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부문 탈탄소화의 차세대 해결책 중 하나로 열배터리가 뜨고 있습니다.
열배터리란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에서도 전기·열 등의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저장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돌·모래·콘크리트 등 열을 저장하는 축열재를 사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이전부터 사용된 기술입니다. 이 때문에 히트펌프와 마찬가지로 열배터리 또한 ‘오래된 신기술’로 불립니다.
그런데 최근 재생에너지 시장 활성화로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 에너지 저장을 넘어 산업용 열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저장할 수 있는 열 온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술이 등장한 덕분입니다.
29일 그리니엄이 시장조사기관 피치북 통계를 확인한 결과, 최근 1년간 열배터리 스타트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4월 기준 열배터리 스타트업의 평균 평가액은 전년 대비 81.9% 증가했습니다.
같은달 미국 기술전문매체 MIT 테크놀로지리뷰 독자들이 꼽은 ‘2024년 가장 주목해야 할 미래기술’ 역시 열배터리였습니다.
성능 저하·유지비 적은 ‘열배터리’…“탈탄소화 잠재력과 한계 모두 뚜렷” 🌡️
다른 ESS와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한단 점에서 떠오른 것이 바로 열배터리입니다.
열배터리는 이차전지(배터리)보다 저렴하고 확장도 쉽습니다. 사용횟수에 따른 성능 저하도 없습니다. 유지보수 비용 역시 낮습니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열 형태로 저장된단 이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산업계에서 사용되는 전체 에너지의 3분의 2가 열 형태란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산업용 열에 사용되는 에너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의 20%에 달합니다. 현재는 대부분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열배터리에 저장된 열에너지를 손실 없이 산업계가 바로 활용할 수 있다면, 산업계 탈탄소화에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단 뜻입니다.
문제는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단 고질적인 한계가 있었단 것. 저장할 수 있는 열 온도 한계 역시 아쉬운 점으로 지목됐습니다.
이 때문에 그간 열배터리는 장기 에너지저장 용도로만 주로 취급됐습니다.
열배터리, 재생에너지 증가·기술혁신에 MIT 독자 선정 11대 미래기술 꼽혀 🏆
그런 열배터리가 올해 MIT 리뷰 ‘독자가 뽑은 미래 기술’로 선정된 사실은 놀랍습니다.
MIT 리뷰는 매년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잠재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된 기술 발전 10가지를 선정해 발표합니다. 이어 독자들이 생각하는 미래 기술에 대한 투표를 받아 총 11대 미래기술을 발표합니다.
매체는 독자들이 열배터리를 선정한데 대해 “매우 흥미로웠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이유로 최근 점점 더 많은 열배터리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상황을 짚었습니다.
재생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발전량 증가, 전력계통 부족으로 인해 대규모의 전력 저장에 대한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MIT 리뷰는 기존 에너지저장을 넘어 산업용 열 이용을 목표로 한 스타트업들도 등장 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론도에너지, 벽돌더미에 최대 1,500℃ 열에너지 저장 🧱
현재 산업용 열배터리 업계를 선두하는 곳은 단연 론도에너지입니다.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스타트업입니다.
이 기업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고온의 열로 전환해 산업용으로 제공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술 원리는 단순합니다.
단열 용기에 실리콘과 알루미늄 등으로 구성된 내화벽돌을 쌓아 만들면 끝입니다. 이후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전선으로 전기 저항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킵니다.
단열 용기에 둘러싸인 벽돌더미는 최대 1,500℃의 열을 24시간 저장할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지난 후 며칠간 열손실률은 1%에 불과하단 것이 론도에너지 측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산업계가 열에너지를 사용해야 할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벽돌더미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됩니다. 이때 공기가 벽돌 틈새를 통과하면서 1,000℃의 열에너지로 회수되는 방식입니다.
저장된 열에너지가 주로 여러 생산시설의 고압증기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론도에너지는 밝혔습니다.
이로써 식품·패션·화학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용되는 열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또 1,000℃ 이상의 고온공정을 위한 설계도 가능하다고 사측은 덧붙였습니다.
세계 최대 ESS 공장 착수…MS·리오틴토·아람코 등 투자 합류 💰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론도에너지의 확장 속도입니다.
