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의 수입품에 탄소배출 부담금 성격의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EU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집행위원회와 각료이사회 그리고 유럽의회의 3자 간 밤샘 협상 끝에 CBAM도입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CBAM은 EU가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의 탄소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연동된 탄소가격이 추가로 부과됩니다.

당장 EU 밖에서 6개 품목의 제품을 생산한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2023년 10월부터 보고해야 합니다. 해당 제품의 배출량이 EU의 기준을 초과한 경우 EU ETS에서 탄소배출권을 추가로 구입해야 합니다.

즉,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는 것인데요. EU는 오는 16~17일께 CBAM 도입에 따라 부과 기준이 될 EU ETS 개편을 위한 추가 논의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후 EU ETS 개편에 따라 CBAM의 구체적인 시행 시기 등이 담긴 최종 합의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CBAM은 탄소가격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EU 밖 국가들에게는 무역장벽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공존합니다.

 

*이슈 업데이트: 유럽의회는 16일부터 진행된 약 30시간의 회의 끝에 ETS 개편안에 합의했습니다. 개편안에 따르면, EU는 ETS 적용 분야의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치를 2005년 배출량 대비 62%로 상향했습니다.

 

▲ 지난 13일(현지시각) EU 각료이사회와 EU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3자는 CBAM 최종 법안 도출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날 파스칼 캔핀 유럽의회 환경위원장(왼)과 모하메드 차힘 유럽의회 의원(왼)이 CBAM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European Union 2022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유럽 기후정책의 중요한 기둥될 것” 🇪🇺

CBAM에 대해 유럽의회의 모하메드 차힘 의원은 “유럽 기후정책의 중요한 기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CBAM 초안이 처음 발표된 날은 2021년 7월 14일(현지시각)입니다. 당시 EU 집행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할 것을 목표로 하는 기후대응 입법 패키키 ‘핏포 55(Fit for 55)’를 발표했습니다. 핏포 55 안에 CBAM, 즉 탄소국경세가 포함돼 있었던 것.

발표 당일 EU 집행위는 CBAM을 기후문제 완화를 향한 EU의 야심찬 지원을 보여주는 조치라고 소개했는데요. 이어 CBAM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합치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EU는 2005년부터 배출권 거래(ETS) 시장을 운영 중이다. ©IIEA, 유튜브 캡처

무상할당제 폐지·ETS 개편 등 쟁점 남아 ⚖️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CBAM이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단 우려를 제기합니다.

유럽의회가 CBAM 결의문 채택 당시 “CBAM이 차별적이거나 위장된 국제무역 제한 조치가 되지 않고, WTO 규범과 EU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부합된다는 전제하에 CBAM 도입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대목입니다.

잠정 합의안에도 유럽의회는 이 점을 재차 강조했는데요.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도 CBAM이 WTO 규범에 합치한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EU는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알루미늄 등의 산업이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CBAM을 도입했다고 설명합니다.

허나, 여러 쟁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할당제’입니다. EU는 2005년 ETS를 도입해 이를 주요 탄소가격 정책으로 운용해 왔습니다. 문제는 역내 생산기반이 탄소가격이 저렴한 국가로 옮겨가면서 결국 전 세계의 탄소배출량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 탄소누출이 발생했는데요.

 

▲ 탄소누출은 국가별 환경규제 차이를 이용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규제가 약한 국가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것을 뜻한다. ©IASS Potsdam

그간 EU는 탄소누출 위험이 높은 산업 부문에 대해 ETS 무상할당제를 주는 방법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무상할당제를 받은 EU 내 산업군은 탄소배출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는데요. EU 밖에 있는 수출기업들은 무상할당제만으로도 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했습니다.

이에 EU는 무상할당제로 인한 시장 왜곡과 탄소누출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BAM 도입을 고려하게 된 것인데요.

결과적으로는 CBAM은 대외적으로는 관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며 동시에 ETS를 기반으로 한 EU 내부의 탄소가격 정책의 일부가 되는 복합적인 특성을 가지게 됐습니다. 즉, CBAM과 ETS 두 제도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인데요.

무상할당제의 경우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됐습니다. 다만, 무상할당제 폐지가 명시된 EU ETS 개편안은 EU 27개 회원국의 동의와 유럽의회의 표결을 필요로 합니다. 표결은 이르면 2023년 1~2월에 이뤄질것으로 보입니다.

