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공감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 일상에서 느낄 수 없던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 말이죠. 그렇다면 예술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예술계에도 기후변화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연극·음악·영화·사진·무용 등 제각기 다른 예술가들이 기후변화를 작품 속에 표현하고 있는데요. 더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 흩어진 예술가들끼리 기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예술, 기후 대응 위한 촉매제 될 수 있어! 🎨

예술 전시회가 유엔이 주최한 기후 회의에 상설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입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계기인데요. 당시 파리와 세계 곳곳에선 수많은 예술가가 기후협약 체결을 촉구하며 ‘예술기후변화총회(ArtCOP)’를 꾸렸습니다.

2015년 당시 설치, 연극, 공연, 상영회, 전시회 등 550개 행사가 파리를 포함한 전 세계 54개국에서 진행됐는데요. 일례로 한 행위예술가는 기후변화 협상 성공을 염원하며 자전거 자가발전을 통해 에펠탑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리암 길릭이란 설치미술가는 지구과학연구의 선구자인 마나베 슈쿠로 교수의 복잡한 연구 방식을 시각예술로 표현해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 좌 자전거발전으로 에펠탑을 밝힌 휴먼 에너지 프로젝트 우 마나베 슈쿠로 교수의 기후 모델 연구를 시각화한 리암 길릭의 프로젝트 <a href=httpwwwartcop21com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ArtCOP21 제공<a>

ArtCOP는 기후변화가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란 걸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요. 또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전 세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예술이 기후 대응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매년 당사국총회(COP)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얼마전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어떤 작품들이 있었을까요?

 

COP26, 기후 문제를 예술로 표현하다 🖼️

11월 1일(현지시각)부터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된 COP26. ArtCOP를 포함해 세계 많은 예술가와 문화 단체들이 참여했는데요. COP26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들을 이야기한다면.

 

© COP26에서는 여성 기후활동가들과 함께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Kira Worth UNFCCC

1️⃣ 197그루 나무와 함께하는 회의 🌲

197개의 나무로 둘러싼 공간. ‘나무들의 회의(Conforence of the Trees)’란 장소인데요. 에스 데블린이란 영국 출신 무대 디자이너가 COP26을 위해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 수가 197일까요? 이는 UNFCCC에 서명한 197개국을 의미하는데요. 이 공간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전시하는 공간 겸, COP26 기간 중 각국 정상과 정책입안자들을 위한 회의 장소로 활용됐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엘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제1장관 등 유명 연사들이 참석해 여러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데블린은 영국 디자인 전문매체 ‘디진(Dezeen)’과의 인터뷰에서 “천장에 불이 켜져 있고 직선적인 기존 회의실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이어 “나무의 관점에서 인간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내릴 결정들을 보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 변화를 위한 숲 🌳
데블린은 COP26에 앞서 열린 2021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LDB)에서 ‘변화를 위한 숲(Forest for Change)’이란 전시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런던의 유명 미술관인 서머셋 하우스 앞 광장에 400그루의 나무를 심고 중앙에는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 17개를 적은 기둥을 각각 세웠죠. 전시에 사용된 나무들은 비엔날레 종료 후 런던 시내 곳곳에 재조림됐는데요. COP26 전시에 사용된 나무들도 글래스고 일대 공원과 숲에 재조림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BAS 페이스북 갈무리

2️⃣ 1765년 남극의 공기 🧊

투명 빛 원통형 모양의 작품. 사진 속 작품의 이름은 ‘1765년: 남극의 공기’입니다. 이름 그대로 1765년도 남극의 공기가 담겨있죠. 웨인 비니티란 예술가가 영국 남극조사단(BAS)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작품인데요. 남극 얼음 속에서 공기를 추출해 원통형 실린더에 담았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남극에 겹겹이 내린 눈이 녹지 않은 덕분에 탄생할 수 있던 작품인데요. 나무의 나이테처럼 지구 역사를 들춰볼 수 있다고 하죠.

