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먹거리 물가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누들플레이션(누들+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나타날 정도로 짜장면, 칼국수 등 밀가루 음식의 물가 상승이 두드러지는 상황.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이기 때문인데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의하면, 양국의 밀 수출량은 전 세계 27%에 달하죠.

그런데 만약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곡물이 있다면 어떨까요? 혹시 그 곡물이 ‘기후발자국’까지 줄일 수 있다면. 만약 그 곡물로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먹는 라면도 만들 수 있다면요?

여기 그 ‘만약’에 답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친환경 라면을 표방하는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한 싱가포르의 식품 기업 왓이프푸드(WhatIF Foods)인데요. 이들이 말한 라면은 대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시죠.

 

©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밤바라땅콩의 모습_WhatIF Foods 제공

왓이프푸드, 아프리카 밤바라땅콩에 주목하다 🥜

2020년 설립된 왓이프푸드. 이 기업이 밀가루를 대체할 작물로 선택한 것은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밤바라땅콩(Bambara Groundnut, BamNut)입니다. 서아프리카와 사하라 남쪽 지역을 원산지로 하는 밤바라땅콩,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기로 유명한데요.

영양학적 이점을 넘어 밤바라땅콩의 강점은 기후에 강하고 토양 재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재생 작물이란 사실입니다.

여타 콩과 마찬가지로 밤바라땅콩의 뿌리는 대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 토양에 질소를 고정합니다. 즉, 화학적 질소 비료 없이 자체적으로 비료를 생산하는 셈이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질소 비료를 사용하지 않기에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밤바라땅콩은 재배에 필요한 물 소비량도 적습니다. 그 덕에 고온건조한 아프리카 땅에서도 잘 자라는데요.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도 재배가 가능하죠.

지속가능한 물 관리를 위한 국제협의체 물발자국 네트워크(WFN)의 연구에 따르면, 단백질 1g을 얻는 데 필요한 밤바라땅콩의 물발자국은 소의 10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 greenium 편집

지속가능한 식품을 꿈꾸는 왓이프푸드의 3가지 원칙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올해 1분기 밀가루 가격이 15% 인상됐다고 밝혔는데요. 우리가 밀가루의 대체 식품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가격 상승만이 아닙니다. 세계 주요 식량 작물인 밀·쌀·옥수수는 인류가 먹을 수 있는 30여만 종의 식물 중 3가지에 불과합니다.

단일 작물을 공장식 농업으로 재배하면서 인류의 영양은 불균형해졌고, 토양은 황폐해졌으며, 지역 소농들은 가난해졌죠. 왓이프푸드가 재생농업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왓이프푸드는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을 위해 3가지 원칙을 내걸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재생 작물은 그 중 복원(Restore)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위해 모든 제품에는 재생농법으로 재배한 작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처럼 팜유 재배로 황폐해진 땅에 주목하고 있죠.

두 번째 원칙은 보충(Replenish)입니다. 왓이프푸드는 우유, 라면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식품 제공을 목표로 합니다. 예컨대 밤바라땅콩의 풍부한 단백질과 식이섬유 등 천연적인 영양 특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라면의 튀김 공정을 에어프라이어와 유사한 방법으로 대체했습니다.

마지막 원칙은 재연결(Reconnect)인데요. 왓이프푸드는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을 위해선 공동체가 복원돼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에 왓이프푸드는 지역 농부들과 상호 지식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죠. 현재는 인도네시아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 다양한 작물 순환 재배, 비료 대신 퇴비 사용, 경운(갈아엎기) 대신 멀칭·덮개작물 재배 등 토양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농업. 생물다양성 보호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의 효과가 있다.

 

© 왓이프푸드가 밤바라땅콩으로 만든 인스턴트 라면_WhatIF Foods 제공

밤바라땅콩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을까? 🌏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생산된 밀은 7억 7,650만 톤. 같은 기간 밤바라땅콩은 약 220만 톤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에서만 연간 30만 톤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밤바라땅콩의 생산량은 밀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데요. 사실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왓이프푸드는 이런 ‘소홀히 다뤄지는’ 작물을 재발견했습니다. 제품화를 통해 재생 작물의 생산 및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데요. 아시아에서 가장 좋아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죠.

 

© 각각 모링가(왼)와 검은콩(중간)으로 만든 인스턴트 라면과 밤바라땅콩으로 만든 우유(오)_WhatIF Foods 제공

왓이프푸드는 밤바라땅콩 등 재생 작물의 활용도로 높이고자 인스턴트 라면, 대체 우유, 수프, 셰이크 등 여러 상품을 개발 중인데요. 라면의 경우 하나당 2.5달러로 타제품에 비해 비싸나, 가치소비에 열광하는 MZ세대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죠.

왓이프푸드 외에도 밀가루 대체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반도공과대학의 빅토리아 지디니 식품과학 교수는 밤바라땅콩을 이용해 크래커, 두부, 빵 등 여러 제품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콩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을지 상상이 어려우신가요? 샐러드에 주로 넣는 병아리콩에서 밤바라땅콩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병아리콩 또한 높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을뿐더러, 물이 거의 필요하지 않아 일찍이 재생 작물로 활용됐는데요. 병아리콩의 경우 파스타, 크래커, (대체) 밀가루 등 가공식품으로 활용되고 있죠. 덕분에 병아리콩은 인도와 이집트 등 기존 소비국을 넘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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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라땅콩, 병아리콩 외에도 기후친화 및 재생 작물로 주목받는 작물은 여럿 있습니다. 단지 아직 재발견되지 못했을 뿐인데요. 우리에게 친숙한 기장과 수수, 고대 곡물로 알려진 테프와 아마란스 등 여러 곡물이 그 이점에도 ‘3대 작물’에 밀려 잊혀져 있죠.

해외에서는 왓이프푸드처럼 지속가능한 작물, 재생 작물을 발굴하련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병아리콩을 소규모 빵집에서 다이어트나 알레르기·당뇨 환자 등 기능성 빵으로 사용될 뿐, 대부분 삶은 원물을 그대로 샐러드나 밥에 먹고 있을 뿐인데요.

지속가능한 작물을 재발견해 우리에게 친숙한 제품을 선보이는 기업들이 조만간 더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