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는 수요에 비해 인프라(기반시설)가 부족하다. 한 기업이 인프라를 전부 마련하려고 하면 너무나 큰 비용이 필요하다. (수소경제 추진을 위해) 여러 기업과 국가 간 협력이 요구된다.”

지난 14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H2비즈니스서밋(Korea H2 Business Summit·이하 H2 서밋)’ 제2차 총회에 참석한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의 말입니다.

H2 서밋은 2021년 출범한 민간 수소기업 협의체입니다. 현대차, SK, 포스코 등 국내 주요 17개 기업이 회원으로 속해있습니다. 이번 총회는 H2 서밋이 출범 직후 열린 1차 총회 이후 2년 만에 열렸습니다.

수소는 탈탄소 시대의 필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소를 영하 235℃에서 극온 상태로 냉각한 액화수소에 대한 산업계에 관심이 높습니다.

액화수소는 기체 상태의 수소 대비 부피가 약 800배나 작아 저장·운송 측면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모두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즉, 액화수소가 미래 수소경제의 게임체인저로써 상용화를 위한 핵심수단으로 관심받는 것.

이날 총회에 참석한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수소산업 증진을 위해선 관련 액화수소 인프라에 투자 및 법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수소는 영하 253℃에서 냉각하면 액체 형태로 변한다 ©SK ES

국내 액화수소 충전소 0곳…연내 구축 미지수 🔋

업계에선 당장 액화수소를 만들어봤자 쓸 곳이 없단 반응이 나옵니다. 액화수소 생산·운송·저장·충전·활용 등 각 분야에 걸쳐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액화수소 충전소만 해도 국내에 전무한 상태입니다.

액화수소를 수소상용차에 주입하려면 기체수소를 취급하는 일반 수소충전소가 아닌 액화수소 전용 충전소가 필요합니다.

지난 20일 한국은행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공동 개최한 ‘제1회 녹색금융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SK E&S의 김형근 최고재무책임자(CFO)은 액화수소플랜트 사업 추진 당시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상황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 두산퓨얼셀의 수소 충전기 트라이젠을 통해 두산밥캣의 완전 전동식 로더와 수소차를 동시에 충전하는 컨셉 이미지 ©두산그룹

앞서 정부는 2021년 말부터 액화수소 충전소 사업을 시작하고, 지난해 11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수경위)’에서 개소당 약 70억 원의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때 수경위는 2030년까지 70개소의 액화수소 충전소를 보급하겠다고 계획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전국에 구축된 액화수소 충전소는 0개입니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도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협회는 “올해 구축될 예정인 액화수소 충전소는 17개소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구축은 미지수”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는 현재 규제 샌드박스(실증특례)를 통해 액화 충전소·플랜트 구축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 20개소의 충전소가 구축될 예정”이라 해명했습니다.

 

“액화수소 제도 공백이 인프라 부족 불러와”…정부, 안전기준 제도화 추진 📄

반면,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국은 액화수소 충전소 250여개와 플랜트 40여개를 운영 중입니다. 이들 국가 모두 민관이 협력해 액화수소 중심의 수소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에 산업계와 정부 모두 주요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소 인프라 구축에 나선 것.

국내 기업 역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액화수소 공급에 나설 계획입니다. ▲SK E&S(인천광역시)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시) ▲효성중공업(울산광역시)은 올해 안으로 플랜트를 준공해 연간 최대 4만 톤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연간 예상 생산 규모는 SK E&S가 3만 톤으로 가장 많고 효성중공업(5,200톤), 두산에너빌리티(1,700톤)가 그 뒤를 잇습니다.

다만, 수소 인프라 구축을 위해선 액화수소 관련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산업계는 강조합니다.

 

▲ 수소 기업 퍼스트엘리먼트퓨얼은 2021년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 액화수소 충전소 31개소를 구축했다 ©FirstElement Fuel

현재 국내에는 수소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도모하고자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은 존재하나 액화수소 관련 제도화된 안전기준은 없습니다. 따라서 액화수소 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별도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H2 서밋 총회 당일(14일) 산자부는 ‘수소 안전관리 로드맵 2.0’에 따라 내년까지 액화수소 전주기(생산·저장·운송·활용)에 대한 안전기준을 제도화하기로 했습니다.

로드맵 2.0은 ‘수소 신제품·설비 선제적 안전기준 마련 및 수소산업 규제혁신’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정부가 제시한 안전기준만 통과한다면 누구나 액화수소를 생산하고 활용할 수 있단 것.

세부적으로 ▲액화수소 생산·유통·활용을 위한 전주기 안전기준 개발 ▲액화수소 생산용 액화천연가스(LNG) 냉열 배관 안전기준 개발 ▲액화수소 운송 차량 안전기준 개발 등 액화수소 관련 10개의 규제개선 과제가 포함됐습니다.

 

▲ SK ES와 한국중부발전이 구축을 추진 중인 보령 블루수소 생산기지 예상 조감도 ©SK ES

수소경제 시대, 정부 수요 창출 중요…‘모빌리티’ 중심 관련 지원 확대 🚌

H2 서밋에선 수소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안정적인 수요를 선도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현재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주도 중인 ‘수소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수요 창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산자부가 발표한 ‘액화수소 생태계 조성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수소버스에 총 280억 원을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을 신설할 계획입니다. 제도·정책적 지원을 강화해 통근·셔틀·경찰버스를 단계적으로 수소버스로 전환하겠단 것이 산자부의 설명입니다.

한편, H2 서밋에서는 수소산업에 대한 사업추진과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단 내용을 담은 ‘글로벌 수소경제 선도를 위한 서밋 이니셔티브’ 선언도 발표됐습니다.

먼저 회원사들은 2030년 탄소배출 모든 감축량의 10% 이상, 2050년 탄소배출 모든 감축량의 25% 이상이 수소를 통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한국이 수소산업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협업 기회를 창출하고 수소펀드 조성과 확장 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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