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각)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가 열렸습니다. 유엔환경총회는 유엔 회원국 전체가 참여해 주요 환경 현안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인데요. 이번 총회에서는 175개국이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을 체결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돼 주목받았습니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에 주목하는 이유. 온실가스 배출원이자 플라스틱의 주재료인 화석연료를 채굴하고 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 주기에서 막대한 환경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인데요. 플라스틱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하루아침에 모든 플라스틱을 없애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이에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순환성을 높인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있다는데요. 오늘 그리니엄에서는 메탄으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망고매테리얼스(Mango Materials)를 소개합니다.
여성 과학자,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뭉치다! 👩🔬
망고매테리얼스는 세 명의 여성 과학자, 몰리 모스와 앨리슨 피에자, 앤 샤우어 기메네즈가 공동으로 세운 스타트업입니다. 이들 모두 토목 및 환경 공학을 전공했단 공통점이 있는데요. 몰리 모스는 건설업의 목재 대체품을 연구하면서 바이오플라스틱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 스탠퍼드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메탄을 먹는 미생물을 연구하던 앨리슨 피에자와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에 메탄 관련 콘퍼런스에서 우연히 만난 앤 샤우어 기메네즈가 합류하면서 망고매테리얼스가 설립됐습니다.
설립자들의 연구 분야에서 보이듯이, 망고매테리얼스는 메탄으로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드는 스타트업인데요. 어떻게 기체인 메탄으로 고체인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는데요.
우선 분자식을 살펴봅시다. 메탄의 분자식은 CH₄로, 탄소 하나에 수소 4개가 결합한 화합물입니다. 대표적인 플라스틱인 PE([C2H4]n)와 PP([C3H6]n)와 비교하면 분자의 개수가 다를 뿐, 메탄과 플라스틱 모두 탄소와 수소 분자로 구성돼있죠. 메탄에 열이나 압력, 촉매를 가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 분자 결합을 바꿔 플라스틱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려면 매개가 필요한지를 찾아야 할 텐데요. 여기서 피에자 박사의 연구가 빛을 발합니다. 바로 메탄을 먹는 미생물인 메탄영양세균(Methanotrophs, 이하 메탄산화균)인데요. 이 미생물은 메탄 속 탄소를 먹고, 남은 탄소를 체내에 저장하는데요. 이때 저장된 탄소가 바로 고분자 물질인 P3HB의 형태란 것! 회사 측은 이 고분자 물질을 수거해 플라스틱의 원료로 쓸 수 있는 펠릿, YOPP+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 이름이 왜 ‘망고매테리얼스’냐면! 🥭
망고매테리얼스의 기술을 이해하고 나면, 더더욱 회사명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 같습니다. 회사 측도 이를 인식한 듯 ‘자주 묻는 질문’에도 사명에 대한 답변이 나와 있죠. 이에 따르면 설립자가 환경을 사랑하는 만큼 망고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조금 허탈한 답변이 적혀 있는데요. 어려운 과학 및 기술 용어의 거리감을 극복하고, 좀 더 친근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지 짐작해봅니다.
온실가스를 줄일 뿐만 아니라 순환성도 잡았다! ♻️
특히, YOPP+는 기후테크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기후테크란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뜻하는데요. YOPP+는 메탄산화균을 통해 온실가스인 메탄을 고체 형태인 플라스틱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기후테크로 분류될 수 있죠.
사실 메탄은 지구온난화지수(GWP) 기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1배나 높은데요. 메탄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를 차지하는 기체란 점에서 YOPP+가 상용화될 경우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결국 또 다른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들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도, 폐기 과정에서 분해되지 않는다면 반쪽자리 해결책에 그칠 수 있죠.
다행히도 망고매테리얼스의 YOPP+는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메탄산화세균이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은 생분해성일뿐더러, 퇴비화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박테리아 등 미생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폴리에스터를 PHA라고 부르는데요.
YOPP+는 병뚜껑이나 필름 포장재처럼 재활용하기 어려워 매립되거나 해양으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대체하기에 적합합니다. 미생물이 완전히 분해하도록 설계된 덕에 자연 속에서 탄소 순환이 가능한데요. 또한, YOPP+를 섬유로 압출해 옷이나 신발 등으로 만들 수 있고, 용기도 만들 수 있죠.
앤 샤우어 기메네즈 망고매테리얼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YOPP+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섬유는 4.5미터 깊이의 샌프란시스코만과 비슷한 환경에서 6주 안에 생분해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현재 망고매테리얼스는 샌프란시스코의 폐수처리공장과 협력해 메탄 가스를 얻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매립지, 농장 분뇨시설 등에서 나온 메탄을 수거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YOPP+의 순환성은 생분해 과정에서 배출된 메탄을 다시 원료로 활용할 때 완성된단 사실! YOPP+로 만든 제품이 생분해될 때 메탄을 배출하고, 그 메탄으로 다시 YOPP+를 만들면 진정한 의미의 클로즈드 루프(Closed-loop)가 실현되기 때문이죠.
YOPP+에 담긴 야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
사실 망고매테리얼스의 야망은 제품 이름에도 반영돼있습니다. YOPP+는 ‘You Oust Polluting Plastics’의 약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당신은 플라스틱 오염을 쫓아냅니다’란 뜻입니다. 망고매테리얼스는 YOPP+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면서 “소비자가 지갑으로 지구에 투표할 수 있는 미래 세상을 본다”고 설명했는데요.
현재 망고매테리얼스는 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상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망고매테리얼스는 올해 초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브라질 화장품 기업 나투라(Natura)와 파트너십을 맺었단 소식을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나투라의 브라질 상파울루 매장에서 YOPP+ 소재로 만든 비누 받침대를 한 달 한정으로 판매했단 내용을 전하며, 이는 상업화를 위한 노력 중 ‘빙산의 일각’이라 이야기했죠. 2020년 12월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던 터라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망고매테리얼스뿐만 아니라, 해외와 국내 곳곳에서도 생분해 바이오플라스틱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한 신소재는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더욱 많은 기술이 개발돼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소재를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