론도에너지는 2023년 3월 캘리포니아 에탄올 공장에서 최초의 상업용 파일럿(시범) 시설을 운영해왔습니다.
같은해 6월 태국 대기업 시암시멘트그룹과 협력해 9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열배터리 생산공장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창립 단 3년 만입니다. 단, 해당 공장의 예상 준공연도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계 배터리 생산시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현재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의 배터리 생산시설은 미국 얼티엄셀즈의 제1·2공장입니다. 각각 연간 41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얼티엄셀즈는 제너럴모터스(GM)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법인입니다. 배터리 셀 제조를 전문으로 합니다.
기존 배터리 산업계보다 확장 속도가 더 빠르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론도에너지는 작년 8월 시리즈 B 투자를 통해 6,000만 달러(약 800억원) 규모의 자본을 유치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산하 기후혁신기금과 브레이크에너지스루벤처스(BEV), 세계 2위 광산 기업 리오틴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등 글로벌 주요 대기업이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론도에너지가 설립 후 현재까지 유치한 투자금은 8,200만 달러(약 1,120억원)에 달합니다.
MIT 분사 스타트업 ETS, ‘전도성 벽돌’ 개발한 까닭? ⚡
최근에는 열배터리로 철강과 시멘트 등 산업군의 탈탄소화에 도전한 스타트업도 등장했습니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분사한 열배터리 스타트업 ‘일렉트리파이드서멀솔루션(ETS·Electrified Thermal Solutions)’의 이야기입니다.
2021년 다니엘 스택과 조이 카벨이 공동설립한 스타트업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책을 역임 중입니다.
ETS 또한 론도에너지와 마찬가지로 내화벽돌을 사용합니다. 차이점은 전기-열 전환에 필요한 전선까지 모두 없애 더욱 단순화했단 것.
일반적으로 벽돌은 전기가 전도되지 않습니다. 전기를 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선을 연결하여 전기저항을 일으켜야 합니다.
회사 공동설립자들은 이 전선이 고온의 열을 버티지 못한단 점에 주목했습니다. 더 고온의 열을 저장하기 위해선 고가의 재료가 필요했던 것.
이에 스택 CEO와 카벨 CTO는 벽돌 자체가 전도성을 띨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합니다. 벽돌에 사용되는 금속 산화물을 변경했단 것이 이들의 설명입니다.
“1,800℃로 철강·시멘트 탈탄소화 도전” 美 에너지부도 지원 사격 🔥
그 결과, ETS는 열배터리 ‘줄하이브(Joule Hive)를 개발합니다.
자체 개발한 금속 산화물 덕분에 최대 1,800℃의 열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론도에너지의 열배터리보다 300℃ 더 높은 것입니다. 단, 아직 크기는 엘레베이터와 맞먹습니다.
ETS는 열배터리를 활용해 보일러·용광로·고로 등 중화학 산업의 탈탄소화를 돕는단 계획입니다.
자사의 열배터리인 줄하이브가 저온의 증기·건조 분야부터 철강·시멘트 등 고온이 필요한 산업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사측은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미 켄터키주에 있는 한 공장은 천연가스 보일러를 ETS의 열배터리로 교체한단 계획입니다.
이 교체 사업은 미 에너지부의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 보일러를 ETS의 열배터리로 교체할 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7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에너지부는 내다봤습니다.
한편, ETS는 올해 1월 미국 에너지부의 자금 지원 대상 기업에 선정됐습니다.
에너지부는 ETS를 포함해 49개 프로젝트에 총 1억 7,100만 달러(약 2,300억원)를 투자한단 계획입니다. 제조업·시멘트·식품·화학 등의 분야에서 산업용 열을 탈탄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ETS는 해당 보조금으로 미 텍사스주에서 첫 상용규모 파일럿(시범) 시설을 구축한단 계획입니다. 미국 다국적 제조사 3M 등이 파트너십으로 참여합니다.
이외에도 알루미늄 기업 노벨리스, 광산 기업 이머리스, 전력 기업 엔터지 등 제조업·광업 기업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합류할 것이라고 에너지부는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