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에 이어 새로운 ‘기후조깅’이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영국 종합예술대학인 센트럴세인트마틴스(CSM)의 한 대학원 졸업생이 도시를 달리면서 생물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운동화 밑창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CSM의 미래소재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디자이너 키키 그라마토풀로스가 졸업과제로 제출한 것. 해당 과제는 지난 6월 28일(현지시각) 전시로 공개됐습니다.

‘리와일드 더 런(Rewild the Run)’란 이름이 붙은 작품인데요. 직역하면 ‘달리기 재야생화’란 뜻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달리기 하면서 도시의 식물과 씨앗을 자연스럽게 널리 퍼뜨릴 수 있습니다. 조깅과 동시에 도시 내 생태계 복원에 일조할 수 있단 것이 핵심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운동화 밑창만으로 생물다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단 걸까요?

 

▲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도깨비 바늘 같은 식물 씨앗이 갈고리 구조로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운반되는 에피주코리 현상을 활용했다. ©Tom Mannon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살아있는 생물의 구조와 행동 등을 모방하는 ‘생체모방(Biomimetics)’ 디자인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에피주코리(Epizoochory)’ 현상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이는 도깨비 바늘이나 도꼬마리 같은 식물의 씨앗이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운반되는 것을 말합니다.

해당 씨앗은 갈고리 형태로 생긴 덕에 동물의 털에 달라붙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방식으로 번식합니다. 이 원리는 흔히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 디자인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이러한 도깨비 바늘의 원리를 역발상했습니다. 바로 신발에 갈고리를 달아 주변의 식물과 씨앗을 부착시켜 널리 퍼뜨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반영해 작은 갈고리가 촘촘하게 나 있는 신발 밑창을 디자인했습니다.

시연용 프로토타입(시제품)은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의 표준 운동화에 맞춰 디자인됐습니다. 나일론 플라스틱을 사용한 3D프린팅으로 제작됐는데요. 운동화 밑창에 붙이는 형태입니다.

 

▲ 운동화 바닥은 유럽 생태계의 핵심종인 유럽들소의 발굽을 모방해 디자인됐다. ©studio_kiks, 인스타그램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밑창의 바닥 디자인에도 생태모방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유럽 생태계 내 핵심종*인 유럽들소의 발굽 모양에서 따온 것.

그중에서도 유럽들소는 유럽의 삼림과 초원에서 작은 식물을 적절히 밟아 토양을 환기시키고 다른 동물들이 서식할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100여년전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유럽들소의 역할이 재조명돼 독일 등 유럽 내 주요국에서 복원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통해 이러한 핵심종의 복잡성을 모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탐구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두툼한 두께와 발굽 모양을 가진 디자인의 신발은 걸음마다 들소 발굽 발자국을 남깁니다.

*핵심종(keystone species): 생태계 전체 종의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종을 말합니다. 핵심종이 사라지면 생태계는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전시된 ‘리와일드 더 런’ 작품과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의 모습. ©studio_kiks, 인스타그램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앞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에서 해당 디자인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는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 도시의 야생과 우리의 관계, 또는 야생화의 부족을 조사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야생동물들이 도시를 점령했던 모습들이 신발 제작에 큰 영감을 줬다고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강조했습니다.

이에 패션과 스포츠를 통해 개인이 재야생화(Rewilding)에 참여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더 폭넓게 생각해보도록 장려하고 싶었단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특히 “신발은 (사람을) 환경과 연결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신발을 재설계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을 촉진하고 싶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 최근 유럽에서는 멸종 또는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을 복원해 자연이 스스로 생태계를 회복하게 하는 재야생화가 떠오르고 있다. ©Rewilding Europe, EBCC, Beaver Trust

그렇다면,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가 말한 재야생화란 무엇일까요?

재야생화란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생태복원의 한 방식입니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자연을 복원하는 대신,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개념이 깔려있습니다.

일례로 황폐화된 산림에 인공적으로 조림을 하는 대신 댐과 제방 등 인공구조물을 제거하고, 밀렵과 개발로 사라진 동물을 복원해 생태계가 스스로 자리잡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유럽들소, 비버 등 핵심종 복원도 대표적인 재야생화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개발로 자연 서식지가 사라진 도시 내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도시 재야생화(Urban Rewilding)’라고 합니다.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도시화로 단절된 식물의 확산 과정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고안하게 된 것인데요. 그는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재야생화를 대중화해 도시 거주자들이 지역 환경의 생태복원에 참여”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다양한 운동화나 신발에 부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가로 연구하고 있다. ©studio_kiks, 인스타그램

그라마토풀로스 디자이너는 아직 해당 디자인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최근 다양한 운동화나 신발에 부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가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영국 런던의 달리기 모임인 ‘런더보로우(Run the Boroughs)’와 함께 새로운 디자인들을 실험하고 있는데요. 그는 향후 3D프린팅이나 사출 가공을 통해 제품을 실제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생산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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