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2년 만에 개최된 COP26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는데요. 정작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글래스고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과 청년 세대의 미래를 잠식하는 상황. 문제는 정작 청년들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실효적 대책을 강구하는 자리에 철저히 배제되고 있단 것입니다. 이는 비단 해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사에서 정부는 “우리는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귀 기울일 것이다”고 밝혔지만 정작 미래세대 세션 연사 중 청년을 초청하지 않았죠. 이러한 현상을 ‘유스워싱(Youthwashing)’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유스워싱, 청년의 목소리가 어떻게 이용되는가 🗣️

유스워싱은 친환경이라 속이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기성세대가 정치·정책적인 목표를 위해 청년의 목소리를 이용해 홍보하거나 포장하는 행위를 일컫는데요. 가령 회의에 참석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중요한 회의에 청년들이 참여했다’고 홍보하는 것을 유스워싱이라 할 수 있죠.

유스워싱은 청소년·청년 기후 활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2018년을 시작으로 서서히 알려진 단어입니다. 이듬해인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를 기점으로 유스워싱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는데요.

 

© COP25 당시 청소년기후환경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소속 활동가들이 무대를 점거한 후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David Tong WWF New Zealand

당시 COP25는 이전 당사국총회(COP)와 달리 청년세대가 다양한 기후 세션과 이벤트에 참여해 의견을 나누었죠. 허나, 행사 상당수가 단순히 청년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을 뿐 실제로 청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했는데요. 이에 청년세대가 단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냔 목소리와 함께 유스워싱이란 비판이 제기됐죠.

 

정책은 기성세대의 몫, 고통은 미래세대의 몫 📣

작년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정상회의(Youth4Climate Summit)’에서도 청년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마무리된 바 있습니다. 청소년기후정상회의는 COP26 개최에 앞서 열린 사전 고위급 회담이었는데요. 당시 정상회의에 참석한 청년과 청소년들은 고위급 회담에 제안할 기후 대응 권고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죠.

허나, 덴마크 출신 청년 대표로 참석한 라이케 닐슨은 해당 자리를 두고 각국 청년·청소년 대표단 중 최소 3분의 1이 밀라노 회의 과정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닐슨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기후정상회의에 초대받은 참가자 상당수가 주최 측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단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는데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또한 주최 측이 COP26에 보낼 문서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별로 없다고 말했죠. 이때 청소년·청년 기후 활동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화석연료 폐지 등 여러 의견은 수용되지 못한 채 논의는 마무리됐고, 이는 COP26으로 이어집니다.

 

© 왼 COP26에 참석한 폴란드 기후활동가 도미니카 라소타 오 COP26 기조연설 중인 브라질 원주민 활동가 샤이 스루이Txai Suruí Dominika Rosota Instagram 갈무리 UNFCCC Flickr

COP26에 참석한 청년·청소년 활동가들 상당수가 세션 종료 후 곧바로 다른 세션으로 움직이는 행위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일부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지친 나머지 다음 세션에 참여하지 못했는데요.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행사가 유독 많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연단에서 말할 시간이 주어질 뿐, 재정이나 정책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단 것입니다.

이에 청년·청소년 기후활동가 상당수는 COP26이 유스워싱이 또렷하게 나타난 회의였다고 주장합니다. 폴란드 출신 기후활동가인 도미니카 라소타는 “(COP26에서) 청년들이 패널로 초대받고, 연단에 서고, 박수와 칭찬 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며 “하지만 우리가 얻은 박수 뒤로 어떤 행동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는데요.

COP26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브라질 론도니아(Rondônia) 출신 원주민 활동가 샤이 스루이(Txai Surui) 또한 “나는 협상과 결정에 관여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 COP26에서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전前 대통령 Kiara Worth UNFCCC

이밖에도 주최 측은 ‘가장 포괄적인 COP’를 약속했으나, 청년·청소년 활동가 상당수는 여러 세션 및 프로그램 참여에 입장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는데요.

미국 청년 기후활동가인 알렉산드리아 빌라세뇨르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버락 오마마 전(前) 미국 대통령이 청년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단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에 청년층이 들어갈 수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입장권이 시민단체(NGO)당 2장으로 제한됐고 이마저도 기성세대가 가져갔다고 설명했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청년이 없는 공간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안 회담장 밖에선 청년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우간다에서 온 기후활동가 바네사 나카테는 주변 활동가들과 함께 ‘돈을 보여달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는데요. 그는 본인이 13살일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1,000억 달러를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 COP26 회담장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약속한 기후재원을 요구하는 청년기후활동가들 PierreAntoine Denis 트위터 갈무리

청년 이야기가 전해지는 길목에 ‘청년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위해선 💬

유스워싱의 문제점을 바로 보고 청년·청소년 목소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청소년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모두의 기후정치’란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청기행은 캠페인을 통해 기후정치를 요구하는 선명한 목소리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끔 하는 활동이라 설명했는데요. 청기행은 대선 전까지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정치에 대한 지지 기반 확보를 목표로 ‘기후정치크루’를 모집하고 있죠.

‘모두의 기후정치’ 캠페인이 진행 중인 홈페이지에는 ▲대선 후보별 기후 공약, ▲기후정치비전 검증고사, ▲대선 후보별 기후정치 행보 등이 세세하게 나와있는데요. 이 현황판을 통해 각 후보가 기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활동이 향후 정책 입안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미지수이나, 기후정치를 원하는 청년들의 분명한 존재감을 나타냄으로써 다가오는 대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죠.

 

© 청소년기후행동이 진행 중인 모두의 기후정치 캠페인 청기행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 로얄 할러웨이 대학교의 제임스 슬롬 정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결정시 청소년 참여율이 증가하면 더욱이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인 공공정책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청년과 청소년은 마치 유행하는 단어처럼, 정책 문안이나 그럴싸한 표어에 거듭 호명만 되고 있죠.

현시점에서 누구보다 기후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미래의 존속이 달린 청년·청소년들이 아닐까요? 지켜지지 않은 공허한 약속, 의사결정은 물론 논의 참관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는 청년·청소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과 자리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