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열에너지 개발 스타트업 퍼보에너지가 2억 4,400만 달러(약 3,200억원) 상당의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중 1억 달러(약 1,300억원)는 미 천연가스 생산업체 데본에너지가 투자했습니다.
이곳은 ‘인공저류층생성기술(EGS)’을 통해 기존 지열발전의 한계를 타파한 곳입니다. EGS 기술은 수압파쇄 등을 통해 인공적으로 지열 저류층을 생성해 전기를 생산합니다. 쉽게 말해 지열발전이 어느 지역에서나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8일 그리니엄이 데이터제공업체 크런치베이스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17년 설립된 퍼보에너지가 현재까지 유치한 투자금만 총 4억 3,100만 달러(약 5,690억원)에 이릅니다.
빌 게이츠의 기후펀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 또한 퍼보에너지에 투자한 이력이 있습니다.
투자금과 별개로 미 에너지부는 지열발전 기술 확장을 위해 퍼보에너지에 최대 6,000만 달러(약 792억원)를 지원한단 계획을 지난달 13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했습니다.
퍼보에너지, 네바다 지열발전소 구글 데이터센터에 무탄소에너지 공급 ⚡
퍼보에너지는 이미 미 서부 네바다주에서 상업용 지열발전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젝트 레드(Project Red)’라 명명된 시설입니다. 작년 8월 가동을 시작했으며, 약 3.5㎿(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생산합니다. 약 2,500가구가 한달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맞먹습니다.
해당 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은 네바다주에 있는 구글의 데이터센터와 사무실에도 공급됩니다. 이는 2030년까지 무탄소에너지 100% 사용이란 목표를 내건 구글의 목표 때문입니다.
구글에 따르면, 2022년 사측이 사용한 에너지 중 64%가 무탄소에너지였습니다. 이 비중을 2030년까지 100%로 올리기 위해선 지열발전의 힘이 필요하단 것이 구글 측의 설명입니다.
이를 위해 구글과 퍼보에너지 양사는 업무협약(MOU)을 맺고 관련 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유타주서 지열발전소 건설 중…“2028년부터 최대 400㎿ 생산 목표” 🏗️
또한, 퍼보에너지는 미 유타주에도 지열발전소 건설을 나섰습니다.
일명 ‘케이프 스테이션(Cape Station)’이란 이름이 붙은 곳입니다. 지난해 8월에는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사측은 2026년까지 해당 시설을 완공해 전력망에 연결하고, 202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력을 생산한단 구상입니다.
규모나 전력 생산 면에서 모두 네바다 시설보다 큽니다. 땅 밑에 있는 지열을 끌어 올리려고 판 구멍, 즉 지열정(地熱井)이 네바다 시설은 2개에 불과합니다. 반면, 유타주 시설은 지열정을 10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덕분에 최대 400㎿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사측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약 27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과 맞먹습니다.
사측은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 중 상당수를 유타 시설 건설에 사용한단 계획입니다.
회사 공동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팀 라티머는 “이번 투자 덕에 사측은 지열로 연중무휴 24시간 무탄소에너지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美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EGS 기술로 2050년 90GW 전력 공급 가능” 📈
미 에너지부 또한 퍼보에너지의 유타주 시추 작업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에너지부 산하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열발전은 미국 내에서 4GW(기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생산합니다.
NREL은 퍼보에너지가 가진 인공저류층생성기술, 즉 EGS 기술개발 속도를 높이면 2050년까지 약 90G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단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미국 내 약 6,5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입니다.
관건은 발전단가 절감에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오는 2035년까지 지열에너지 비용을 90%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미 에너지부는 구체적으로 MWh(메가와트시) 당 전력 가격을 45달러(약 5만 9,500원)까지 낮춘단 목표입니다.
다만, 라티머 CEO는 네바다 시설을 통해 생산한 MWh 전력이 45달러보다는 “상당히 높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술개발 및 규모 확장을 통해 몇 년 이내로 에너지부가 목표로 하는 가격까지 낮춰질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실제로 지난 2월 사측은 유타주 시설 초기 시추 작업 결과, 지열정 시추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네바다주 시설과 비교해 시추 시간은 70% 단축됐고, 시추 비용도 유정당 940만 달러(약 124억원)에서 480만 달러(약 63억원)로 줄었습니다.
이같은 초기 시추 결과는 EGS 기술에 대한 에너지부의 기대치를 크게 넘은 것이라고 사측은 강조했습니다.
에너지 업계가 지열발전 스타트업에 수천억원 투자한 이유는? 🤔
한편, 최근 미 에너지 업계가 지열발전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9일 전했습니다.
셰브론,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주요 에너지 기업이 셰일오일 탐사·시추 기술을 기반으로 지열에너지 개발 스타트업이나 프로젝트에 저마다 수천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가령 셰브론과 BP는 2021년 캐나다 지열에너지 스타트업 ‘이버 테크놀로지스’에 4,000만 달러(약 528억원)를 투자했습니다. 최근 BP는 이 기업에 1억 8,200만 달러(약 2,4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퍼보에너지 또한 천연가스 생산업체 데본에너지로부터 1억 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이들 에너지 업계가 지열에너지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기존 셰일오일 시추 기술을 바탕으로 지열에너지 개발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셰일오일 업계는 치열한 경쟁을 살아남기 위해 수압파쇄(프래킹) 공법을 지속해 발전시키며 시추 효율성을 높여 왔습니다. 그간의 기술을 모두 종합하면 지열발전 단가를 낮추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단 것이 이들 업계의 설명입니다.
둘째, 이들 기업 대다수는 이미 지질 및 시추 분야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퍼보에너지의 라티머 CEO 또한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빌리턴의 셰일가스 사업부에서 오랫동안 시추엔지니어로 일한 이력이 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라티머 CEO는 회사를 떠나 지열에너지 기술개발에 뛰어들게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정에너지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자 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전력 수요 증가도 지열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