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계 메탄배출량 감축, 산림 보호 조약 등 여러 값진 성과가 나왔습니다. COP26 폐막 후 각국은 앞다퉈 조약 이행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럽연합(EU)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지난 11월 17일(이하 현지시각), EU 집행위원회는 27개 EU 회원국이 농산물을 수입할 때 삼림을 파괴한 곳에서 생산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임을 밝혔습니다.
일명 ‘삼림벌채금지법(EUDR)’으로 불립니다.
해당 법안에는 콩, 소고기, 코코아, 커피, 팜유 등 농축산물을 포함해 나무로 만든 가구도 포함됐습니다. 법안 공개 직후 환경단체들은 ‘숲 보호의 전환점’이라며 환영했으나, 경제계와 주요국에선 조급한 결정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습니다.
EU는 왜 삼림파괴 금지 법안을 추진 중인가? 🌲
EU 집행위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해당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첫 번째는 유럽 시민들의 ‘요구’ 때문인데요.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은 “전 세계적인 삼림벌채에 대한 유럽의 기여도를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한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며 법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EU 집행위는 2020년 ‘공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습니다. 삼림벌채와 산림 황폐화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에 회원국 내 120여만명의 시민의 지지를 얻었죠.
두 번째 이유는 EU의 국제무역으로 전 세계 열대우림의 16%가 파괴됐단 사실 때문입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 EU은 중국(24%) 다음으로 세계 열대우림 파괴에 기여했습니다.
가축을 키우는 목축지, 팜유나 커피 농장 등 경작지 확장 과정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당시 WWF는 최소한 공급망과 소재지 파악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삼림파괴를 유발한 제품이 EU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EU 집행위는 새로운 법안을 추진 중인 상황인 것인데요. 새로운 법안에 의하면, 전 세계 기업들은 EU 시장에 상품을 내놓기 전에 생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합니다. 또 해당 제품이 2020년 12월 31일 이후 삼림벌채 지역과 관계없단 것을 증명해야 하죠.
가령 젖소에게 줄 먹이로 콩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콩이 재배된 농장의 위성항법장치(GPS) 좌표를 제출해야 합니다. 또 위성 사진으로 해당 농장이 삼림벌채 지역에 있지 않단 것을 확인하는 과정도 거쳐야 하죠. 각 기업이 제공한 정보는 EU가 수집해 관리할 계획입니다.
혹여 삼림벌채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제재가 부과될 수 있죠. 수출국들의 삼림벌채 기여도에 따라 지위도 분류될 예정입니다. 분류는 크게 고위험, 표준, 낮음 등으로 분류되는데요. 낮음으로 분류된 국가에서 나오는 제품에 대해서는 실사관리가 간소화되고, 고위험으로 분류된 국가에선 정밀조사 등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개발도상국의 생산 과정 변화를 위해 법안 통과 후 2~3년간 각종 지원이 이뤄질 계획이죠.
새로운 법안은 EU 내 27개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오는 2023년부터 발효되는데요. 대기업은 12개월, 중소기업은 24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질 계획입니다. EU 역외국 기업의 경우 EU 시장 내 역내 매출액 기준에 따라 해당 법률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죠.
근데 이 법안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
EU는 지속가능성을 기업 생산활동에 투영하기 위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기업이 공급망에 연결된 납품·협력 업체의 인권과 환경에 대한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문제 발견시 이를 즉시 시정하고 해당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죠. 이른바 ‘기업 지배구조 및 공급망 실사에 관한 법률안(Sustainable Corporate Governance)’인데요. 국내에선 EU ESG 법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EU 집행위와 EU 의회 모두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만큼 해당 법안 빠른 속도로 추진 중인 상황인데요. 이번 삼림파괴 관련 법안도 EU ESG 법안의 연장선으로 평가받는 상황입니다.
즉, 삼림 훼손 방지 공급망 실사 의무를 EU 내 모든 기업에게 부여하는 것. 다만, 이를 놓고 유럽경제단체와 산업계에서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는데요. 다른 주요국들도 해당 법안이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죠.
특히, 브라질 정부는 EU의 삼림 벌채 관련 제품 수입 금지가 신보호무역주의라며 강하게 반발한 상황입니다. 카를루사 프란사 브라질 외교부 장관은 “보호주의의 한 형태로 환경을 이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는 소비자에게 좋지 않고 국제 무역에도 부정적인 전례를 남길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만약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브라질이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8월 유럽 8개국은 브라질 정부에 서한을 보내 아마존 열대우림 등 삼림파괴가 계속되면 브라질산 제품 구매를 어렵게 할 것이라 경고했는데요. 이 문제를 둘러싼 브라질과 EU 간의 논쟁은 EU-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걸림돌이 되는 상황입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주요 팜유 생산국도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해당 법안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데요. 각종 무역에서 환경 부문의 벽이 높아진 만큼, EU 시장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등 국내 여러 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생산을 위해 농장을 운영 중인데요. 이들 모두 경우에 따라선 삼림파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 정보를 EU 측에 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각 나라들간의 공급망이 어느때보다 연결돼 있는 만큼, 우리 기업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죠.
삼림벌채와 산림 황폐화 모두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20년 사이 EU보다 큰 면적인 4억 2,000만ha(헥타르)가 삼림 벌채로 소실됐다고 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2007~2016년)의 23%가 농업·임업·기타 토지 이용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는데요. 이중 11%는 임업 및 기타 토지 이용 등 삼림벌채로 야기된만큼, 이를 막기 위한 해결책이 절실한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EU가 추진 중인 삼림 보호를 위한 공급망 실사 의무.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인 만큼 더 강력한 내용이 담길 수도 혹은 다소 규제가 낮아질 가능성도 열려 있는데요. 이 법안이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계속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