸팩은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파우치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더 지속가능한 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파우치가 재활용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유리병에 비하면 탄소발자국이 6배가 낮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린워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나서 설명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왼쪽부터 각각 P&G와 로레알에서 협업해 제작하고 있는 파보코의 종이병 및 조니워커에서 출시한 종이병 위스키. ©PABOCO, Johnnie walker

오늘 소개해드린 파보코와 프루걸팩 모두 업계에서 호응을 받으며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파보코는 보드카로 유명한 앱솔루트와 다국적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갬블(P&G) 등 여러 기업과 협업을 발표하고 있는데요. 프루걸팩 또한 2020년 와인 양조장들과 협업을 시작해 이탈리아,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죠.

이외에도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도 종이병 제품을 출시하고, 지난 2월에는 컴퓨터 제조사 휴렛패커드(HP)가 종이병 특허 기술을 가진 영국 기업을 인수하는 등 여러 기업이 종이병 포장재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문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지금. 지속가능한 패키지 분야에서 종이병은 앞으로도 관심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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