왜 하필 1765년도일까요? 작품을 만든 웨인 비니티는 1765년이 인류 역사에 있어 상징적인 해라 말합니다. 먼저 해당 연도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해인데요. 인류가 본격적으로 화석연료를 태움으로써 기후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또한, 파리협정에서 말하는 지구 표면 온도 상승 폭을 최대 2°C로 제한, 가능한 1.5°C 이하로 억제하는 것도 ‘산업화 이전 대비’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 여러모로 상징적인 연도입니다.

웨인 비니티는 기후 문제를 너무 뻔한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기후 문제 나아가 극지방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이죠. 더불어 누군가 기후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닌 대중들도 “지금부터 신경 써야만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데요. 그는 COP26을 계기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변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바로 맞은 편에는 또 다른 실린더가 있는데요. 그 안에는 실시간으로 녹고 있는 남극 얼음이 담겨있어, 누구나 얼음이 녹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StillMoving art collective 제공

3️⃣ No New World 🌍

COP26이 열린 글래스고 과학 센터 바로 맞은편 고반(Govan) 부두에는 높이 6m, 길이 70m 크기의 거대한 네온사인이 설치됐는데요. 3,723개의 LED 조명으로 구성된 네온사인은 “새로운 세계는 없다(No New World)”란 문장을 반복했습니다. 레오니 햄튼(Léonie Hampton)이란 예술가가 지역사회 모금을 통해 만든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탄소배출을 개발도상국에게 넘기는 선진국의 행태가 ‘식민지’와 유사하단 짚을 꼬집기 위해 기획됐다고 합니다.

사실 고반 부두는 대영제국 시절 수백 척의 배가 건조되고 수리된 곳인데요.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대영제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인 만큼,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3.5m 높이의 인형 ‘리틀 아말(Little Amal)’과 스코틀랜드 민담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스톰(Storm)’ 인형도 네온사인 앞에서 기후변화와 식민지의 관계 그리고 기후정의 등 여러 메시지를 언급하며 “새로운 세계는 없다”는 작품에 힘을 실어줬다고 합니다.

 

© COP26 전시 공모전에서 우승한 넥서스 Digital4Clmiate 제공

4️⃣ 기후 대응을 위한 디지털아트 🎨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한 디지털 자산을 뜻하는데요. 고유한 인식값 덕에 복제나 교환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죠. 복제 불가능하단 점에서 영상·그림·음악 등 콘텐츠 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NFT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블록체인 NFT 플랫폼으로 유명한 유니크 네트워크는 ‘디지털아트4기후(DigitalArt4Climate)’를 운영하고 있단 사실! 디지털아트4기후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에 힘을 실어줘 기후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이니셔티브인데요. 유엔은 NFT 기술이 기후행동에 대한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아예 COP26은 디지털아트4기후 NTF 전시회를 위한 공모전을 진행했는데요. 지난 11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공모전에는 58개국 208개 작품이 참여했는데요. 투표를 통해 수상자 5명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고 합니다.

‘넥서스(Nexus)’란 작품이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요. 해당 작품을 만든 브릭스 마르티요 뒤마는 “8년전,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고향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의 사건은 내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며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그는 이어 “공모전이 끝나도 기후정의를 위한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기후행동을 촉구했습니다.

한편, 공모전에 제출된 작품들은 온라인 갤러리를 통해 계속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 LIGHT ART EXPEDITIONS VIA EPA EFE

예술의 가장 큰 힘은 ‘메시지’ 🎨

이밖에도 COP26 개최를 기념해 그린란드 서쪽 바다에서는 빙산을 스크린 삼아 띄운 조명예술 작품 전시가 열렸는데요. 스위스 조명예술가 게리 호프슈테터는 북극곰, 펭귄, 물에 잠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 등 기후변화를 암시하는 사진 13개를 전시했습니다. 또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는 ‘기후변화를 위한 세계 예술 전시회’와 ‘VR로 보는 기후 갤러리’가 개최됐는데요.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문제의 해결책을 묘사한 17점의 작품이 전시됐다고 합니다.

예술과 문화는 기후 문제를 막을 수 있다. COP26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나온 말인데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단 점. 이를 통해 새로운 자극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단 것이 예술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합니다.