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를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경제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막대한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주요 문제로 대두된 상황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한달 넘게 고온현상이 계속되면서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 7,000만 명이 열 주의보 또는 폭염 경보 영향권에 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비용 중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이 가장 큰 비용 문제로 부상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먼저 NYT는 2020년 폭염으로 미국에서만 1,000억 달러(약 128조원)의 노동력 손실 관련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어 국제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을 인용해 2021년 더위 노출에 따른 미국 농업·건설·제조업·서비스업 부문에서 25억 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손실됐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발생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 경제가 입을 손실도 같이 높아진단 것.

2050년까지 미국에서만 폭염으로 인해 연간 5,000억 달러(약 640조원)의 노동력 손실 관련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폭염 속 아마존 배송기사 파업…“트럭 화물칸 50℃ 넘어” 🚛

이미 폭염으로 인해 일부 업계에서는 관련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유통업체 아마존(Amazon) 소속 배송기사들과 창고 근무 노동자 중 일부가 폭염 근무 조건을 개선해달라며 지난 6월말부터 부분 파업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한 배송기사는 기후전문매체 그리스트(Grist)와의 인터뷰에서 “35℃가 넘는 폭염 속에서 하루 최대 400번 정차를 해야 한다”며 “화물칸은 50℃가 넘는다”고 호소했습니다.

6월말 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우체국 배달원이 폭염 속 업무 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미국 최대 물류업체 UPS 또한 앞선 시위에서 지난 7월 회사로부터 트럭 내 에어컨 설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 미국 최대노동조합 중 하나인 전미트럭운송노조 일명 팀스터스가 미 코네디컷주에서 폭염 속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

“32℃ 폭염 6일 이상 지속시 자동차 공장 생산성 8% ↓” 🚗

냉방 설치가 미흡한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일제히 퇴사하는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일례로 미 캔자스주에 한 육가공 공장은 지난 5월 이후 직원 2,500명 가운데 거의 200명이 사직했습니다.

폭염 속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보안경을 써야할뿐더러, 장비 소독을 위해 뜨거운 물을 지속적으로 부어야하는 근무환경 때문에 평소보다 사직이 약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미국 내 공장 상당수가 수십년 전 지어진 탓에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잘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일례로 미국 내 스쿨버스를 생산하는 IC버스 공장은 최근 1,900만 달러(약 240억원)를 들여 에어컨 시스템을 설치 중입니다. 공장 바닥 온도가 한때 37℃까지 오르자 내놓은 조치입니다.

폭염이 일주일 중 6일 이상 32℃로 지속될 경우 미국 자동차 공장 생산성이 평균 8% 감소한단 연구도 있습니다. 2012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과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른 것입니다.

패스트푸드점도 폭염으로 인해 사정이 비슷합니다. 햄버거 패티를 굽고 감자튀김을 튀기는 열기가 에어컨 냉기를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맥도날드 매장 곳곳에서는 이런 이유로 그만둔 직원이 적지 않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20년간 근무한 마리아 오드리게즈는 “매장 곳곳에 에어컨이 있지만 주방 온도는 38℃를 넘는다”며 “예전에도 더웠지만 올해 여름만큼은 아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의 환경·노동경제학자인 박지성 교수는 NYT에 “인간이 온도에 민감하고 열에 노출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번 더위로 폭염이 예상보다 더 여러 방식으로 경제의 톱니바퀴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0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라 조선소를 방문해 직원들을 만난 모습 ©백악관

폭염 등 기후리스크 대처 않으면 기업경영에도 위기 닥쳐 💰

국제학술지 ‘스프링거링크(Springer Link)’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32℃를 넘으면 생산성이 32% 떨어지고 38℃를 넘으면 생산성이 70% 넘게 손실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WSJ에 의하면, 미 텍사스주에서만 이번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95억 달러(약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6월 중순부터 폭염이 시작된 이후 텍사스주 내 관광·오락·스포츠업계에서 중소업체 노용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19.6시간으로 예년에 비해 20%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무더위로 고객이 줄면서 일거리도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폭염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폭염으로 매년 미국에서 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단 점을 언급하며 ▲취약 노동자 보호조치 ▲기상예측 개선을 위한 자금 등을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2021년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에 폭염 관련 규정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허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 초안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미국 내 7개 주에서는 더위와 관련한 노동자 보호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주에서는 해당 제도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6월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지사는 건설 노동자에게 물 마시는 휴식 시간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삭제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에어컨 설치와 그늘 마련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국가가 관련 기준을 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에 노동전문가들은 고용주들이 기후리스크에 대응하지 않으면 기업경영에도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OSHA를 이끈 데이비드 마이클 조지워싱턴대 공공보건학부 교수는 “필요한 변화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고용주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노동자가 죽는 것을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비용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지난 1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 이래 첫 파업에 돌입했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韓, 폭염 속 휴게시간 보장 파업·KTX 열차 운행 조정 등 잇따라 🌡️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지난 1일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섰습니다. 2021년 6월 노조 설립 후 첫 파업입니다. 파업은 경기 동탄, 인천, 대구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노조는 쿠팡 물류센터가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파업 이유를 밝혔습니다.

고용부의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장은 체감온도 33℃ 이상인 주의(폭염주의보) 단계시 1시간마다 10분씩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을 주도록 권장합니다. 35℃를 넘을시 휴게시간은 15분으로 늘어납니다.

현장 실태는 다르단 것이 노조 측의 주장입니다. 냉방장치는 사실상 선풍기뿐이라 매년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도 나오고 있다고 노조 측은 덧붙였습니다. 최근 폭염 속에서 카트 관리 업무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쓰러져 숨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폭염은 우리나라 운송과 물류에도 직접적 타격을 줬습니다.

지난 1일부터 일부 KTX 노선에서 지연이 발생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폭염으로 인래 레일 변형이 우려돼 열차 운행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04년 개통한 KTX가 폭염으로 인해 문제가 생겨 운행이 조정된 것은 2018년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한편, 국제신용평가 무디스(Moody’s)는 폭염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건강상 위협을 높여 2100년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7.6% 위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