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전후로 여름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올해 장마는 태풍급 강풍에 집중호우 그리고 폭염이 겹친 것이 특징입니다. 역대급 봄 가뭄이 언제였나 싶게 연일 물 폭탄을 퍼붓고 있는 상황.

쏟아지는 빗줄기가 차라리 가뭄 때 왔으면 하고 바란 분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가뭄으로 갈라진 논밭과 말라 시들어간 작물들을 생각하면 눈치 없이 뒤늦게 내리는 빗방울이 더욱 야속할 뿐입니다.

그런데 봄 가뭄 피해와 여름 침수 피해가 단지 빗줄기의 ‘타이밍’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도시의 경우 가뭄과 폭우 피해에 취약한 이유가 공통적으로 ‘도시에 물이 너무 없어서’라고 주장하는 도시 설계사가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도시 설계를 통해 침수 피해 및 물 부족 문제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가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로와 집이 침수되는 이유라기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요. 대체 도시의 가뭄과 침수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이를 단번에 잡을 수 있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 서울 전역에 호우경보가 발효된 6월 30일 잠수교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잠수교 차량통제는 지난 2020년 8월 이후 2년 만이다 서울시 Twitter 갈무리

도시가 물에 잠기는 이유, 시멘트와 콘크리트 때문이야! 🏗️

우선 도시가 물에 잠기는 이유부터 알아봅시다. 현대 도시의 물 관리 핵심은 빠른 배수입니다. 물을 빠르게 한곳에 모아야만 식수·농업용·공업용·수력 발전 등 필요에 맞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배수가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은 도시화율이 80%에 달하며, 2013년 기준 서울은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불투수면적이 절반(54.4%)을 넘었는데요.

하지만 이상기후로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기존 하수시설은 점점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죠. 갈 데가 없는 빗물은 하천으로 모여 범람하거나 도심 저지대를 덮치는 상황인데요.

배수 중심의 물 관리는 침수와 가뭄 모두 심화시킵니다. 도시는 빗물 유출량이 늘수록 가뭄에 취약해지는데요. 지하수로 흘러가야 할 빗물까지 콘크리트 하수도를 따라 빠르게 배수되기 때문이죠.

지표수인 강과 하천은 증발되기 쉬운 반면, 지하수는 가뭄 때에도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인데요. 수위가 높은 하천이 지하수로 역행하면 하천이 마르거나, 지하의 빈 공간이 무너지면서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상기후로 극한 홍수와 가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단 점입니다.

 

© 스펀지 도시 개념도 ARUP

중국이 채택한 물 관리의 새로운 솔루션 ‘스펀지 도시’ 🧽

다른 나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2년 7월 21일. 중국 베이징에는 61년 만의 폭우가 내려 도로와 건물이 침수됐는데요. 일부 지역에는 460mm의 집중호우가 내려, 1951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치의 비가 내렸습니다.

20시간 동안 내린 비로 베이징 도심 교통이 마비되고, 500여 편이 넘는 항공기가 결항하거나 연발됐는데요. 도심 곳곳에서 침수사고 및 감전사고 등도 잇따라 당시 79명이 사망하고, 5만 6,000여 명이 대피했습니다.

피해 직후,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조경건축가 유 콩지안을 찾았습니다. 그는 수 년 전부터 중국 정부에 홍수 위험이 크다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해왔기 때문인데요. 그가 중국 정부에 제시한 해법은 물을 내보내는 대신 끌어안는 ‘스펀지 도시(Sponge City)’입니다.

스펀지 도시는 말 그대로 도시가 스펀지처럼 빗물을 흡수하고, 지표로의 유출은 최대한 늦추자는 개념인데요.

 

© 중국 닝보 동부 신도시 수로의 복원 전 모습왼과 구불구불한 강을 포함한 생태 회랑으로 복원된 모습오 Turenscape

콩지안 북경대 조경학과 교수는 크게 3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우선 공원, 호수, 습지 등 빗물을 머금을 수 있는 지역을 보호해야 합니다. 빗물 정원, 녹색 지붕, 생태 공원, 투수성 도로포장 등이 해당됩니다.

둘째로는 강의 직선화 대신 구불구불한 강과 습지를 복원해 물의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강변, 삼각주 등 저지대에는 건설을 피하는 것인데요. 그는 “물과 싸울 수 없다”며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폭우에는 물을 머금어 침수 피해를 줄이고, 가뭄에는 저장된 수자원을 활용하는 ‘기후 탄력적 도시’가 될 수 있단 건데요.

2012년 베이징 폭우 발생 직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스펀지 도시란 이름의 전국 홍수 방지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2020년 중국 국영방송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5년간(2016~2020년) 중국 내 90개 도시에서 스펀지 도시 개념이 실행됐고, 538개 도시의 기본계획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는데요. 현재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인구 100만 명 이상의 100개 도시에서 빗물의 70% 포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상하이 허우탄 공원 해안가의 콘크리트 홍수벽을 허물고 식량 생산 홍수 방지 수처리 및 서식지 기능을 포함하는 습지를 조성했다 Turenscape

가뭄·폭우 대비하면서 생물다양성 높이고 탄소발자국은 낮추고 💸

도시에서 가능한 한 빨리 물을 내보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스펀지 도시는 습지나 범람원 같은 장소에 물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호주의 물에 민감한 도시 디자인(Water-sensitive urban design), 페루의 천연 인프라(Natural infrastructure) 등이 있는데요.

사실 빗물을 모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는 골목, 주택 곳곳에 빗물을 저장하는 탱크를 설치해 도심 침수는 방지하고 가뭄 때 주민들의 생활용수로 사용했죠.

우리나라는 환경부가 도심 상습 침수 해소를 위해 2013년부터 하수관을 개량하고, 일시적으로 빗물을 모으는 저류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는데요.

그러나 빗물을 한데 모아 처리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고 콘크리트와 시멘트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발자국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시설이 사용되는 일자도 한해 며칠뿐이란 점에서 자원낭비란 지적도 나오는데요.

탄소집약적 시설에 의지하는 ‘회색 인프라’과 비교할 때, 스펀지 도시는 숲과 호수, 습지 등 자연에 기반한 솔루션(NBS, Nature-based solutions)입니다.

자연 기반 솔루션은 가뭄과 폭우 외의 일상생활에서도 대중에게 효용을 제공하는데요. 도시의 동식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해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미세먼지와 열섬 현상을 완화하며,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녹지에 심긴 나무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단 것!

 

© 영화 싱크홀2021의 한 장면 쇼박스

우리나라 또한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가뭄 뒤 폭우’ 패턴이 반복되면서 위험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지는 가뭄으로 건조해진 땅에 여름 폭우가 쏟아지면서 갈라져 있던 땅이 무너지기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산사태, 지반 붕괴로 인명 피해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언제든 ‘최악의 폭우’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기후변화 시대. 기록적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싱크홀이 속출하고 건물이 기울어졌던 2018년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도 이제는 도시의 물 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요.

 

+ 지구촌에서 가장 폭우를 잘 견디는 도시가 어딜까? ☂️
컨설팅 기업 에이럽(Arup)이 최근 폭우가 심해진 세계 7개 도시를 분석했는데요. 오클랜드, 런던, 뭄바이, 나이로비, 뉴욕, 상하이, 싱가포르를 분석한 결과, 뉴질랜드 오클랜드가 가장 폭우를 잘 견디는 스펀지 도시였다고. 반면, 영국 런던이 최하위를 기록했단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