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인 마리우폴을 포위했습니다. 3월 16일(현지시각) 여성과 아이들이 대피한 것으로 알려진 산부인과병원 및 극장을 폭격해 최소 3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항공기 폭격을 당한 마리우폴 극장 마당에는 민간인 대피소임을 알리기 위해 러시아어로 ‘어린이’라는 글자 дети가 써 있었습니다.

최근 마리우폴 시장은 AP통신에 한 달간의 봉쇄로 21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도시의 90%가 파괴됐다고 밝혔습니다. 마리우폴의 현황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줍니다. 영국 정보기관에 의하면,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에는 현재 16만 명 이상의 시민이 갇혀있습니다. 화석연료발전소와 창고에 가해진 폭격으로 전기가 나가고 난방 연료도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시민들은 영상 3°C의 추위를 몸으로 견뎌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전기가 나가면서 전화 및 인터넷 통신이 끊기고, 의료서비스는 멈추기 직전입니다. 소수의 시민들은 시의회에 있는 발전기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지만 다수는 폭격 위협으로 대피소를 떠나기 어렵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물입니다. 시민 상당수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눈 녹은 물을 마시고 있죠.

키이우, 체르니히우 등 우크라이나 북부 주요 도시에서는 러시아군이 철수한단 소식이 들리지만 실제 군사 활동은 아직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 상당수는 여전히 식수, 전력, 난방, 의료, 통신 접근이 어려운 대피소에 갇혀있습니다.

 

© 폭격으로 파괴된 마리우폴 어린이 병원 및 산부인과 병원 우크라이나 국방부

“눈이 와서 행복합니다. 눈은 그들(시민들)이 마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르게이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

전쟁은 빠른 승리를 위해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을 우선적으로 파괴합니다. 폭격에 살아남은 시민들은 상하수도 파손되고 가스와 전력이 끊긴 도시에서 생존을 위협받죠. 안전지역 혹은 외국으로 탈출한 난민들도 생존이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 등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해외로 탈출한 난민 수만 400만 명 이상. 이들이 머물고 생활하기에는 물자와 기반시설도 모두 부족한 상황입니다. 전 세계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난민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오늘 그리니엄은 전쟁 속에서 난민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과, 난민 구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할 기술의 공통점은 3가지입니다. 빠르게 적용할 수 있고, 제작이 쉽고 단순하며, 재사용·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순환경제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는데요. 순환 디자인과 기술이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다양한 사례들을 모아봤습니다.

 

© <a href=httpswwwukrainetakesheltercom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UkraineTakeShelter<a> VAN 페이스북

주거 🏠

  • 난민을 위한 종이 칸막이 쉼터

3월 11일, 폴란드에서는 난민을 위해 비상 대피소를 설치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시게루 반이 이끄는 비영리단체인 자발적건축가네트워크(VAN)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골판지 기둥과 천막 등 현지재료를 사용해 신속하게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종이파티션시스템을 제공했습니다.

  • 하버드생, 3일만에 80만명을 돕다

미국에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웹사이트를 만든 학생들도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신입생인 마르코 버스타인과 아비 시프만은 지난달 초 우크라이나 난민과 이들을 돕고 싶은 집주인을 연결하는 사이트 우크라이나테이크셀터(UkraineTakeShelter)를 개발했습니다. 사이트 개발에 걸린 시간은 단 3일. 이들의 사이트를 통해 80여만 명의 난민이 간이 쉼터가 지어지길 기다리는 대신, 더 빠르게 주거를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 <a href=httpswwwdezeencom20210813looop can is a sanitary pad washing device for refugees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Looop Can<a> <a href=httpjerrycanfiltercom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Jerrycanfilter<a> 제공

식수·위생 🚰

  • 스스로 청소되는 정수 필터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 거주하는 7억 8,000만 명은 깨끗한 물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이들을 돕기 위해 개발된 작고 저렴하며 기존의 표준 물통과 호환되는 정수 필터는 난민 또한 도울 수 있습니다. 정수 필터 제리(Jerry)는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에 부착돼 있는데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필터로 불순물이 자동으로 걸러지는 구조죠. 현재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가자기구 등에서 시범 운영 중입니다.

  • 난민의 절반을 도울, 생리대 세척 키트

루프 캔(Looop Can)은 난민의 위생 문제와 경제적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생리대 세척 키트입니다. 작은 원통형 캔과 나사형 장치를 사용해 약 500ml의 물과 약간의 베이킹 소다만으로 생리대를 세척할 수 있습니다.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슉 람 웡과 카라 웡은 기부에 의존해야 하는 일회용 생리대를 대신하면서도 귀중한 자원인 물을 절약하고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습니다.

 

© Sun oven SOLARISKIT 제공

에너지 🔥

  • 일론 머스크, 우크라이나의 영웅 되다

러시아 침공 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자신의 상업 위성인 스페이스X(SpaceX)를 사용한 스타링크(Starlink) 서비스로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연결을 도왔는데요. 스타링크 덕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현지 소식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계속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울러 테슬라는 태양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 시스템인 파워월(Powerwall)도 지원했는데요. 파워월에 저장된 전력은 14kWh로, 태양열 패널이 있다면 계속해서 사용도 가능합니다. 테슬라는 이전에도 허리케인 마리아로 전력망에 큰 피해를 입은 카리브해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 이 장비를 제공한 바 있습니다.

  • 태양열, 작고 저렴한 온수기로

파워월은 직접 전력을 제공하지만 1만 1,000달러로 매우 고가이며 태양열 패널이 설치돼야 한단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태양에너지를 사용하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기업 솔라리스킷(SOLARISKIT)이 개발한 플랫팩 온수기는 패널과 금속코일만으로 프리즘 효과를 사용해 물을 데울 수 있는데요. 따듯한 물은 난방과 샤워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현지 재료로 만드는 태양 오븐

가스, 전기 등이 끊기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불을 피워 몸을 데우고 음식을 조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료와 장작도 부족한 상황. 여러 난민 캠프에서 사용되는 태양 오븐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면서 확실한 조리기구입니다. 철판, 알루미늄 포일, 유리판 등 햇빛을 모을 수 있는 반사성 재질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파괴된 모술 Tom Peyre CostaNRC

현지 재료를 사용한 종이 파티션과 태양 오븐, 자원 소모를 줄인 생리대 세척 키트와 태양열 온수기처럼, 오늘 소개한 기술 대부분은 지속가능성과 순환성을 고려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기술 상당수가 이라크,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및 재해 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제시되거나 사용된 아이디어란 것입니다.

이처럼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망가져버린 삶의 터전을 더 빠르게, 더 지속가능하게, 현지에 적용 가능한 방식으로 재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말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응원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더 나은 재건’을 응원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그리니엄에서는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심을 두고 관련 소식에 귀 기울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