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산업계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방지를 위해 입법 추진했던 ‘그린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국내에서는 ‘친환경 표시지침’으로 불립니다.

해당 지침은 EU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2019년 마련한 유럽 그린딜의 실행계획 중 하나로 제안됐습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친환경 주장을 검증함으로써 제품의 친환경성을 높이기 위해서인데요. 이를 통해 순환적이고 기후중립적인 경제로의 전환으로의 가속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지침은 2022년 2월 초안이 공개된 이후 논의가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EU 집행위가 새로운 초안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이전 초안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친환경 주장을 검증하는 방법론인 ‘제품환경발자국(PEF·Product Environmental Footprint)’을 도입할 것이란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EU 회원국의 제재 의무가 명시되면서, 이번에야말로 EU 집행위가 그린워싱에 칼을 빼 들 것인지 주목받습니니다. EU 집행위는 오는 3월 해당 지침을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구체적으로 초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정리했습니다.

 

‘친환경’ 제품 42%, 모호하거나 근거 없음! 📢

지난 20일(현지시각) 유럽 정책전문미디어 유랙티브(Euractiv)는 EU 집행위가 작성한 그린클레임 지침의 새로운 초안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그린클레임(Green claim)이란 생분해성, 재활용 가능, 바이오 기반, 탄소중립 등 기업이 자사 제품·서비스의 친환경성을 홍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친환경 주장’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친환경이 트렌드로 부상함에 따라 모호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친환경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EU 집행위 또한 이번 지침 제안의 배경으로 소비자보호협력네트워크(CPC)의 최근 조사에서 그린,에코, 친환경 등 제품의 친환경성에 대한 홍보 문구 중 40%가량이 입증되지 않았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해당 조사에서 CPC는 2020년 11월 한 달 동안 344건의 지속가능성 주장을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절반가량인 42%가 “주장이 거짓이거나 기만적일 수 있는 사례”로 분석됐는데요. 또 57%가량은 소비자에게 정확성을 판단할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 EU 집행위가 2019년 ‘제품의 환경발자국 전달을 위한 소비자 테스트’ 보고서에서 공개한 PEF 라벨링 예시. ©European Commission

‘친환경’ 홍보하려면? 생산부터 폐기까지 16가지 환경 영향 입증할 것! 🏷️

이번 지침의 목표는 제품의 환경 영향을 평가하고, 친환경성을 입증하기 위한 표준화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환경 정보의 신뢰성 회복을 통해 소비자의 긍정적인 선택을 장려하기 위해서인데요. 아울러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단 목표도 있습니다.

아울러 방법론을 통일함으로써 기업은 국가·시장별로 친환경성 입증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라벨링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랙티브가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기업이 EU 27개 회원국 내 제공되는 제품·서비스의 친환경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제품환경발자국(PEF·Product Environmental Footprint)’이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입증해야 합니다.

PEF에는 전제품수명주기(LCA) 평가방법이 적용됩니다. 친환경성을 주장하려면 자원의 추출·재배 과정부터 제품 생산, 사용, 수명종료까지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환경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물, 공기, 자원, 토지 이용 등 16가지 범주의 환경 영향이 포함됩니다.

 

▲ 지난9월 15일 삼성전자는 ‘新(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며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다. EU의 그린클레임 지침에 따르면 이와 같은 친환경 주장을 표명할 경우 기업들은 기준연도와 목표연도,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하고 달성해 입증해야 한다. ©삼성전자

한편, 2050 탄소중립, 온실가스 50% 감축 등 미래의 환경 성과를 주장할 땐 더 까다로운 규칙이 적용됩니다. 초안에 따르면 기업은 기준연도와 목표연도를 명시해야 합니다. 또 특정 날짜까지 구체적인 이정표를 달성해 입증해야 합니다.

EU 집행위는 초안에서 제시한 PER 방법론 사용을 장려합니다. 다만, 특정 표준을 충족한다고 입증된 방법론을 사용해 기업들이 친환경 주장을 입증할 수 있다고 EU 집행위는 덧붙였습니다.

상품 및 서비스가 아닌 기업·조직의 친환경 주장을 할 때에도 PEF와 마찬가지로 ‘조직환경발자국(OEF) 방법론’ 등을 사용해 입증해야 합니다.

