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게임을 정말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게임 방송을 즐겨보곤 하는데요. 얼마 전 인상 깊게 본 게임 방송이 있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영상 제목은 “이젠 배까지 청소하는 스트리머”입니다. 청소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보면 깨끗해지는 집을 보면서 쾌감이 느껴지잖아요? 저도 그런 쾌감을 기대하고 영상을 재생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번뜩하고 지나갔죠. “이거, 순환경제를 다룬 게임이네!”
해당 게임은 해변에 널린 폐선박을 해체해서 자원을 판매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쉽 그레이브야드 시뮬레이터(Ship Graveyard Simulator)’ 입니다. 게임은 12km나 되는 긴 해안가에 버려진 폐선박들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는 망치, 톱, 용접기 등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서 폐선박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잔해를 해체하면 녹슨 강철, 주철, 나무 팔레트, 구리 등 자원으로 분해되고 이 자원을 팔면 스킬 포인트와 돈을 얻을 수 있죠.
게임 속 가장 인상 깊은 시스템은 재료를 조합해 합금을 제조하는 용광로 시스템이었는데요. 아직은 데모 버전이나 이후에는 자원을 분해·판매하는 일차원적인 재순환을 넘어 폐선박을 분해한 재료로 다시 배를 만드는 건조까지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됐습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청소하는 게임이나 조금 특이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보였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원재순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게임들에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대중성과 게임성,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잡으려고 노력한 게임 3가지를 정리해봤습니다.
1️⃣ 심즈4 ‘에코 라이프’ 확장팩
심즈는 2000년에 처음으로 발매된, 역사가 깊은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사람의 인생을 시뮬레이션한다”는 기획 의도답게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가상의 인간인 ‘심’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유도와 확장성답게 심즈 시리즈는 다양한 확장팩으로도 유명한데요. 작년 6월에는 친환경을 주제로 한 확장팩 ‘에코라이프’가 발매됐습니다.
이 확장팩에서 플레이어는 항구도시 ‘에버그린 하버’에서 자신의 행동이 도시를 바꿔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풍력 터빈이나 태양광 패널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쓸모없는 재료를 분해해 재활용할 수도 있죠. 게임 속에는 리사이클러와 금형기란 아이템이 있는데요. 리사이클러로 물건을 분해하고 금형기를 통해 재생산하는 방식입니다. 개별 심들의 지속가능한 삶은 도시의 변화로도 이어지는데요. 심들이 어떤 생활방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대기오염이나 오로라 등 시각적 지표로도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반’환경적인 도시를 만들 자유도 있습니다. 심즈4 에코 라이프의 간담회에서 개발자 조지 피귤라가 말한 “언제나 선택은 유저의 몫”이라고 했죠. 선택에 따라 바뀌는 심즈의 세상, 우리 지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2️⃣ 문명6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
심즈가 개인과 도시 차원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문명’의 선택을 요구하는 게임도 있습니다. “문명하셨습니다”로 유명한 게임, 문명6의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입니다. 2019년 2월 출시된 확장팩의 테마는 자연과 기후인데요. 화산 폭발, 토네이도, 허리케인, 홍수와 가뭄 등이 구현됐죠.
플레이어 문명은 발전할수록 늘어나는 탄소 배출량으로 인해 더 극단적인 자연재해를 마주하는데요. 플레이어가 산업발전을 지속해 탄소 배출이 늘어나면 해안 도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물속에 잠기고 말죠. 즉, 플레이어는 문명을 발전시키며 선택한 행동의 대가를 기후변화로 마주하는 것.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데요. 기술이 발전하면 지열, 풍력, 태양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거나 탄소 포집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플레이어 문명의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면 소용이 없지 않냐고요? 해당 확장팩에는 외교 협상도 들어가 있는데요. 여러 문명 간의 국제적 조약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늘리지 않겠다고 합의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같은 질문에 에드 비치(Ed Beach) 수석 디자이너는 “유저들이 해안에 있는 적 문명을 공략하기 위해 해수면 상승을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죠. 승리하기 위한 전략 게임에선 당연할지 모르지만, 인류 문명이 게임이 아니란 사실이 참 다행입니다.
3️⃣ 포켓몬고
2017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포켓몬고’란 게임을 기억하시나요? 많은 사람에게 걷기 운동을 시켰던 유익한 게임이었죠. 2019년 포켓몬고 제작사 나이언틱은 게임의 특징을 살리면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는데요. 그해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열린 행사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시민단체(NGO)와 협력해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여기에 참여하는 플레이어 수가 일정 수 이상을 달성할 때마다 보상으로 게임 내 스폰율 향상, 신규 몬스터 출시 등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반향은 엄청났는데요. 제작사는 6개 대륙 41개국에서 300개 이상의 플레이어 이벤트가 개최됐고, 1만 7,000명의 플레이어가 4만 1,000시간 동안 자원해 145톤의 쓰레기를 수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나이언틴이 주최한 지구의 날 행사는 두 번째였는데요. 처음 열린 이벤트에서는 19개국에서 4,200명의 참가자가 6,500kg의 쓰레기를 수거했다고 합니다.
다만, 지난해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취소됐는데요. 올해는 동네 쓰레기 수거, 식물 심기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동을 한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지속가능성 위크’ 이벤트를 진행했단 소식!
지속가능한 게임의 미래, 청소년이 만든다? 🕹️
게임 속 지속가능성을 찾던 중 흥미로운 사례도 발견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게임을 만들었는데 피드백을 주세요(I made a game about climate change, please send feedback)” 라는 게시글이었는데요. 게임의 이름은 ‘기후변화’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를 사용해 제작된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의 배경은 미국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모티브로 한 온대 우림 지역인데요. 플레이어는 게임을 탐험하면서 배지를 찾을 수 있고, 배지는 기후변화 현상과 관련돼 있습니다.
제작자는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산불 뉴스를 보고 나서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제작 계기를 밝혔는데요. 10대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지만 우리는 변화를 만들기엔 너무 어리지도, 늦지도 않았다며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이 게임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코딩을 배우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이면서 기후변화로 달라질 미래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어떤 ‘지속가능한 게임’을 만들어나갈지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우리는 참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합니다. 산업을 바꿔야 하고, 에너지를 바꿔야 하고, 내 일상의 루틴을 바꿔야 하죠. 저는 다양한 게임들을 찾아보면서 톰 소여 효과가 떠올랐는데요. 톰 소여 효과란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서 비롯된 용어로, 일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할 때 동기부여는 물론 큰 성과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하기 싫은 페인트칠을 친구에게 재미있는 일로 속였는데 속아넘어간 벤은 즐겁게 페인트칠을 마치게 됐죠.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페인트칠(기후변화)’을 떠맡아 줄 벤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벤이 되보면 어떨까요? 다양한 게임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는 과정을 돕기 위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멀게만 느껴졌던 기후변화, 지속가능성을 게임 속에서 경험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