 

▲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우선 적용된다. ©France Diplomacy

CBAM, 6개 품목 대상…“유예기간 중 품목 추가될 수 있어” 📝

초안이 발표됐을 당시 CBAM이 적용될 품목은 철강·알루미늄·비료·전력 등 4개였습니다. 여기에 올해 6월 유럽의회가 수소·유기화학품·플라스틱·암모니아 등 4개 품목을 추가해야 한다는 수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번 CBAM 잠정 합의안에는 추가 품목 중 수소만 포함돼 총 6개 품목(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이 명시됐습니다. 또 향후 스크류, 볼트 등 일부 제품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CBAM은 2023년 10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시범 운영 기간 중 기업들에게는 수입 제품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보고 의무만 부과되는데요. 일단 탄소배출량의 보고 범위는 원칙적으로는 직접배출(스코프 1)과 특정 요건 아래서 간접배출(스코프2)도 포함됐습니다.

CBAM의 본격적인 도입 시기는 ETS 개편에 맞춰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됩니다.

추가로 3년간의 유예기간 중 EU는 간접배출량 측정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또 유예기간 중 유기화학 및 플라스틱이 CBAM 적용 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고 EU는 밝혔는데요. 자동차도 CBAM 적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은 보도했습니다.

 

+ 수소와 전력이 포함된 이유는? ⚡
여기서 전력은 제품을 만들 때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들여보겠다는 의미입니다. 또 수소의 경우 EU가 추진 중인 수소전략이 맞물려 포함됐단 분석이 대다수인데요. 화석연료로 만든 그레이수소가 EU로 수입되는 것을 억제하고자 하는 내부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 포스코 광양제철소 4열연공장에서 철이 생산되는 모습. ©포스코

CBAM 소식에 비상 걸린 한국 정부·기업…“중소기업 타격 우려돼” 🚨

CBAM 잠정 합의 소식에 당장 한국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EU 철강 수출 금액은 43억 달러(약 5조 6,000억원)입니다. 이어 ▲알루미늄 5억 달러(약 6,503억원) ▲비료 480만 달러(약 62억원) ▲시멘트 140만 달러(약 18억원) 순입니다. 전력과 수소는 수출하지 않는데요.

특히, 우리나라 산업을 지탱해온 철강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철강산업은 유연탄과 전력 사용 비중이 높아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입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의하면, 2019년 기준 국내 철강산업의 배출량은 약 1억 1,700만 톤입니다. 연구원은 철강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16.7%, 산업 부문 배출량의 3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주요 산업의 탄소조정국경제도(CBAM) 취약성 평가 지표를 비교한 그래프. 대외정책경제연구원은 각 산업별로 CBAM에 대한 피해경로가 다르며, 이러한 피해경로 및 취약요인에 따라 산업별로 차별화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외정책경제연구원, 보고서 캡처

CBAM이 시행되는 내년 10월부터는 6개 품목의 배출량 측정·보고·검증(MRV)만 하면 되나, 본격 시행된 해부터는 생산비 증가와 그로 인한 부수적 행정비용이 급증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당장 탄소배출량 산정으로 인한 비용이 필요한 상황인데요.

특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과 자금 및 전담인력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지난해 중소벤처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인 이상 전체 광업·제조업체(6만 8,400개)의 32.6%가 고탄소업종에 해당합니다. 또 이중 97.9%가 중소기업인데요. 같은기간 수소를 제외한 CBAM 대상 품목에 대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대EU 수출 규모는 6억 1,000만 달러(약 7,941억원)라고 대외정책경제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EU가 요구하는 배출량 MRV 단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중소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피해가 예상됩니다.

 

▲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현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총리실

정부 “EU에 일정 부분 CBAM 적용 면제 예외 요구할 것” 📢

정부는 CBAM 잠정합의안이 나온 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EU의 CBAM 대응현황을 점검하는 첫 범부처 회의를 열었습니다.

방 실장은 “CBAM의 본격 시행으로 철강 등 대 EU 수출산업이 받을 영향에 대비해 중소·중견 기업을 포함한 기업의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국내 탄소 배출량 검증인력·기관 등 관련 인프라를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산자부 통상교섭본부가 중심이 돼 유예기간 동안 EU 측과 협의를 지속해 달라고 방 실장은 당부했습니다.

정부는 일단 CBAM 본격 시행에 앞서 EU에 일정 부분 CBAM 적용 면제 등 예외 조처를 요구할 전망입니다. 이와 별개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저감 기술 개발에 약 1조원을 투입할 방침입니다.

 

+ CBAM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국가 또 누가 있을까? 🌐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보고서를 통해 EU의 CBAM으로 인해 러시아, 중국, 터키, 브라질 등 10개국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지난해 CBAM 초안 발표 직후, 중국 정부는 CBAM이 “WTO 협정을 위반한다”며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호주, 인도와 같이 화석연료 소비가 많고 수출 중심의 중공업 국가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