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다만, 독일·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의 요구를 반영해 합성연료(E-Fuel) 사용 차량의 판매는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EU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한다는 내용을 담은 ‘핏 포 55(Fit for 55)’ 구상의 일환입니다.

지난 28일(현지시각) 유럽이사회 산하 교통·통신·에너지이사회(이하 에너지이사회)는 2035년부터 EU 역내 신규 승용차와 승합차의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규정안을 채택했습니다.

규정안에 따르면, 2030~2034년 EU 내에서 판매할 신규 내연차는 CO2 배출량을 2021년 대비 승용차는 55%, 승합차는 50%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합니다. 이후 2035년부터는 신규 승용차와 승합차의 CO2 배출이 전면 금지됩니다. 쉽게 말해 내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판매가 불가능해진단 것.

허나, 앞서 언급한대로 합성연료를 주입하는 신차는 2035년 이후에도 판매를 계속 허용하기로 예외를 뒀습니다.

 

▲ 유럽연합EU의 신규 승용차 및 승합차의 단계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감소 목표치 그래프 승용차와 승합차 모두 2035년에는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EC 제공 greenium 편집

독일·이탈리아가 2035년 내연차 금지 법안에 반대한 이유는? 🤔

앞서 EU 집행위원회·유럽의회·유럽이사회는 지난해 10월 3자 협상을 통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승용차·승합차 등 소형화물차의 배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 시행에 합의했습니다.

통상 EU의 새 법안은 3자 협상 타결 이후 유럽의회와 유럽이사회에서 각각 최종 승인 절차를 거칩니다. 올해 2월 유럽의회는 최종 타협안을 이미 승인했고, 유럽이사회 표결만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막판 최종 표결을 앞두고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이 표결에 거부권 입장을 밝히며 법안 자체가 좌초될 뻔했습니다.

독일·이탈리아·체코 등 EU 내 전통차 강국들이 내연기관차에 반대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일자리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적은 인력으로 생산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2035년까지 내연차를 퇴출하는 EU 법안이 시행되면 독일 내에서만 수 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독일과 이탈리아는 각각 합성연료와 바이오연료 사용 내연차 허용 요구를 규정안에 넣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EU 집행위는 수 주간의 협상 끝에 독일 측의 합성연료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단, 이탈리아 측의 바이오연료 관련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했습니다.

이사회 표결에서 타협안은 최종 승인됐습니다. 다만, 이탈리아·불가리아·루마니아는 기권, 폴란드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 칠레 에너지 기업 HIF의 합성연료 생산 과정 인포그래픽 ©HIF

EU·독일, 2035년 이후 ‘조건부’로 내연차 신차 판매·등록 합의 🚗

이에 따라 EU는 올해 하반기 보완 법안 격인 후속 위임법(Delegated act)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EU 집행위와 독일 측의 합의 내용에 의하면, 2035년 이후에도 합성연료 사용 내연차 판매 및 등록은 가능합니다. 허나, 합성연료 이외 연료가 주입될 경우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장치가 포함돼야 합니다. 현재 해당 기술은 시장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이 위임법에 대해 유럽의회와 이사회 모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EU 집행위는 합성연료를 쓰는 내연차를 새로운 분류로 등록할 계획입니다. 내연차, 전기차처럼 ‘합성연료차’라는 항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기분해로 만든 수소와 대기 중에서 포집한 탄소를 결합해 만든 이퓨얼(E-Fuel)이 대표적인 합성연료입니다. 제조 방법 및 반응 조건에 따라 메탄·메탄올·가솔린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기존 수송용 연료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퓨얼 또한 연소 시 CO2를 배출하나, 완전 연소 비율이 높아 기존 경유차 대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GHG)이 20~40% 수준입니다. 더불어 기존 내연기관 시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거의 없단 이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성연료 생산은 여전히 비싸단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해 EU 산하 비영리단체 교통환경연맹(T&E)의 연구에 따르면, 합성연료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소모량은 전기차와 비교해 5~6배에 달합니다.

 

▲ 칠레 에너지 기업 HIF가 만든 합성연료의 모습왼 독일 자동차 기업 포르쉐는 HIF와 협력해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 인근에 합성연료 생산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오했다 포르쉐는 시범 단계에서 연간 약 13만 리터의 합성연료를 생산할 계획이고 2025년까지 연간 5500만 리터까지 생산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다 ©HIF

‘합성연료 사용 인정’에 포르쉐·현대차 웃어 😁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금번 규정안 통과가 향후 판매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합성연료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 자동차 기업 포르쉐는 규정안 통과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포르쉐는 지난해 칠레 에너지 기업 HIF에 7,500만 달러(약 957억원)을 투자해 칠레 최남단에 ‘합성연료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했습니다. 같은해 12월부터 해당 시설에서 연간 약 13만 리터의 합성연료를 생산 중입니다.

포르쉐는 합성연료 개발 및 생산에 약 1억 달러(약 1,277억원)가 넘는 자금을 투입한 상황입니다. 올리버 칩세 BMW그룹 회장도 최근 합성연료에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에너지화학 기업 아람코(Aramco)와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와 협력해 합성연료를 공동 개발 중입니다.

당시 알렌 라포소 현대차 전동화개발담당 전(前) 부사장은 “탄소중립 모빌리티(이동수단)의 최종 목표는 완전한 전기차로의 전환이나, 기술 전환 과도기에 온실가스의 저감하는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친환경 내연기관 기술이 짧은 기간에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도 작년 10월 합성연료 공정기술을 보유한 미국 기업 인피니움(Infinium)과 투자 협약을 맺었습니다. 세부 투자 금액과 지분 규모 등은 양사 합의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는 2030년까지 전체 차량 판매 비중에서 전기차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드는 올해 전기차 사업에서만 약 30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했다 투자 비용이 늘어난 만큼 당분간은 적자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포드의 입장이다 ©Ford

볼보·포드 등 47개 기업 “EU 규정안 전기차 전환 속도 늦출 것!” 😠

반면, 볼보·포드 등 47개 자동차 제조기업은 금번 규정안에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EU 집행위와 독일의 합의에 항의하며 모든 내연차 판매금지 방침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이들 47개 기업은 공개서한을 통해 “전기차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신기술 및 신생산 공정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했다”며 “확정된 합의안을 다시 뒤집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볼보는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 브랜드 전환을 목표로,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로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포드 또한 2030년까지 전체 판매 비중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포드는 올해 전기차 사업 분야에서만 약 30억 달러(약 3조 8,500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전동화 로드맵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이들 기업 입장에서는 합성연료가 포함된 금번 규정안이 자사의 사업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것.

 

▲ 독일 수소 스타트업 선파이어Sunfire는 그린수소와 함께 합성연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갖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Sunfire

전문가들은 합성연료가 보완재 역할에 그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합성연료 투자에 적극적인 포르쉐·BMW·현대차 모두 전동화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생산단가가 높은 것도 문제입니다. 포르쉐 합성연료 생산 공장 가동 초기 생산비는 1리터당 10달러(약 1만 3,000원)였습니다. 탄소포집 및 재생에너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나 휘발유보다 비쌀 것이란 것이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2030년 합성연료 1리터 생산에 약 3~4유로(약 4,200~5,600원)가 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독일 포츠담기후연구소(PIK)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계획된 합성연료 프로젝트는 향후 독일 합성연료 수요의 10%를 충당할 정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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