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대체육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 간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는데요. 최근 축산업계에서는 대체육이 고기와 오인되지 않도록 대체육 명칭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해달라는 성명을 냈죠.

이미 해외에서는 대체육과 대체유제품 등 대체 식품의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소송으로 번지는 추세입니다. 미주리, 루이지애나 등 미국 여러 주(州)에서 대체 식품에 고기·소시지·우유 등의 명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는데요. 이에 대체육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와 기업들은 부적절한 검열이라며 주 정부를 고소했으나, 여전히 많은 주에서는 대체육을 ‘고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축산업계의 강력한 견제에도 명칭을 둘러싼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그리니엄에서는 동물권 활동가이자 식물기반 대체유제품을 개발·판매하는 미요코스크리머리(Miyoko’s Creamery)의 대표, 미요코 시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pA8RQAtqr90t=96s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PLANT BASED NEWS<a> 유튜브 갈무리 Miyokos Creamery 홈페이지 갈무리

주 정부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편지, ‘비건 버터 표기? 법 위반이야!’ ✉️

시작은 12살 때 떠났던 캠핑이었습니다. 채식 식단을 먹어야 했던 캠핑은 고달팠지만,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돼지갈비를 보며 진짜 살아있는 돼지가 떠올랐죠. 그때부터 미요코는 육식을 끊고 비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여 년간 요리교실, 요리책, TV 요리쇼를 통해 비건 식품을 적극적으로 알렸죠.

미요코는 2014년,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대체유제품을 개발·판매하는 미요코스크리머리(Miyoko’s Creamery)를 설립했습니다. 캐슈너트와 코코넛 등 식물성 재료와 발효 기술을 사용해 비건 버터와 비건 치즈를 만들었는데요. 사업 1년 만에 수익이 2배로 뛰었고, 2016년에는 2,500만 달러의 자금 조달에 성공하는 등 사업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던 2019년 12월,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날라왔습니다. 캘리포니아 식품농업부(CDFA)는 편지에서 미요코의 ‘비건 버터’ 제품이 주 및 연방법을 위반했다고 알렸는데요. 소비자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제품 포장에 적힌 ▲버터, ▲유당 없음(lactose-free), ▲잔인함 없음(cruelty-free) 등의 용어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CDFA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진도 삭제하라고 요청했는데요. 소를 끌어안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출처를 오해하게 한다는 이유였죠. 미요코는 편지를 보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편지라 크게 웃었다”는데요. 곧이어 미국 동물법률보호기금(ALDF)의 도움을 받아 CDFA를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 침해로 고소했습니다.

 

© Miyokos Creamery 트위터 갈무리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은 미요코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미요코의 식물성 유제품이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주장에 근거가 불충분했다는 건데요.

또한, 주 정부가 주요 근거로 내세운 버터의 법적 정의(우유나 크림 또는 둘 다로만 만든 제품)에 대해 법원은 ‘언어는 진화한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음식은 계속 진화하고 있고, 사람들이 실제로 그들이 먹는 음식을 묘사하기 위해 어떻게 말을 사용하는지를 반영하기 위해선 언어도 진화해야 합니다.”
미요코 시너 미요코스크리머리 창업자 겸 CEO

 

사실 미요코의 회사는 이전에도 제품의 표기에 대해 소비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 뉴욕 여성이 회사의 식물성 버터가 기존의 유제품과 같다고 오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 건데요. 다행히 이 사건은 몇달 뒤 소송 당사자간의 합의로 기각됐죠.

하지만 CDFA의 지시는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모든 제품의 포장을 바꾸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대로 알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미요코스크리머리를 넘어 대체육·대체유제품을 만드는 캘리포니아 기업 모두가 CDFA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게 될 수 있죠. 따라서 미요코의 승리는 기존 축산 패러다임을 바꾸는 진전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 Miyokos Creamery 트위터 갈무리

미요코가 낙농가를 돕기 시작한 이유, “그들도 시스템의 피해자야!”

 

“채식주의자로서 우리는 종종 동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불미스러운 운명에서 동물을 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스템에 휘말린 사람들도 피해자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요코 시너 미요코스크리머리 창업자 겸 CEO

 

CDFA 같은 정부기관이 대체 식품을 규제하는 배경에는 축산업계의 로비가 있습니다. 미주리주의 명칭 규제 법안 초안은 미주리주 축산단체가 제시했고, 위스콘신 낙농업협회(DFW)의 2021년 주요 입법 우선순위는 ‘표시의 진실’ 법안을 도입하는 것이었는데요.

축산업계의 견제에 미요코는 오히려 낙농가를 돕는 프로그램(DFT)을 출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기존 낙농가가 비건 버터와 치즈의 원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전환을 돕는데요. 초기 자금과 교육, 기술지원, 나아가 전환 기간 중 경제적 수입까지 보장합니다.

회사는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요? 미요코는 낙농업 농부 상당수는 수세대에 걸쳐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럼에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는 미국을 먹여 살리는 ‘좋은 일’을 한다 등으로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래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휘말린 피해자라는 것이죠. 축산업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들이 ‘진짜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고 말하는데요. 이것이 미요코가 낙농장 전환 프로그램(DFT)을 운영하는 이유입니다.

 

© Miyokos Creamery 유튜브 갈무리

기나긴 법적 공방에서 승리한 뒤, 미요코스크리머리는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는 5,200만 달러(한화 약 631억 원)의 시리즈 C 펀딩에도 성공했죠. 덕분에 회사는 더 대중적인 식료품 매장으로 확장하고 있고 피자용 액상 비건 모차렐라 치즈 같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출시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같은 해 11월에는 유튜브 요리 채널도 런칭했는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비건 버터가 ‘동물성 버터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 직접 보여주려는 것이죠. 미요코는 이 채널에서 여러 비건 셰프와 함께 요리하며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가 따라 할 수 있는 조리법을 공개할 예정이라는데요.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나갈지, ‘비건 치즈의 여왕’ 미요코의 도전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