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에 달린 열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른바 ‘탄소 과수원(Carbon Orchard)’이란 새로운 개념을 들고 DAC(직접공기포집) 기술 상용화에 나선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2021년 12월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설립된 스피리투스(Spiritus)의 이야기입니다.

라틴어로 ‘숨’을 뜻하는 이 스타트업은 창업 이후 그간 스텔스 모드*를 유지하며 기술개발에 매진해 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VC) 코슬라벤처스(Khosla Ventures) 등으로부터 1,100만 달러(약 147억원)를 투자받으며 스텔스 모드에서 벗어났습니다.

더불어 이튿날인 7일(현지시각) 탄소제거(CDR)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프런티어 펀드(Frontier Fund)’는 스피리투스로부터 탄소배출권 713톤을 사전 구매했단 소식을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구매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스텔스 모드: 일정 기간 기업 창업 등의 현황을 비밀로 유지하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생 스타트업을 뜻한다.

 

▲ 기후테크 스타트업 스피리투스 공동설립자인 찰스 카듀 CEO와 매튜 리 CTO의 모습. ©Spiritus

美 국립연구소 출신 화학엔지니어가 공동설립한 ‘스피리투스’ 🧪

코슬라벤처스 파트너이자 팔로알토 연구센터(PARC) 소속 연구원인 제시 리베스트 박사는 “수년간 DAC 기술을 면밀히 조사해 왔다”며 “스피리투스의 기술이 DAC 설비 확장 및 비용 문제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첫 투자를 감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코슬라벤처스는 DAC 스타트업 약 60곳을 조사한 끝에 스피리투스에 투자를 진행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런티어 펀드 또한 “스피리투스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재료와 흡착제로 대기 중 CO₂를 포집할 수 있다”며 “기존 DAC보다 적은 에너지가 소모된단 것이 확인됐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습니다.

스피리투스는 찰스 카듀와 매튜 리가 공동 설립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습니다.

카듀 CEO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를 거쳐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신경과학 박사를 취득한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일전에 인공지능(AI)으로 초음파를 판독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캡션헬스(Caption Health)를 공동설립한 바 있습니다. 이 기업은 올해 3월 다국적 의료기술 기업 GE헬스케어(GE Healthcare)에 인수됐습니다.

리 CTO의 경우 미 에너지부 산하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LANL)에서 10여년간 화학자 겸 엔지니어로 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2012년부터 2022년 6월까지 LANL에 근무하며 여러 화학공학 및 첨단소재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스피리투스가 개발한 구체 모양의 흡착체 ‘과일’의 모습. ©Spiritus

“인체 폐 모방한 ‘과일’ 모은 ‘탄소 과수원’으로 탄소포집 ↑·에너지 ↓” 🍑

스피리투스의 DAC 기술은 리 CTO가 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 CTO는 독자적인 화학 흡착제를 사용해 대기 중에서 CO₂만 포집하는 기기를 개발했습니다. 구체 모양의 하얀색 기기이며, 저온에 노출될 시 탄소를 포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흡착제에 어떤 재료나 물질이 사용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대기 중 CO₂를 최대한 많이 포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설계와 소재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리 CTO는 회고했습니다.

사실 대기 중 CO₂ 농도는 희석돼 존재하기에 포집이 어렵습니다. 이는 DAC 기술 비용이 높은 원인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클라임웍스(Climeworks) 등 상당수 DAC 스타트업은 막대한 에너지로 거대한 팬을 돌려 CO₂를 포집해 저장 또는 제거합니다. 운영비가 높은 탓에 DAC 플랜트는 CO₂ 포집 톤당 최대 600달러(약 80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 스피리투스가 개발한 구체 모양의 흡착체 ‘과일’이 설비인 ‘과수원’에 한데 모여 있는 상상도. ©Spiritus

이 때문에 리 CTO는 미 경제전문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사의 DAC 기기가) 인체의 폐를 모방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폐는 대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고 인체 내 CO₂ 배출에 효율적으로 움직입니다. 이 과정을 모방하되 인체와 달리 반대로 CO₂만 포집할 수 있도록 기기를 만든 것. 모듈식으로 설계된 덕에 확장성이 높을뿐더러, 재생에너지로 운영될 수 있단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했습니다.

스피리투스는 이 기기를 현재 ‘과일’로 부르며, 이들 기기를 한데 모은 설비를 ‘과수원’으로 통칭해 부르고 있습니다. 각 기기들은 탄소포집 후 다시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른바 ‘탄소 과수원’이란 접근법을 통해 대기 중 탄소포집 및 제거를 가속화 한단 것이 스피리투스의 구상입니다.

 

▲ 스피리투스 CTO인 매튜 리가 연구실에서 자사의 DAC 기기인 일명 과일을 연구하는 모습. ©Spiritus

스피리투스 “투자금 바탕으로 ‘탄소 과수원’ 설치 장소 모색” 🗺️

카듀 CEO는 “대기 중 탄소포집을 위해선 높은 열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스피리투스는) 기존 공정과 비교해 절반 수준의 열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에너지 사용량이 적단 것은 DAC 설비 구축 및 운영비가 낮단 뜻입니다.

카듀 CEO는 자사의 기기나 설비 모두 소형으로 설계된 덕분에 기존 장비보다 토지사용량이 적단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스피리투스는 코슬라벤처스와 프런티어 펀드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내에 DAC 설비, 즉 탄소 과수원을 설치하는 것을 계획 중입니다. 구체적인 장소는 아직 모색 중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DAC 톤당 포집 가격을 100달러(약 13만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스피리투스는 전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의 목표와도 동일합니다. 현재 미 에너지부는 DAC를 통한 탄소포집 및 탄소제거 비용을 2030년까지 톤당 100달러 수준으로 낮춘다는 ‘탄소네거티브 샷(Carbon Negative Shot)’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카듀 CEO는 “(스피리투스의 탄소 과수원이) 산림이 제거할 수 있는 것보다 약 1,000배는 더 많은 CO₂를 제거할 수 있다”며 조만간 여러 기업과의 파트너십 및 프로젝트 추진 현황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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