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차세대 기술로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열분해 기술에 규제 특례(샌드박스)를 적용해 석유·화학기업의 실증 특례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열분해유는 다량의 열이 필수적인 에너지 집약 기술이란 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이에 기계적 재활용과 달리 품질 저하 없이 여러 번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에 에너지 소비량도 적은, 또 다른 화학적 재활용 기술이 주목을 받습니다. 바로 ‘유기용제 기반 정제(Solvent-based Purification)’ 기술입니다.

국내에서는 화학기업인 SK지오센트릭이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 ARC(Advanced Recycle Cluster) 내에 유기용제 기반 정제 생산시설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SK지오센트릭이 파트너로 선택한 미국 기업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PureCycle Technologies·이하 퓨어사이클)’가 어떤 곳인지 그리니엄이 살펴봤습니다.

 

▲ 2017년 퓨어사이클과 PG 기업 연구소 직원들이 공장 개관식을 진행하는 모습 ©PureCycle

퓨어사이클, 세계적 생활용품 대기업 ‘P&G’에서 시작됐다? 🧼

2015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설립된 플라스틱 재활용 기업 퓨어사이클.

이 기업은 자동차 부품부터 식품 용기, 지폐에도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 재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폐플라스틱에서 색과 냄새 그리고 불순물만 추출하는 초순수(超純粹) 폴리프로필렌 정제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유기용매인 솔벤트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기용제 기반 정제’ 기술이라고 불리는데요. 현재까지 해당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은 퓨어사이클이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퓨어사이클은 특허 받은 유기용제 기반 정제 기술을 사용하지만, 정작 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따로 있습니다. 페브리즈, 헤드앤숄더 등으로 유명한 생활용품 대기업 프록타앤갬블(P&G)입니다. 퓨어사이클은 P&G로부터 특허 기술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사용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퓨어사이클의 시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P&G가 이 기술을 개발하게 된 배경을 돌아봐야합니다. 201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폴리프로필렌은 가소성이 좋아 기계적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냄새와 색 등 오염을 제거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재활용률이 낮다 ©greenium

전 세계 플라스틱 수요 25% 차지한 PP…재활용률은 5% 불과해!”

당시 P&G는 자사의 포장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폴리프로필렌을 재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칫솔부, 면도기 손잡이, 액체 생활용품 포장재 뚜껑과 펌프 등 대부분의 제품에 폴리프로필렌이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폴리프로필렌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수요의 25%를 차지합니다. 가소성이 좋아 물리적 재활용도 수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재활용으로는 냄새, 색, 불순물을 제거하기 어려워 실제 재활용률은 5% 미만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재 P&G의 지속가능한 재료 기발 연구개발(R&D) 이사이자 당시 P&G 수석과학자였던 존 레이먼은 재생 폴리프로필렌 판매기업이나 기술개발기업을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조사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는데요.

이에 P&G는 자체적으로 폴리프로필렌을 고품질의 재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데 뛰어들었습니다.

 

▲ 퓨어사이클은 지난 2021년 미국 증권거래소인 나스닥에 상장됐다 ©PureCycle

연이은 투자 끝에 P&G는 해당 기술 개발에 성공합니다.

문제는 P&G가 플라스틱 원료 생산이나 재활용 기업이 아니란 것. P&G는 해당 기술을 사용해 폴리프로필렌 재활용을 맡아줄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P&G에 손을 내민 곳이 혁신기술 상용화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벤처기업인 ‘인벤처(Innventure)’였습니다.

인벤처는 P&G의 유기용제 기반 정제 기술을 사용한 재활용 스타트업 ‘퓨어사이클’을 설립합니다.

이후 퓨어사이클은 해당 기술을 상용화하고 생산시설 건설에 착수합니다. 2021년에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으며, 미국 장외주식시장 나스닥(NASDAQ)에 상장됐습니다.

레이먼 이사는 “(퓨어사이클이) 실험실 규모의 기술이었던 것을 지금은 파일럿 규모로 확장하고, 상업 공장을 건설할 계획으로 (확장시키는) 환상적인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 왼쪽부터 폐플라스틱 쓰레기 폐플라스틱 쓰레기를 잘게 부숴 뭉친 것 이축연식 PP 필름BOPP 필름 솔벤트를 활용해 뽑아낸 초고순도 재생 PP의 모습 ©SK지오센트릭

이름도 긴 ‘유기용제 기반 정제’ 기술, 열분해와 어떻게 다른데? 🤔

플라스틱에 열과 압력을 가해 오일이나 가스 등 연료로 뽑아내는 열분해 및 가스화. 이 기술들은 매우 오랫동안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열분해 및 가스화 기술은 에너지 사용량이 높아 환경적, 경제적으로 지적받았습니다.

고온고압을 사용하는 앞서 기술들과 달리, P&G가 개발하고 퓨어사이클이 보유한 유기용제 기반 정제 기술은 열과 압력에 용매를 조합해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이 적습니다.

먼저 폐폴리프로필렌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녹입니다.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솔벤트 등으로 구성된 용매를 넣습니다. 이 용매는 폐폴리프로필렌 속에서 폴리프로필렌만을 선택적으로 녹이는데요.

액체가 된 화합물 바닥에는 폐플라스틱 속 용매에 녹지 않는 불순물과 첨가제, 색소 등이 가라앉습니다. 이후 폴리프로필렌만을 회수하면 끝입니다.

퓨어사이클은 회수된 폴리프로필렌의 품질이 버진 폴리프로필렌과 거의 유사할 정도라고 설명합니다. 때문에 이를 ‘초순수 재생(UPR·Ultra-Pure Recycled)’ 플라스틱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특히 UPR은 폴리머(중합체)의 결합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버진 (Virgin)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할 때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폴리프로필렌에만 사용이 가능한 점은 한계로 꼽힙니다.

 

▲ 지난 4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 워싱턴 DC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투자 신고식에 참석한 모습 더스틴 올슨 퓨어사이클 CEO도 자리에 참석했다 같은날 퓨어사이클은 2019년 착공한 첫 정제 공장의 완공을 마쳤다고 발표했다오 ©PureCycle

美 오하이오주 첫 정제 공장 완공…韓 울산서도 2025 목표로 건설 중!” 🏗️

이후 퓨어사이클은 여러 해에 걸쳐 파일럿 규모의 시설을 실험했습니다. 2017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 아이언톤에 첫 프로필렌 정제 공장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는 생산시설을 설립하기도 전에 로레알과 P&G 등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과 선판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가량이 흐른 지난 4월 25일(현지시각), 퓨어사이클의 첫 폴리프로필렌 정제 공장이 완공됐습니다. 이 공장은 올해 2분기부터 가동될 예정입니다.

퓨어사이클은 완전히 가동될 경우 연간 1억 700만 파운드(약 48,500 톤)의 UPR 플라스틱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날 퓨어사이클을 포함한 6개 미국 기업은 한국에 19억 달러(약 2조 5,100억원)의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 D.C 미 상공회의소에서 더스틴 올슨 퓨어사이클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습니다.

퓨어사이클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 SK지오센트릭이 건설 중인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 ARC(Advanced Recycle Cluster) 때문입니다.

한편, SK지오센트릭은 2022년 3월 퓨어사이클에 5,500만 달러(약 680억원)를 지분 투자하며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같은해 10월에는 울산 ARC에 폴리프로필렌 재활용 생산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SK지오센트릭은 퓨어사이클과의 합작 공장을 포함해 2025년까지 ARC를 완공할 예정인데요. 해당 시설은 2026년부터 연간 약 6만 톤가량의 재생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작권자(c)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