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인류 외에도 수많은 생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에 생태계를 대표해 ‘고래’를 헌법소원 청구인에 포함하기로 했다.”

지난 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을 밝히며 전한 말입니다.

민변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를 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부작위에 대해 오는 30일까지 소송대리인단을 꾸려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민변, 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헌법소원…“생태계 대표 청구인, 고래” 🐋

이번 헌법소원 청구 대리인단 단장을 맡은 민변 소속 김영희 변호사는 17일 그리니엄과의 통화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로 해양생태계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범위에서 질병 등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러한 피해를 우려해 생태계 대표로 고래를 청구인단에 포함시켰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위해 거쳐야 할 중요 관문을 모두 통과한 상태입니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각)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내용의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현재 오염수 방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승인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8월에라도 오염수를 방류하기 위한 조율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이를 두고 인접국인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태평양 도서국을 중심으로 수산물 안전성을 중심으로 우려가 나옵니다.

오염수 방류가 인간을 넘어 해양생태계에 어떤 피해를 입힐지 주목해야 한단 지적이 나오는 상황.

그런데 과연 ‘고래’가 소송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 뉴질랜드 북섬 황거누이강의 전경. ©Te Ara

‘동물’이 소송 주체로 인정되나? 각국서 ‘생태계’ 법적 권리 인정 활발! 🦜

국내에서도 줄곧 동물을 ‘법적 주체’로 내세워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나, 동물은 사건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요지로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기후위기 및 개발 등에 따른 환경파괴로부터 자연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생태계’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판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2개만 살펴본다면.

 

1️⃣ 뉴질랜드: ‘황거누이강’에 법적 권리 부여 🌊

뉴질랜드는 ‘강’에 인간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한 국가입니다.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테 아와 투푸아법(Te Awa Tupua Act)’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뉴질랜드 북섬 황거누이강(Whanganui River)에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긴 황거누이강(290㎞)은 북섬 중부를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갑니다.

▲ 지난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황거누이강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greenium

이 법은 황거누이강을 이른바 ‘생태법인(Eco Legal Person)’으로 인정합니다. 생태법인은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 운동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강·호수·산 등 생태계가 인간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법적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현재 뉴질랜드 마오리 원주민 1명과 정부 대표 1명이 대리인으로 임명돼 황거누이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강을 오염시키는 주체를 상대로 소송 등 권리 행사가 가능해진 것.

이러한 법이 통과되기까지 마오리족은 1870년대부터 150여년간 뉴질랜드 정부와 싸워왔습니다.

최소 600년 전부터 황거누이강 근처에 터를 잡고 살아온 마오리족이 강의 인식을 높이고 환경오염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고자 보존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마오리족을 대표한 당시 아드리안 루라헤 뉴질랜드 하원의원(현 하원의장)은 “황거누이강의 건강은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마오리족의 안전과 건강과도 직접적으로 귀결된다”며 “강 자체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 17개 도시 25명의 원고인단은 2018년 콜롬비아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아마존 환경보호를 골자로 한 기후소송을 제기했다. ©greenium

2️⃣ 콜롬비아: 아마존 인격체 인정…“미래세대 건강한 환경 향유 권리 보호” 🌲

2018년 콜롬비아에서도 아마존 열대우림을 인간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지니는 인격체로 인정했습니다.

그해 1월 7~26세로 구성된 원고인단이 아마존 환경보호를 골자로 콜롬비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원고인단은 “콜롬비아 정부가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는 데 실패했다”며 “건강한 환경, 물, 음식 등을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건강한 환경을 향유할 권리를 보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원고인단은 구체적으로 콜롬비아 정부 및 지자체에 ▲아마존 삼림벌채 저감을 위한 적극적 조치 ▲아마존 토지관리 계획 제고 ▲국립공원 예산 검토 등을 요구했습니다.

절차상의 이유로 소송을 기각한 하급심과 달리 콜롬비아 대법원은 같은해 4월 항소심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 건강, 존엄성 등 기본권은 환경과 생태계와도 실질적으로 연결된다”며 “콜롬비아 아마존의 자연 권리를 인정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생태계가 인격체로써 인정돼 환경파괴 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주어진 것. 이에 대법원은 콜롬비아 아마존이 보호·보존·복원될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며, 정부에 아마존 삼림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 2018년 콜롬비아 대법원은 자국 내 아마존 열대우림의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부에 삼림 보호를 위한 긴급 조치를 마련할 것을 명령했다. ©Mariusz Kluzniak, Flickr

헌법재판연구관 “자연 권리 인정,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 ⚖️

이밖에도 해외에서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의 법적 권리 주체를 인정한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의 김선희 책임연구관이 내놓은 ‘자연의 권리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6년 콜롬비아 아트라토강 ▲2018년 인도 갠지스강 및 야무나강 ▲2019년 방글라데시 투라그강 등의 법적 권리를 각국 법원이 인정한 바 있습니다.

2013년과 2014년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있었던 오랑우탄 ‘샌드라’와 침팬지 ‘세실리아’의 소송도 대표적입니다. 동물원에 갇혀 있던 이들 스스로를 풀어달라는 소송(인신보호영장청구)이 제기됐는데, 아르헨티나 법원은 이들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하고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김 연구관은 “자연의 권리는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라며 “자연의 권리를 헌법· 법률·조례 형식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법부 판례를 통해 자연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이른바 ‘도롱뇽 소송’으로 논란의 중심이 된 경남 양산시 천성산 구간에서 터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녹색연합

韓 대법원 “자연물은 사건 수행할 당사자 능력 없어”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을 권리 침해 당사자로 인정한 판례는 전무합니다.

2003년 경남 양산시 천성산 터널공사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천성산 사찰과 환경단체 등은 부산지법에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며 한국철도시설공단(현 국가철도공단)에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습니다.

이때 원고인단에 천성산의 동식물을 대표해 ‘도롱뇽’이 포함됐는데요. 덕분에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급심 재판부는 “소송 신청인 도롱뇽을 자연물(양서류)로서 재판을 청구할 법률적인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이후 2006년 진행된 항소심에서 대법원 역시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1·2심 판결과 동일하게 사업자(국가철도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밖에도 ▲2007년 충주환경운동연합 등이 폐갱도와 습지에 사는 ‘황금박쥐’ 등 동물 7종과 함께 충주시장을 상대로 낸 도로 공사 결정 처분 무효 행정소송 ▲2008년 어민들이 ‘검은머리물떼새’와 함게 군산 복합화력발전소 공사계획 인가 취소 요구 행정소송 ▲2018년 변호사단체 피앤알(PNR)이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지정해 설악산 오색케이블 추가 설치를 막으려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황금박쥐, 검은머리물떼새, 산양을 당사자로 한 소송 모두 “동물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근거로 하급심에서 기각됐습니다.

 

‘고래’ 청구인단 인정되나…“동물 주체성 인정하는 사회 흐름으로 변화 중” 🔍

그간 국내 법원은 동물 등을 권리 침해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 등이 동물에 대해 주체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당사자로 한 소송이 심리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나, 동물의 당사자 적격성을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김 변호사는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법원의 판례는 항상 ‘진보’와 연결돼 있다”며 “과거에는 동물의 권리 침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권 차원에서 생태계도 권리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김 변호사에 따르면 7월 17일 기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헌법소원에는 3,000여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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