지침이 통과되면 별도의 규제를 적용받는 은행·투자 상품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외하고,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 및 서비스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 유럽 대표 저비용항공사 라이언에어는 네덜란드 소비자시장청(ACM) 등으로부터 그린워싱 경고를 받았다. ACM은 라이언에어가 ‘비행을 더 친환경으로(Fly greener to)’라는 문구를 이산화탄소(CO2) 보상 옵션에 사용함으로써 비행 자체를 친환경으로 오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Ryanair

EU 집행위, ‘패널티 조항’ 추가…‘탄소상쇄’도 언급해 ⚖️

특히, 이번 초안에서 주목할 점은 EU 회원국이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에 대한 패널티를 부여할 수 있단 조항이 추가됐단 점입니다.

초안은 “(EU) 회원국들이 이 지침의 위반에 적용되는 행정 처벌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이 시행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됐습니다. 앞서 2022년 2월에 공개된 초안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단 점과 비교됩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유럽소비자단체 BEUC의 디미트리 베르뉴 지속가능성 팀리더는 “EU 집행위가 그린워싱과 싸우기 위해 감시 당국의 역할을 크게 강화할 계획이라는 점에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번 초안에서는 기후 관련 그린클레임의 사례로 ‘탄소상쇄(Off set)’가 언급됐습니다.

현재 많은 기업이 기후중립, 탄소중립, 100% 이산화탄소(CO2) 보상 등을 주장할 때 탄소배출권 구입을 통한 상쇄를 활용합니다. 문제는 과대 평가, 이중계산, 탄소회계 부족 등으로 인해 탄소배출권의 영향을 정확하고 신뢰성 있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오해할 소지도 높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초안에는 기업이 친환경 주장을 입증할 때, 탄소상쇄의 사용 여부와 사용 유형 그리고 상쇄에 의존하는 정도와 해당 탄소상쇄가 배출 감소·회피·제거와 관련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EU 집행위가 그린클레임 지침 입법에 지지부진한 사이, EU 비회원국인 영국은 한발 앞선 2021년 9월 유사한 행동지침인 ‘그린클레임코드’를 발표, 시행하고 있다. ©CMA

1년 만에 재개된 그린클레임 입법…이번엔 도입될 수 있을까? 🤔

EU 집행위가 그린클레임 지침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EU 집행위는 2013년부터 PEF 방법론을 도입하기 위해 시범 프로젝트에 착수해 완성도를 높여왔습니다. 2020년에는 8월부터 12월까지 그린클레임 이니셔티브 관련 공개 협의를 진행하면서 그린클레임 논의가 급물살을 탔는데요.

2021년 12월에는 비르기니우스 신케비치우스 EU 환경해양수산장관이 EU 집행위에 PEF 활용에 관한 권고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듬해인 2022년 2월, 유로뉴스, 유랙티브 등 주요 외신들은 EU 집행위가 그린클레임 초안을 3월경 공식 발표할 것이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EU 집행위의 그린클레임 초안 발표는 계속 연기됐습니다. 그러던 사이 2021년 9월, 유럽 국가이지만 EU 비회원국인 영국이 앞서 나갔는데요. 영국 경쟁시장국(CMA)이 EU 집행위의 그린클레임과 유사한 ‘그린클레임코드(Green Claims Code)’*를 발표한 것.

이에 EU 집행위도 다시금 그린클레임 지침 추진에 시동을 걸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린클레임코드: 2021년 영국 경쟁시장국(CMA)이 발표한, 기업이 친환경성을 주장하기 위해 따라야 할 6가지 행동지침. CMA는 2022년 8월에는 아소스(ASOS), 부후(Boohoo) 등 영국 패스트패션 기업들의 그린워싱 여부 조사에 착수하는 등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Oleksandra Troian, iStock

다만, 유럽 산업계에서는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유럽 최대 기업연합단체 비즈니스유럽(BusinessEurope)은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지침이 기존 법안과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EU 집행위가 비생산적인 규제와 행정적 부담을 늘리고 있다고 비판했는데요.

구체적인 초안은 올해 3월쯤 공식 발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후 약 18개월 동안 유럽의회, 이사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요. 2020년 공개 협의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야말로 그린클레임 지침이 도입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 공정거래위, “2023 그린워싱 방지 추진” 밝혀 🇰🇷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친환경 마케팅이 증가하며 그린워싱을 제재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세부 판단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6일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담긴 내용인데요. 공정위는 판단 기준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인체무해,’ ‘안전성 입증’ 등의 광고 표기에 기업의 입증 책임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저작권자(c)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