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50여년 만에 노벨상을 받은 첫 기후학자

지난 5일(현지시각)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 기후학연구소 소장,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중 슈쿠로 교수와 하셀만 연구원은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무려 50년 만에 인정받았습니다.

 

슈쿠로와 하셀만 소장은 어떤 사람들인가? 👨‍🔬

올해로 만 90세의 고령인 마나베 슈쿠로 교수는 1960년대부터 지구과학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1967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 증가와 지구 표면 온도 상승 간 모델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는데요. 당시 슈쿠로 교수는 인공위성 같은 관측기기가 없던 시절, 대기의 물리적인 특성을 이론적으로 분석해 3차원의 지구 기후 시스템 모델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죠. 이를 토대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 증가가 지구 표면 온도를 어떻게 높이는지 예측했다고 하는데요.

 

© 슈쿠로 교수는 1960년대 대기 중 CO2 농도 증가가 지구 표면 온도 상승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규명했다_스웨덴 왕립과학원

슈쿠로 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지구물리학 유체역학연구소에서 기후 시스템의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 수치 모델을 1세대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고 계산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접합 대기 대순환 모델(Coupled General Circulation models)’이라고 불리는 모델은 처음으로 대기 중 CO2 농도가 두 배 증가하면 지구 온도가 2~4℃ 상승하고, 육지와 극지방에서의 온난화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죠.

이로부터 약 10여년이 흐른 뒤, 하셀만 소장은 ‘확률적 기후 모델(Stochastic Climate models)’이란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는 슈쿠로 교수의 이론을 활용해 기후를 물리적으로 모델링하고,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기후를 정량화해 지구온난화를 예측했죠.

이 모델은 일시적 날씨 변동이 지속적으로 축적될 경우 기후 시스템에 변동이 발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 기본 개념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후 변동의 95%를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이후 1993년 발표한 논문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패턴으로 찾아내는 ‘지문(Fingerprint)’ 방법을 제안했는데요. 이는 온실가스와 에어로졸 같은 인위적 변화와 화산폭발과 태양활동 같은 자연적 변화들이 각각 특징적인 기후변화를 일으키며 패턴을 남기는데, 이 요인별 지문 패턴이 실제 관측에 존재하는지를 통계적 검정으로 확인하는 기법입니다.

이 방법론의 개발 덕에 실제 관측과 기후모델의 모의 결과의 비교가 가능해졌는데요. 무엇보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에어로졸 등이 기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하죠. 또한, 하셀만 소장은 슈쿠로 교수가 놓친 해양의 온실효과까지 계산해 지구온난화 예측을 더 정확히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해양의 CO2 흡수 영향까지 기후 모델에 계산해 넣었는데요. 이에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는 하셀만 소장의 업적이 없었다면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없었을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 이 두 인물은 IPCC 보고서 제작에도 참여했단 사실 🇺🇳
슈쿠로 교수와 하셀만 소장은 기후변화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슈쿠로 교수는 1990년 바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1차 보고서와 2001년 3차 보고서 제작에 참여했다고. 하셀만 소장은 1995년 2차 보고서까지 포함해, 총 3차례 보고서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좌)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우)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기후학연구소 소장_스웨덴 왕립과학원

이 둘이 무려 50년 만에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

슈쿠로 교수와 하셀만 소장 모두 지구온난화란 개념이 없던 1960~70년대에 기후 모델을 개발하고, 인간의 활동이 지구 온도 상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왜 노벨위원회는 50년이나 흐른 시점에서 수상을 결정한 걸까요?

노벨위원회는 슈쿠로 교수와 하셀만 소장이 “지구의 기후가 어떻게 바뀌고, 인류가 기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는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며, “지구 기후의 물리적 모델링과 변동성을 정량화하고, 지구온난화를 신뢰성 있게 예측했다”고 수상 선정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구체적으로 노벨위는 “슈쿠로는 1960년대 지구 기후의 물리적 모델 개발을 이끌었고 지구복사 균형(radiation balance)과 기단(air mass)의 수직 이동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며 “그의 연구는 현재의 기후 모델 개발을 위한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죠.

또한, 노벨위는 “하셀만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활동이 기후에 새기는(imprint) 특정한 신호와 지문(fingerprint)을 식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이 방법들은 대기 중의 온도 상승이 인간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기인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돼 왔다”며 하셀만 소장의 공로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노벨 물리학·화학·경제학상을 선출하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고란 한손 사무총장은 이번 수상이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말하고 있는 기후 모델은 물리 이론과 고체 물리학에 확고히 기반을 두고 있다”며 “지구온난화는 단단히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 이것이 메시지다”라고 전했습니다.

 

기후 문제에 주목한 노벨상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5일, 슈쿠로 교수와 하셀만 소장은 각각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소감을 밝혔는데요. 슈쿠로 교수는 미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기후변화 연구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내 연구의 원동력은 모두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연구를 진심으로 그냥 즐겼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그는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하셀만 소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기 전에 깨닫기를 희망한다”며 “우리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얘기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와 같이 수십년에 걸친 문제에는 장기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적응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발표 현장_스웨덴 왕립과학원 제공

노벨상은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최에 앞서 수여된다고 하는데요. 올해 노벨상이 지니는 의미는 여러모로 값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노벨물리학상 최초로 지구과학 분야, 그중에서도 기상학 수상자가 배출된 점이 특별한데요. 대기권 오존의 생성 원인과 분해를 밝힌 독일 파울 크루첸 박사가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노벨상이 시작된 이래로 지질학, 기상학, 해양학 등 지구과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배출된 적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이번 수상 결정에 과학계에서는 노벨위원회가 그만큼 기후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해법을 찾는 연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 분석했는데요. 노벨물리학상 발표 이튿날 발표된 노벨화학상도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는 방식으로 분자를 만든 과학자들이 수상하게 돼, 노벨위원회가 어느 때보다 환경에 관심이 많단 것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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