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는데요. 보고서는 ‘인간의 영향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며 인류 활동이 지구 환경 파괴의 핵심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죠.

그렇다면 환경 파괴를 일삼는 인물이나 기업, 국가를 법적으로 제소할 수 있을까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하고 생물다양성을 훼손하는 생태 학살. 즉, 에코사이드(Ecocide)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처벌할 수 있는 국제범죄로 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만약 법에서 받아들인다면, 에코사이드는 ICC에서 다루는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집단 학살, 침략범죄에 준하는 5번째 국제범죄로 채택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50년간 경고한 ‘에코사이드’ 🗣️

에코사이드는 환경(Echo)과 집단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의 합성어인데요. 1970년 미국의 식물학자 아더 길스턴에 의해 처음 언급됐습니다. 길스턴 박사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유독성 제초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를 지정하기 위해 에코사이드를 사용했다고 하죠. 이후 1972년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가 에코사이드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요. 그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베트남 전쟁은 에코사이드라 언급하였고, 또 급격한 산업 발전으로 인해 천연자원이 고갈될수 있다고 경고했죠.

에코사이드를 법으로 제정하자는 목소리는 1973년부터 나왔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국제법 명예 교수인 리처드 포크는 에코사이드 범죄에 관한 국제 협약을 제안하며, 에코사이드의 정의를 공식적으로 개괄해냈죠.

또한, 1978년 유엔 인권 소위원회는 ICC에 제정된 국제범죄 중 ‘집단 학살에 대한 협약’에 에코사이드를 추가하길 제안합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에코사이드를 국제범죄로 공식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법적으로 공식 인정된 적은 없었죠.

 

© 2020년 1월 23일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에서 열린 ICC 사법연도 2020 개막식 ICC <a href=httpswwwicc cpiintPagesitemaspxname=PR1509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홈페이지<a>

에코사이드는 인류와 함께 생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개념입니다. 올해 6월 전 세계 변호사와 환경 운동가들이 만든 유럽 내 시민단체 ‘스톱 에코사이드(Stop Ecocide)’는 에코사이드를 ICC에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하기 위한 법적 정의를 제출했는데요. 이들은 에코사이드를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장기간 환경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행위’라고 정의했습니다.

 

+ 당시 제안에 참여한 한 국제 변호사는요 🤚
인권 전문가 겸 변호사인 발레리 카바네스는 “에코사이드는 전쟁범죄, 반인륜 범죄, 집단 학살, 침략범죄 못지않게 심각하다”며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태롭지 않냐?”고 주장했습니다.

 

© Justus Menke <a href=httpsunsplashcomphotosXywi2MePlYQ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UNSPLASH<a>

국제범죄로서 기소! 인정될 있을까? ⚖️

에코사이드를 국제법으로 제정할 수 있을까요?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모두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점, 첫 번째는 기업을 기소할 수 없단 부분입니다. ICC의 관할권은 민간인에 한정되어 있어 기업을 조사하고 기소할 권한이 없습니다. 에코사이드에 대한 기소를 위해서는 ICC 규정부터 우선 수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ICC가 ‘최후의 수단’인 법원이란 점입니다. 국가 단위에서 법 집행에 실패한 사건만 ICC로 인계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 법원 재판이 우선시 된단 뜻이죠. 세 번째는 ICC의 국제법이 전 세계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ICC는 123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주요 국가인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이 관할 영역 밖에 있습니다.

 

©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 US Coast Guard

만약 법이 개정된다면 어떤 유형의 사건들이 에코사이드로 제소될 수 있을까요? 먼저 역대 최악의 환경 재앙이라 불리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 같이 인재로 드러난 일은 범죄로 기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조장한 삼림 벌채로 인해 급격히 황폐해진 아마존 열대우림,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산불과 관련해 팜유 및 펄프 회사의 법적 책임 회피 등 ICC 관할권 안에 있는 국가들은 국제법으로 제재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죄명은 에코사이드 👨🏼‍⚖️

에코사이드라는 죄명이 아직 국제법으로 제정되지 못했지만, 국가 단위에서 기후 소송이 이뤄지면서 조금씩 에코사이드를 수용하는 흐름이 번지고 있습니다. 2013년 환경단체 우르헨다(Urgenda) 재단과 시민 886명이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데요. 그 결과,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규정한 공식적인 판결입니다.

이어 지난 1월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세계 2위 규모의 초국적 석유회사 로얄더치쉘 석유 유출로 피해를 본 나이지리아 농부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판결에 따르면 로얄더치쉘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감축해야 합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기후 소송은 청소년 기후행동단체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입니다. 이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연방정부의 기후보호법이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내용이 불충분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하여 오는 2022년까지 법률 개정을 촉구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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