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열린 런던패션위크(London Fashion Week)에서 화제를 모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요. 바로 ‘패션스케이프: 순환경제(Fashionscapes: A Circular Economy)’란 제목의 영상입니다. 해당 다큐에는 강을 따라 높게 쌓인 의류 폐기물의 모습이 담겼는데요. 해당 장면은 아프리카 가나의 국제중고의류시장인 칸타만토 시장에서 버려진 옷들이 쌓인 것이라고 합니다.

가나 최대 중고의류 국제시장으로 명성을 떨친 칸타만토 시장. 일주일 동안 약 1,500만 벌이 넘는 옷이 쏟아지는데요. 이는 가나 국민 수의 절반이나 되는 헌 옷이 매주 도착하는 셈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업사이클링 전문 디자이너 샤무엘 오텡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옷들의 대부분은 매립된다고요. 너무 낡아서 중고로 판매하는 것도, 재사용하기도 어렵고 단추와 지퍼를 분리해 재활용하기 너무 어렵다고 말이죠.

 

난 너를 믿었었기에 친환경 옷을 구입했는데…🧥

옷들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까닭. 바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때문입니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맞춰 빠르게 옷을 생산하고 값싸게 팔아 유행할 동안만 입고 버리는 경향을 이르는 말인데요. 패션업체가 재고를 자선업체에 기부하거나, 의류수거업자가 중고의류를 수거해도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에 값싼 가격에 수출되는 상황입니다.

대량 생산, 값싼 노동력을 토대로 세워진 저렴한 상품군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 사이 패스트 패션으로 인한 문제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죠. 이미 전문가들은 막대한 의류 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과 인권 문제 등 패스트 패션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지적했는데요. 이에 패션 브랜드들도 앞다퉈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 Fashionscapes: A Circular Economy 속 장면

그러나 패션스케이프의 감독 앤드류 모건과 리비아 퍼스는 친환경을 약속한 패션 브랜드의 이면을 폭로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여러 패션 브랜드가 (자원)순환 개념을 친환경으로 위장하는데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죠. 즉,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란 것인데요. 감독들은 패션 브랜드들이 내세운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을 저격합니다.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의 합성 소재를 사용합니다. 대신 이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은 오래된 옷을 ‘회수’해 ‘재활용’한다고 약속하죠. 허나, 재활용 소재 원단의 상당수는 폐페트병을 원료로 씁니다. 그렇다면 패션 브랜드들이 수거한 옷은 어디로 갈까요? 중고 옷들은 여러 중개업체를 거치며 주로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져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합니다. 앞서 봤던 가나의 사례처럼 말이죠.

 

©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이 내놓은 컨셔스 콜렉션_H&M 홈페이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지난 6월 국제비영리재단 ‘변화하는시장재단(Changing Markets Foundation)’은 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유럽 및 영국 패션 브랜드가 내세운 친환경 관련 광고 중 59%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특히, 가장 문제로 꼽힌 브랜드는 H&M이었습니다. H&M은 지속가능한 패션 미래를 독려하고자 ‘컨셔스 포인트(Conscious Point)’를 출범했는데요. 기존 제품보다 합성소재를 11%나 더 많이 썼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의 모회사인 인디텍스(Inditex)는 무게를 기준으로 하면 가장 많은 합성소재를 사용했는데요.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으로 화제를 모은 파타고니아의 경우 재단의 설문조사에 응하지조차 않았다고 합니다.

 

© 제주도 내 폐페트병을 수거해 재활용한 리젠제주 원사로 제품을 만든 사례_노스페이스 제공

H&M도, Zara도? 그럼 우리나라 브랜드는? 🤔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패션 브랜드도 지속가능성이 트랜드인데요. 가치소비가 주류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자, 상당수 브랜드들이 업사이클링이나 오가닉면 소재 등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의 그린워싱을 분석한 보고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패션 브랜드들이 내세운 친환경을 소비자 입장에서 주의해볼 지점 3가지를 정리해봤습니다. 패션잡지 <보그>가 정리해준 ‘친환경적인 제품을 발견하고 책임 있는 소비자가 되는 6가지 방법’을 참고했어요!

 

1️⃣ 리사이클링의 원재료⚗️ 확인하기
최근 SPA나 등산복 등 여러 브랜드들이 지속가능한 소재로 폐페트병을 리사이클링한 소재를 사용했단 점을 강조해요. 하지만 앞서 다큐멘터리에서도 지적했듯, 폐페트병처럼 옷이 아닌 소재를 재활용해 옷으로 만드는 방법은 온전한 순환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더욱이 제품의 몇 %가 재활용된 소재인지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따져볼 지점인데요.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같이 추상적인 단어 대신 구체적으로 몇 %나 재활용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기업의 정량화된 목표가 있는지 등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치를 찾을 수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느낌적인 느낌’을 의심하기
재활용 소재뿐만 아니라 100%면, 대나무 같은 천연 소재도 친환경적이라 홍보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목화에서 나오는 면은 땅에 매립되도 자연분해가 되는 천연 섬유입니다. 문제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따르면 전 세계 농약과 살충제의 무려 35%가 목화를 기르는데 사용된다는 것. 이외에도 비건가죽처럼 ‘느낌적인 느낌’으로 친환경 마케팅을 펼치는 경우도 의심이 필요해요. 비건가죽도 동물보호와 생명존중의 가치가 중요해지며 떠오른 대안이지만, 화학원료를 사용한 인조가죽까지 포괄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비건소재라도 ‘어떤’ 비건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 당신의 옷에 담긴 비밀

👉 말로는 친환경, 실상은 다른 비건 가죽

 

3️⃣ 탄소발자국👣도 고려하기
소재뿐만이 아니에요. ‘찐’으로 지속가능한 제품인지 따지기 위해서는 소재뿐만 아니라 전체 공정까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청바지 브랜드에서는 해외에서 구입해온 친환경 원단을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탄소발자국’이 증가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탄소발자국은 제품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 표기한 수치입니다. 리사이클원단, 천연원단의 지속가능성은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적기 때문인데, 운송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이 증가한다면 소용이 없겠죠?

 

지구에게 보내는 패션 디자이너의 편지 💌

이 정도면 패션 브랜드가 ‘지구를 파괴하는 악의 축’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환경운동가이자 패션디자이너로 유명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비비안은 패션쇼 안팎으로 과소비와 기후변화 그리고 환경 오염 문제를 알리는데 앞장선 인물로 잘 알려졌는데요.

 

©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COP26을 앞두고 낭독한 ‘지구에 보내는 편지’_Reuters, 유튜브

지난 18일, 비비안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앞두고 본인이 작성한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지구에 보내는 편지(Letters to the Earth)’에서 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행동할 것을 촉구했는데요. 비비안은 지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I use fashion as a vehicle for activism to stop climate change and mass extinction of life on Earth.”

저는 기후변화와 대멸종을 막기 위해 패션을 사용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사람들은 말합니다. 패션 브랜드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고. 그러나 비비안은 다르게 말합니다. 패션은 지구를 살릴 힘도 있다고. 이미 많은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패션 그리고 예술을 통해 기후 문제를 막기 위한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귀찮더라도 한번 더 소재를, 함유량을, 생산과정을 따져보는 일이 소비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