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재 폐기물 제로(0)를 목표로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제공한 네덜란드 기업 피터포트(Pieter Pot).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피터포트는 이를 재사용 용기에 담아 배달했습니다. 2019년 설립 이후 약 5만 명 이상이 피터포트 서비스를 이용했고, 400만여개 이상의 포장재 폐기물을 절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피터포트가 재정난으로 인해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피터포트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주리 쇠마커는 본인의 링크드인 게시물을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또 책임을 지고 피터포트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쇠마커 전 CEO는 네덜란드 식료품 기업 델리케이트센파브리크(Delicatessenfabriek)에 피터포트를 매각했단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 기업은 피터포트의 재사용 용기 세척 및 관리를 담당한 곳이었습니다.

쇠마커 전 CEO는 매각 이유에 대해 “피터포트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익성을 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며 “누군가에게 (피터포트의) 지휘봉을 넘겨줘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 피터포트 공동설립자인 주리 쇠마커는 지난 16일현지시각 본인의 링크드인에 회사가 매각됐단 사실을 공개했다 공동설립자인 마틴 비몰트는 이미 회사를 떠났고 쇠마커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Jouri Scjoemaker 링크드인 캡처

피터포트 “운영비↑·인플레이션으로 고객 수↓…수익 급감” 📉

네덜란드와 벨기에 일부 지역에서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제공한 피터포트. 리필과 재사용을 통한 포장재 폐기물 ‘저감’이 가능하단 이점 덕에 창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기에 제품군이 다양하단 것도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로 인해 피터포트는 고객 수요에 비해 인력이나 제품이 빠르게 충원되지 못해 신규 구독자를 위한 대기 명단을 운영했습니다. 한때 대기 명단에 오른 고객 수만 3만여명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고객 수요 및 서비스 확장보다 수익이 충분하지 않았단 것. 피터포트는 대량 조달 방식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왔습니다. 허나,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공급망 대란으로 제품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또 유럽 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재사용 용기 세척·관리 등 운영비도 급증했습니다.

아울러 투자자들은 피터포트가 더 높은 수익성을 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피터포트는 최소 주문 금액을 35유로(약 4만 8,300원)에서 40유로(약 5만 5,200원)으로 높였으나 수익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쇠마커 전 CEO는 “수익을 낼 만큼 운영비를 낮출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피터포트 서비스를 찾는 신규 고객 수가 점차 줄었습니다. 피터포트의 비싼 구독료와 제품 가격은 신입 고객 유입을 막는 진입장벽이 됐습니다. 실제로 쇠마커 전 CEO는 지난해부터 대기 명단이 사라졌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 네덜란드 식료품 기업 델리케이트센파브리크가 피터포트를 인수했다 피터포트 서비스는 그대로 운영되며 회사 측은 아웃소싱외주업체 작업을 줄여 운영비를 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Pieter Pot

피터포트 인수 기업 “운영비 절감 위한 방안 모색 중…서비스 일단 유지” 🍞

신규 투자 유치마저 물거품이 되자 피터포트는 인력 감축까지 진행합니다. 지난해 12월 말, 피터포트는 직원 수십여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런데도 적자가 계속되자 피터포트는 결국 다른 기업에게 매각됐습니다.

회사를 인수한 델리케이트센파브리크는 일단 피터포트 서비스를 그대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델리케이트센파브리크 측은 “가장 큰 채권자와 합의에 이르렀고 일부와는 여전히 협상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재사용 용기 세척·관리 등 여러 공정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살펴보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사 측은 아웃소싱(외주업체) 작업을 줄임으로써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코에 설립된 제로그로서리 또한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기업은 2022년 3월 돌연 폐업했다 ©Zero Grocery

“불황 만난 구독서비스”…미국 제로그로서리 돌연 폐업, 그 이유는? 🤔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피터포트만의 일은 아닙니다. 피터포트와 마찬가지로 2019년에 설립돼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던 제로그로서리(Zero Grocery)는 지난해 3월말 폐업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로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해 1,200만 달러(약 155억원)를 투자받은지 한달여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이 스타트업은 재사용 용기에 시리얼·오트밀·밀가루 등을 재사용 용기에 담아 판매했습니다. 빈 용기는 다음 주문 시 배달부가 가져가 세척 및 소독해 다시 사용했습니다.

제로그로서리 설립자인 줄라이카 스트라스너는 폐업 결정에 대해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통해)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며 “그러나 만성적으로 자본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습니다.

스트라스너는 ‘지속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단 것을 알게 됐다고 미 일간지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SFC)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 지난해 3월 5일현지시각 제로그로서리는 인스타그램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서비스 종료 및 폐업 소식을 공지했다 ©Zero Grocery 인스타그램 캡처

제로그로서리의 폐업은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닐 포장이 없는 식료품을 2시간 이내에 배달한다는 사명 때문에 여러 기업이 제로그로서리와 협력했습니다.

허나, 제로그로서리는 협력사에게 폐업 소식을 따로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또 일부 음식점에는 미수금도 갚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터베이커리(Starter Bakery)’란 빵집을 운영 중인 브라이언 우드는 제로그로서리가 2만 5,000달러(약 3,240만원) 정도의 미수금을 갚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우드 사장은 제로그러서리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통해 폐업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해당 게시물에는 제로그로서리의 폐업 사실을 슬퍼하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 댓글을 읽은 우드 사장은 SFC와의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식품 대금이 지불되지 않았단 것을 안다면, (제로그로서리의) 고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트라스너는 제로그로서리의 미수금을 차례대로 처리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 더라운즈는 2023년 현재 미국 4개 도시에서 식료품 구독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지난해 10월 더라운즈는 4200만 달러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The Rounds

더라운즈 CEO “사업 확장 위해선 고객에게 지속가능성 각인시켜야 해” 🔔

물론 실패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스타트업 더라운즈(The Rounds)의 경우 지난해 10월 4,200만 달러(약 544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 기업 또한 식료품 구독서비스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미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더라운즈의 서비스는 지난해 워싱턴 D.C와 애틀랜타 그리고 마이애미까지 확장됐습니다. 현재 1만여명의 회원이 서비스를 구독 중입니다.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더라운즈의 서비스는 저렴하지 않습니다. 대신 편리하단 장점이 있습니다. 가령 더라운즈는 자체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이 언제 휴지를 다 쓸지 자동으로 예측합니다.

더라운즈 공동설립자이자 CEO인 알렉산더 토리는 순환형 식료품 구독서비스가 경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연간 수익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개별 배달 수준에서는 충분히 수익성을 갖췄다고 더라운즈는 주장합니다.

토리 CEO는 향후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고객에게 지속가능성이란 가치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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